너는 나의 컨디션 - (1) 토위에 토를 끼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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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컨디션 - (2) 고슴도치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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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컨디션 - (3) 품 안에 따가운 가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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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컨디션 - (4) 해가 중천에도 우리의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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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지하철에는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집까지는 일곱 정거장, 대충 20분쯤이다. 좋은듯, 귀찮은듯. 그랬다. 민희랑 같이 가니 좋기는 좋은데, 이제 어쩌지 라는 생각은 귀찮았다.
꾹
나도 모르게 손을 탁 쳤다.
아!
민희는 손을 부여잡고 날 째려본다
"배 두번 만졌다간 아주 손모가지가 날아가겠네요."
"아..아니 딴생각하다가... 놀라가지고.."
"그럼 한번 더 만져봐야지"
꾹
"아 이게!"
"남자 배가 이렇게 푹신푹신해서야.."
"너 성추행이야."
"헐.. 설마 지금 불쾌하고 수치스러운거에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그럼 오빠도 만지든가."
하고는 배를 쭉 내민다.
"..여자애들은 배 만지는 거 싫어하지 않냐?"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들켰을까 싶다.
"나는 몸매에 자신있으니까~"
단 몇 초 동안 손을 움찔움찔 하던찰나
"시간 땡!"
한다.
나쁜년.. 오늘 두 번째 되뇌인다.
심심한데 얘기좀 해봐요.
무슨 얘기?
이틀 동안 내 얘기만 신나게 했으니 이제 선배 얘길 좀 들어봐야지. 썰 풀어봐요 빨리.
그런거 없어.
아 빼지 말고요 혼자 아는게 어딨어~
없다니까.
헐 혹시 모쏠?
야 모쏠 아니야 근데 진짜 별게 없어
모쏠 맞네 키스도 못해본거?
야 키스 해봤거든 진짜 졸라 많이 해봤거든
하며 눈동자가 왼쪽 위로 올라갔던건 아닌지 신경쓰인다.
맞구만 어쩐지 그러니까 그렇게 긴장했구나?
앙큼한 얼굴로 새초롬한 웃음을 띤 채 끊임없이 놀리는 민희. 속이 끓으면서도 간질하면서도 약도 오르면서도. 야 그러는 넌 비명까지 지르더만?
하고는 약간 지뢰를 밟았나 싶었으나 이내 민희는 내가 언제 그랬냐며 약간은 수줍게 난 모르오 라는 얼굴이다. 당돌하다.
아 진짜 얘기해주면 안되요? 궁금한데!
지하철에서 내리고서도 민희는 끝까지 떼를 쓴다. 야, 그런 얘기를 밖에서 이러고 하는 것도 좀.. 그럼 어디 들어가면 되지! 차나 한 잔? 너 차도 마실줄 아냐? 나 커피 좋아하는데요! 난 술 말고는 안마시는 줄 알았지. 팔꿈치를 꼬집 한다. 아얏.
내가 사는 동네는 지하철 역 근처에 별 게 없는 주택가였다. 너 일찍 안들어가도 되냐? 이미 이틀을 밖에서 보내는데 하루 쯤이야. 그럼 우리 집에 들리던가. 집 가까워. 하고 생각없이 걸음을 옮기려다 아차. 하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민희는 오묘한 표정으로 약간 뜸을 들이더니, 집에 커피 있어요? 하고 묻는다. 아..어..다 떨어졌나? 나는 말을 주워담지도, 그러나 다시 뱉지도 못하고 굼뜨다. 민희는 그럼 어디가서 사야겠네. 하고 두리번댄다.
"어디 편의점 같은거 없어요?"
"아..어.. 쫌 걸으면 있어 저쪽 코너 돌면 집인데 그 근처에.."
먼저 걸음을 내딛는건 민희다. 나는 약간 뒤를 쫄래쫄래 걸어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는 무슨 어떡하지. 이미 상상의 나래는 킬리만자로다. 만화라면 코피라도 뿜을 것 같았지만 진정한다. 망상은 자유니까! 하면서도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든다. 민희는 코너에서 이쪽?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묻는다. 민희의 물음과 함께 집도 보인다.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다. 아, 근데 편의점 커피보다는 전문점 커피가 낫지않나? 하고 힘겹게 입을 뗀다. 민희는 꺼벙한 표정이 된다.
"그럼 전문점은 어디있는데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커피전문점이 어딨더라. 아 씨..
"그.. 다시 반대로 돌아가면.."
되는대로 말을 던지고, 민희는 아 됐어요 그냥 편의점 커피나 먹어. 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아이고...
짤랑.
민희가 커피를 고르러 간 사이, 나는 자꾸 매대 한 켠이 신경쓰인다. 어떡하지. 없는데. 아.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상시 지갑에 두개씩은 넣어둬라. 그리고 또 다른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얘가 잘도 그걸 쓰겠다 유통기한 지날일 있냐. 그러나 친구 하나는 외국에서 자기가 쓰려고 가져온 거라며 두개를 꼭 내 지갑 깊숙이 넣어준다. 예상대로, 유통기한이 지나서 쓰레기통으로 갔지만. 매대를 골똘히 보는데 민희가 갑자기 귀를 콱 땡긴다.
"아!!! 야!!! 뭐하는거야!!"
"빨리 안올래요!!"
얼얼한 귀를 만지면서 편의점 밖으로 나간다. 민희는 편의점 앞에 쌓인 의자를 들더니 바닥에 내려놓고는, 여기서 잠깐 앉아있어도 되냐고 점원에게 묻는다. 우리는 편의점 앞에서 각자의 커피를 뜯는다. 아직도 귀가 얼얼했다.
"오빠 진짜 그렇게 안봤는데..."
서슬퍼런 눈이 내게 꽂힌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기분이다.
"나 이거 다 마시면 갈꺼야."
민희는 단숨에 커피를 벌컥인다.
단두대에 선 기분으로, 입을 연다.
"그.. 처음에 좋아했던 친구는..."
민희는 커피를 마시다가 쿨럭, 하고 사례에 걸렸다. 괜찮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몇 번의 기침을 더 하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지금 타이밍에...?"
"아깐 해달라며.."
빵 터지는 민희. 덩달아 나도 웃음이 터진다. 숨 쉬기가 힘들만큼 서로를 보고 웃는다. 아, 오빠 진짜 엉뚱하다. 너는 뭐 안그런줄 아냐. 흐윽. 아 숨쉬기 힘들어. 낄낄. 하고 또 잠깐의 웃음보가 터진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서야 서로 씰룩대는 얼굴을 각자의 손으로 주무르며 간신히 웃음을 넘긴다.
"됐어요. 남 연애사를 알아서 뭐하겠어. 아깐 그냥 어색하니까 그랬던거지."
하고 다시 커피를 마신다. 나는 그런가. 하고 같이 커피를 마신다.
"역까지 바래다줄께."
커피를 쓰레기통에 넣고 일어선다. 역까지만요? 그럼 집까지 데려다주냐? 당연하죠. ...여긴 왜온거야? 양심이 있으면 데려다 줘야지. 야 내가 양심이 없을 이유가.. 아까 편의점. ...가자.
그렇게 또 한번 지하철 역으로 갔다. 뭐가 그리 웃긴지 민희는 나를 보고 자꾸 피식 피식한다. 또 배 찌르기만 해봐. 민희가 손가락을 두개 탁 세우더니 찌르려는 시늉이다. 중국 권법가가 된 것처럼 홋홋홋 하고 인적 뜸한 지하철 역사에서 웃긴 자세로 한쪽은 당랑권의 고수마냥 콕콕 찌르고 한 쪽은 엽문에 빙의해서 핫챠챠 하다 이내 뱅뱅 도망다닌다. 지하철이 올 때 즈음엔 이미 숨이 가쁜 저질체력들이다.
아하하.
민희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도 마냥 즐겁다.
문이 열립니다.
민희는 먼저 지하철을 탄다. 따라 타려는데 민희가 갑자기 콱 하고 밀친다. 어이쿠, 하며 뒤로 물러난다.
야 뭐야
장난이지 뭘 진짜 따라오려고. 응큼하긴!
그런거 아니거든!
긔뤈궈 와뉘궈든~
하고 요상한 표정으로 말을 따라하며 이죽대더니, 문이 닫힙니다. 하고 문이 닫혀간다. 민희는 그 사이로, 다음에 라면이나 먹으러 오든가! 하며 손을 휙휙 흔든다. 하, 요망한 년.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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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아, 진짜.
왜 또.
그 새끼 진짜 어이없다니까요.
너는 왜 남친이랑 싸우면 나한테 와서 이러냐?
째릿, 하고 눈을 흘긴다.
이게 다 오빠 책임이지!
내가 뭘!!
억울하기 그지 없다.
여자는 뭐라고 입을 벙긋대다가
술이나 먹어요
하고 입에 소주를 탁, 털어넣는다.
짠도 안하냐.
내가 뭐가좋아서 오빠랑 짠을해.
야 씨 나 갈래.
아 쫌!
너 또 깨졌냐?
고개를 끄덕인다.
에휴.
반쯤 든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인다.
오빤 뭐 없어요?
없어.
설마 아직도..
개소리 집어쳐.
입이 댓발 튀어나온다.
야, 너 몇 년 새 왜이리 못생겨졌냐?
치킨 뼈가 이마로 날아온다.
미쳤냐!
미쳤다!
저기요. 조용히 좀 해 주세요.
뒷좌석의 말에 우리는 치킨뼈와 숟가락을 놓고 얌전해진다.
죄송합니다..
탁자 밑에서는 두 발이 현란하게, 홍금보와 이연걸처럼 투닥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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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네요. 연휴에 다 쓰려고 했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