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제주도 49박 50일 여행기(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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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 제주도 49박 50일 여행기(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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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일주일 후, 양가 부모님들과 고마운 두 처제들은 성수기 제주도 강제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병원생활이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곳이 31병동과 신생아 집중치료실이었는데 다행히도 제주대학교 병원은 아주 깔끔하고 시설과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었으며 특히 우리 부부가 계속 지내야 했던 산부인과, 소아과, 성형외과의 간호사, 의사분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덤으로 병원 주위의 경치도 어쩜 그렇게 멋지던지… 제주대학교 병원은 객지에서 예기치않은 사고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우리 부부와 꼬맹이 행복이를 잘 보살펴 주었다. 그래서 제주도라면 일단 한숨먼저 나오는 지금에도 제주대학교 병원은 따뜻하고 고마운 장소로 기억속에 남아있다.
<정확한 판단과 수술로 산모와 아이가 겪을 후유증을 최소한만 겪도록 도와주신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박철민 교수님, 본인이 만삭 임산부임에도 출산 임박하실 때 까지 아이를 돌봐주신 소아과 김윤주 교수님, 아이가 건강히 퇴원할 때 까지 돌봐주신 김영돈 교수님, 감염소견이 있는 상처와 흉터의 국소피판술을 꼼꼼하게 집도해 주신 성형외과 윤병민 교수님, 그리고 우리 부부의 입원기간동안 친절하게 도와주신 31병동 간호사분들, 꼬맹이 행복이가 혼자 숨쉬고 울 수 있게 될 때 까지 지극 정성으로 밥주고 씻겨주고 똥닦며 돌봐주신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분들께 글로나마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입원기간동안 아내는 정말 열심히 젖을 짰다. 젖이 돌 때 마다 짜서, 모아서 냉동보관 했다가 하루에 두 번 면회시간에 아이에게 가져다주는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지만 젖소 부인과 젖소 매니저 남편의 간단해보이는 일과가 생각보다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표현을 젖과의 전쟁이라고 했겠는가? 젖소부인은 젖이 시도때도 없이 돌았고 세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야 했다. 곤히 자다가도 깨서 유축하고 다시 자는것도 고역이었겠지만 젖이도는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아파하는걸 보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은 아닌 것 같았다. 유선에 염증이 생겨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고 열이나고 아픈 것을 젖몸살이라고 한단다. 젖몸살은 젖이 돌 때 부터 시작되었는데 유축할 때 마다 힘들어하는 며느리를 보다못한 시어머니가 출장마사지사를 수소문해 전문 마사지를 받게하고 나니 한결 나아진 듯. 심한 젖몸살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수동유축기, 자동유축기 이것 저것 써 봐도 아픈건 매한가지. 많이 나오면 많이 나와서 힘들고 안나오면 안나와서 힘들단다. 각종 의료기구와 센서때문에 아직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애기 퇴원하면 젖한번 물려보겠다고 꾹꾹 참고 유축유축하는 아내가 참 고맙고 대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이에게 직접 수유하는건 훠어어얼씬 더 힘들고 아프다고 합니다.) 매니저 역할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유축할 때마다 세팅하고 소독을 해 줘야하는데 이른둥이들은 세균에 취약해 괴사성 장염에라도 걸리면 큰일이라고 하니, 젖병 소독 한번도 허투로 할 수가 없었다. 또 애기가 먹는 모유의 양과 유축하는 양을 적당히 비교해 밀봉 용기에 적당히 나눠담아야 하는데, 자칫 부족하면 두팩을 뜯어야하고 많이 남으면 남는만큼이 버려지고만다. 아이가 먹는 양이 금방 금방 늘어서 좋긴 했지만 매니저 입장에서는... 그리고 잘 먹어야 젖이 잘 나올게 아닌가? 아내는 때마다 가져다주는 병원 밥을 먹었는데 보통 병원밥은 맛이 없다. 그나마 여기 병원은 좀 나은편이긴 했지만 역시 맛이 없었다. 그리고 산모들이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삼시세끼 큰 대접으로 미역국을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또 남편은 밥을 따로 사먹어야 했으니 삼시세끼 밥먹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밥먹고 똥싸고 젖짜고 젖병소독하고 애기면회하다보니 지나갔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때로는 자고있던, 때로는 소리나지 않게 울고있던(기도삽관으로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음)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며 호스 하나씩 떼고 센서 하나씩 빼는 모습을 보는게 하루의 큰 낙이었다. 이제 옆자리의 아이와 부모들끼리 얼굴도 서로 익어갈 때 쯤 비교적 자유롭게 거동이 가능했던 아내는 수술부위 감염에 의한 재수술로 다시 드러누웠다. 상처가 잘 안아물었다고 했다. 그나마 산부인과 규정때문에 열흘이나 지나서 찍어본 머리의 CT촬영 결과는 정말 다행히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드러누웠다고 유축을 멈출수도 없었다. 아이가 먹는 양을 겨우 간당간당하게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렇게나 나가고 싶어했던 병원을 퇴원하는데 까지는 20일이 걸렸다. 그런데 그동안 입원해있던 1인실은 보험적용이 안된다고 하더라. 보험사 약관상 어쩌구 저쩌구 해서 일반병실과 차액만큼 한 200여만원은 우리가 부담해야 한단다. 약관을 최대로 적용해서 일주일치는 환불받고, 직장보험에서 얼마간은 환불받을 수 있다하긴 했지만 애초에 병원비는 다 지급될거라더니 말이 바뀌는 품새가 얄밉다.
남은 기간동안 지낼 숙소는 시어머니가 제주시 최대 중심지같은(L마트 E마트가 있는걸 보니..) 노형동에 오피스텔을 두달간 계약해 주고 가셨다. 이리저리 바쁜 아들, 며느리 대신 방 구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는데. 병원근처 원룸에서는 보증금 기백에 월 백만원을 부르더라…
임시 보금자리 오피스텔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20분 거리였다. 처음엔 차를 타기 싫어 택시타고 면회를 다녔지만 하루이틀 다닐게 아니라 다시 렌트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택시들 운전하는 상태를 보니 내가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렌트를 한 첫날 오거리에서 신호위반을 한 차 때문에 또 정면충돌 사고가 날 뻔 했다. 겨우 피했다. 신호위반도 당당하게 하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더라. 한 오분 한숨돌리며 이놈의 제주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애기가 퇴원하고 병원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뱃속에 있어야 할 크기인 꼬맹이 데리고 비행기타고 가는 것도 큰 일이고, 공항에서 내려서 집까지 가는길도 걱정되는 일이지만 병원에서 공항까지 가는 20여분동안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내나 나나 정말 미추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원래 3편으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이제 별로 남은 것도 없는데... 애기가 안자서요. 4편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