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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28 09:55:54
Name reionel
Subject [일반] 나는 신해철 빠돌이다.
두서없이 쓴 개인적인 글입니다.
해철이 형.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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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철이 형님 빠돌이다.

중학교 때 친구가 들려준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의 강렬한 인트로에 홀딱 넘어가서 넥스트 파트2부터 시작해서 파트1, 홈앨범. 그리고 형의 예전 솔로곡들까지 용돈을 모아가며 구입해서 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들었었다. 나중엔 그것도 모자라 시디도 구입했다. 라이브 시디까지… 공연을 못가는 돈없는 학생의 마지막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2병과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게 해준 것은 해철이 형의 음악이었다. 그 때의 해철이 형은 나에게 부모님보다 위대한 존재였다.

수학여행때 우리반 친구들은 장기자랑으로 ‘인형의 기사’를 아카펠라로 준비해서 불렀더랬고 해철이 형의 방송금지가 풀리자마자 방송된 KBS빅쇼를 보면서 녹화하고는 수없이 돌려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후드쓰고 망토두르고 나오던 그 오프닝은 그때는 대단히 전율스럽고 감동적이었다. 나한테는.

방송금지 해제와 함께 시작된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내 워크맨에 라디오 기능이 있다는걸 깨우쳐 주었다. 밤은 외롭지 않았다. 여기저기 수련회니 야영이니 놀러갈 때에도 야외의 추운 밤엔 언제나 해철이 형의 목소리가 함께했다. 새벽2시가 되어서 음악도시가 끝나는 그 순간이 왜그리 싫었던지...

정글스토리 앨범이 나오자 독서실에서 친구와 이어폰 나누어 끼고는 전트랙을 그야말로 경건하게 듣고 히히덕거리기도 했다.(그때 정글스토리 앨범은 이어폰으로 들으면 한쪽의 사운드가 더 강하게 들렸다. 그래서 친구랑 잘들리는 쪽을 들으려고 아웅대기도 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혁명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때리고 방영하던 라젠카는 솔직히 말해서 망작이었다. 스토리도 개판, 연출도 개판, 작화도 개판, 디자인도 그다지… 그런데  OST만은 넥스트가 만들어 초고퀄리티였다. 노래방 가면 친구들끼리 서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부르려고 신경전을 펼쳤고 ‘이중인격자’를 틀어놓고 소리질렀다. ‘Here I stand for you’의 마지막 고음을 부를 때는 부르는 친구와 듣는 친구 모두 인상써가며 목청이 찢어져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먼훗날 언젠가’,’그대에게’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해철이 형은 영국으로 갔다.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서. 돌아온 형은 김혜수 쇼에서 물안경쓰고 고추를 칼로 다지는 것을 보여주었고 여전한 입담을 과시했다. 그 뒤에 앨범들은 솔직히 말해서 이전의 음악들만큼이나 나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앨범들 안에 들어있는 주옥같은 노래들 하나하나때문에 주저없이 앨범을 구매했다.

2002 월드컵 강풍이 지나가고 잠시 K리그 열풍이 불때 해철이 형이 축구 응원가를 만들었대서 앨범을 샀다. 축구나 좀 볼까 했지만 그놈의 모태신앙인 꼴데가 내 발목을 잡았다. 꼴데는 암흑기를 거치며 비밀번호를 만들었다. 나는 학사경고도 먹고 나이도 먹고 세파에 찌들어갔다.

그 뒤로 먹고 사는게 바쁘고 내 일이 힘드니 해철이 형에게 대한 관심이 낮아졌다. 그래도 난 해철이 형의 앨범을 나오는 대로 꼬박꼬박 샀다. 물론 빠진 것도 있지만 눈에 띄면 그냥 샀다.  잘 정리하는 성격이 아니라 어딘가 내 방 구석에  앨범이 있긴 있을꺼다. 그리고 나중에 신해철 컴플리트 전집이니 뭐니 하는 모음집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마 형이 이 세상에 없어도 나는 또 그걸 살거 같다. 왜냐하면 난 해철이 형의 빠돌이니까.

그런 해철이 형이 이제 없다.

거짓말 조금도 안보태고 내 어린시절이 왕창 어디론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얼마전 배캠에서 대타 DJ뛰고 써니의 FM데이트에 게스트로 나와서 입담을 과시하고 비정상회담에 나와서 달덩이같은 얼굴을 비추던 형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떴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어떤 방송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최근에 해철이 형이 그랬다. 건강챙기라고…

형은 비록 건강 못챙겨서 하늘나라로 갔지만 난 형 말들어서 건강 챙겨야 겠다.

나는 신해철 빠돌이니까 형 말 들어야지.

오늘 하루 해철이 형 음악이나 죙일 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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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바라는말했다
14/10/28 10:02
수정 아이콘
힘내자구요 우리 식구들.
14/10/28 10:20
수정 아이콘
멍해서 힘이 안나요..ㅠㅠ
14/10/28 10:08
수정 아이콘
아....슬프네요.....ㅠㅠ
제 10~20대에 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큰 감동을 준 사람인데...ㅠㅠ
14/10/28 10:20
수정 아이콘
일이 손에 안잡힙니다.. ㅠㅠ
잿빛토끼
14/10/28 10:14
수정 아이콘
내 인생의 일부분을 채워주던 가수가 떠났어요. 가수는 떠났어도 노래는 남아있는데...

왜이렇게 슬픈지 잘 모르겠어요.
14/10/28 10:15
수정 아이콘
오늘은 집에 가서 고스를 다시 들어야겠어요.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와 상담소장 놀교 교주 신해철이 영원히 기억날 것 같네요..
14/10/28 10:21
수정 아이콘
전 고스는 거의 못들어봤는지라 예전 음악도시 생각만 나네요.
14/10/28 10:41
수정 아이콘
너무 슬프네요. 어제부터 계속 넥스트 음악만 듣고 있는데 그 좋아했던 노래들이
왜 슬프게 들리는지.
마지막 콘서트 안간것이 너무나 후회되네요. 연말에 넥스트로 공연하겠지 하고 안갔었는데
진짜 너무나 후회되네요
14/10/28 10:51
수정 아이콘
저도 넥스트 공연 한번 못가본게 너무 후회됩니다.
14/10/28 10:44
수정 아이콘
금연 2개월차인데 어제 밤에는 너무나도 담배가 당기더군요.

피고 싶으면 펴, 니 몸숨 태워서 즐기는건데 누가 말려, 이러면서 마왕이 썩소와 함께 독설을 날리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길에는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는데,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하고 껐습니다.

광팬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내가 신해철을 참 좋아하기는 좋아했구나 싶었습니다.
14/10/28 10:51
수정 아이콘
저도 신해철 광팬이라고 생각 해본적 없는데...
오늘아침 뉴스 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빠돌이 맞더군요.
moonland
14/10/28 11:18
수정 아이콘
전 결국 못참고 담배샀습니다.
가슴이 먹먹한게 견딜수가 없네요.
기억속에만 남아
14/10/28 12:30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어제 마트에서 장보다가 카톡 받고 그 사실을 알았는데 장이고 나발이고 한참을 멍때리고 있다가 얼렁뚱땅 보고선
바로 나가 차 세워놓고 줄담배 피다가 Hope를 미친듯한 볼륨으로 틀어놓고선 들어와 술퍼먹다 잤네요.

광팬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내가 신해철을 참 좋아하기는 좋아했구나 싶었습니다. (2)
애패는 엄마
14/10/28 11:12
수정 아이콘
솔직히 아직도 안 믿깁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음악을 들려주실 느낌인데.
넥스트 6집도 파트2,3가 남았는데..
토쉬바
14/10/28 11:19
수정 아이콘
와~~~
마치 제 얘기를 누가 적어놓은줄 알았습니다.
진심 해철형님의 골수팬이시군요.
저하고는 나이차가 좀 나지만
해철형님의 음악의 변화를 그의 행보를 다 꿰차고 있으시군요.
그런겁니다. 형님의 골수팬은....
락도 락이지만 언젠간 형님이 필드에 곡을 풀기 시작하면서 그의 천재성을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날을 기다렸는데...
왜 벌써 가십니까?
형님 노래만 손꼽아 기다리고 두근거림으로 음악을 듣는 우리는 어찌하라고.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더이상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수 없다는게.마냥 추억의 노래로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이번 넥스트 신보는 꼭 마무리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꼭이요
민간인
14/10/28 13:03
수정 아이콘
오늘 점심부터 시작으로 솔로 1집부터 듣고 있습니다.
정말 울먹하네요.

"민물장어의 꿈"나올 때 정말 폭풍 눈물 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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