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 천진난만, 무사태평한 낙천적인 성격이었답니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앞산 뒷산 옆 산 발길 닿는 곳은 어디든 놀이터였었죠.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화 몇 마리만 섞으면 친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집에 찾아가 놀러 가기도 하는 대책 없는 명랑소년이었답니다.
이 명랑소년의 어릴 적 꿈은 [지금 이대로 꿈과 낭만을 아는 어른], [부인에게 사랑받고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였었답니다.
- 내 가족
아버지께서는 항만터미널 하역일을 하시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것에 영향을 받으셨는지
젊은 시절부터 술과 도박, 담배 등등 방탕한 생활의 교과서적인 내용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개과천선하셨어요.)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남에게는 친절하시고 가족에게는 무심한 모습을 보이시는 [나는 도시의 차가운 남자, 남에게는 차가워도 내 여자에게는 자상하겠지~] 이런 문구의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오셨기에
저는 남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친절에 대해 조금 비뚤어진 시각을 가지게 되어(이중인격, 위선, 가식)
이런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을 훈련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 살림을 위해 여러 일거리를 하시느라 항상 바쁘셨고, 그것에 상응해서 몸이 많이 망가지셨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모범생아니면 모범생인 척이라도 했어야했는데 조용한 반항기였는지
자라면서 점점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학업성적은 별로면서 그렇다고 양아치와는 다른 조용한 아웃사이더형 소년으로 변화되면서
어머니께 많은 걱정을 끼쳤죠.
- 삶의 위기
주위의 기대에 힘입어 대학에 진학했지만, 군 입대 후 자대배치 초기에 부대적응을 잘못해 선임들에게 찍혀 많은 구박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눈딱감고 뒤로 넘어져 뒷통수가 살짝 깨지면 죽지는 않고 의가제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맞이했지만, 무사히 유혹을 떨쳐내고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제 처지 때문에 저와 비슷해보이는 애들을 보면 챙겨주는 습관이 생겨 천사표 순둥이 병장으로 무사히 군부대를 제대했었답니다.
대학 복학 후 의욕적이던 1년의 생활 후 갑자기 학업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져 대학 생활을 대충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시기가 되니 취업문제로 고민하게 되면서 또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에 학교는 여기숙사 밖에 없는 관계로 전라남도에서 운영하는 전남학숙(현재 광주대학교에서 화순방향으로 15분정도 거리에 위치)
과 자취, 하숙을 번갈아가며 살아왔었는데, 대학 졸업 때에 전남학숙 4~5층정도에 생활하고 있었던 터라
창문 열고 아무 생각없이 뛰어내려보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느라 힘겨웠습니다.
제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어려워할 때, 주위에서 이런 저를 위해 충고해준다고 [온실속의 화초]를 들먹이며
'부모님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오냐오냐 잘 키워주니 너무 편해서 마음이 약하다' 라는 말을 해주시더군요.
충고는 고맙지만, 이 때문에 저는 [온실속의 화초]라는 비유를 가장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잡초처럼 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데, 자꾸 온실 온실 얘기하니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 어느덧 30대...
심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해서인지 직장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습니다.
일자체는 근면성실, 부지런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일을 해왔지만, 왠일인지 하는 일마다 오래하기가 어렵더군요.
요즘 흔히 말하는 우울증세가 부정기적으로 찾아왔다고 하면 상황설명하기 편하겠네요.
청년인턴 일을 하였을 때 군청에서 계약직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들떠 있다가
인턴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직장 때문에 취업고민을 하게 되었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충동...
자살 충동...
pgr21 사이트에 접속해서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의 글 속에서
급여 200~300만원 얘기가 나오고 직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들과 비교하여 왠지 작아보이는 저를 보며 자괴감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나 어느덧 30대에 들어섰네요.
그 세월동안 저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는지 정신적으로 조금은 성장한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20대 후반에도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너무 늦은게 아닌가 하는 초조함에 자괴감이 들었었답니다.
30대인 지금도 그런 비슷한 초조함은 있지만, 더이상 스스로를 비난하고 움츠러들고 싶지는 않네요.
생각해보면 놓친 것들도 많아요. 도전도 안 해보고 미리 포기한 것들도 참 많죠.
그래서 그런지 스타크레프트 프로게이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실력이 있고 없고, 경기력이 어쩌고 저쩌고하며 선수들을 폄하하는 여러 악성 덧글들을 읽을 때면
그런 덧글을 남기는 애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저는 프로게이머들을 존경하고 있답니다.
- 자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딱히 길게 글을 쓰기가 어려운데, 짤막하게 글 남기기도 싫어서 제 과거사를 들먹이며 서론을 길게 했는데...
어젯밤에 옆집에 어떤 분께서 목을 메고 자살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학창시절(중학교 때) 자주 찾아갔던 동네 오락실 아주머니가 다음날 아침에 농약먹고 자살하셨던 적도 있네요.
제가 현재 신세지고 있는 둘째이모(부산 사하구 신평) 집 가까운 곳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낯선 병원차가 집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것을 보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오늘에서야 자살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내 지척에서 사라졌음에도 주변의 생활모습이 전혀 변화가 없다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제 죽은 그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자살을 했을까..
안타깝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 괜시리 그 생각에 사로잡힐까봐 pgr 글에 이 사연을 적어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별별 사건 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멀리 등산을 갔다가 졸음운전 차에 죽으셨던 산악동호회 회원분들... 목메달아 죽은 옆집의 어떤 사람...농약먹고 자살한 오락실 아주머니..
그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최신 글을 보니 엑스재팬의 멤버 중 한 분이 자살하셨나보군요. 한 때 최고의 밴드였던 엑스재팬이기에 더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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