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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2/15 23:31:46
Name 라울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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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적벽대전 리뷰 - 스포있음^^



적벽대전의 강점 - 비교적 깔끔한 캐릭터 묘사

삼국지 연의의 삼대 대전을 꼽자면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스케일은 크지만 화공 한방이 거의 유일한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이릉대전에 비해,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은 여러 에피소드와 양 진영의 인물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적벽대전이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인간상이 꽤나 흥미롭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도대전에서도 정욱, 순유, 곽가 등의 맹활약과 파벌로 분열된 원소 진영 등이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이는 가장 큰 줄기인 조조와 원소의 역량차이를 부각시켜주는 부가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적벽대전은 만년 강력 떡밥인 조조와 유비진영의 대립을 바탕으로 한 배를 타고 있지만 첨예한 라이벌인 주유와 제갈량, 옆에서 부채질 해주는 귀여운 노숙, 아직 선대에 대한 컴플렉스를 완전히 벗지 못한 손권, 충직한 동오의 노장들, 어리석은 장간, 봉추 방통, 절세의 이교 등 각 캐릭터들이 명확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풍부한 캐릭터 성은 설전군유, 지격주유, 초선차전, 장간도서와 같은 양념 에피소드들과 잘 버무려져서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함을 선사합니다.

영화 <적벽대전>의 장점은 소설의 장점인 이 풍부한 캐릭터성을 그대로 살린데 있습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자칫 단조로운 선악의 구도에만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만하다 봅니다.



주유와 제갈량은 서로의 엄친아 포스를 인정하며 시종일관 '잘나고 잘난' 행동들을 합니다.

노숙은 이 둘 사이에서 때로는 천진난만함을, 때로는 진지함을 유지하며 적절하게 부채질합니다.

선대의 사당 앞에서 고뇌하는 장면이나, 시시각각 보여주는 유유부단함은 아직 포텐이 터지기 전의 손권이 제대로 연상되며, 내숭떠는 유비의 '외유내강'적인 모습도 비교적 준수했다고 봅니다.

여성 캐릭터인 절세가인 소교의 시종일관 '에로틱' 모드나(붕대를 감아주는데, 왜 꼭!), 손상향의 말괄량이 모드도 역사소설 속 인물들이 충분히 떠올릴 수 있게끔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 중 에서도 가장 놀랐던 점은 조조에 대한 묘사입니다. 20세기 말 부터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조조=악인'이라는 등식은 아예 사라졌다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창천항로 등 일부 만화와 문학작품에서 조조에 대한 과한 해석도 빈번히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헌데 저는 평소 조조의 매력을 그의 '잘남'이 아닌 '복잡성'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영화내에서 소교가 조조에게 '예전엔 청년 영웅이었는데, 지금은 욕심으로 가득찬' 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실제로 소설에서 조조는 북방을 제압한 이후엔 자만심, 의심과 함께 약간의 노망끼가 곁들여진 말년을 보여줍니다. 가장 '잘났으면서도' 어찌보면 가장 소탈한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인물이 조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조조는 한나라 승상으로써의 조정에 대항하는 지방 세력을 굴복시키려는 대의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야심과 여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전염병의 걸린 병사들의 시체를 떠다 보내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전염병 환자로 가득찬 막사로 직접 들어가 병사들에게 승리에 대한 희망을 주입시키기도 합니다. 막사에 있는 병사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채모와 장윤에 대한 신임을 비롯하여 자신앞에서 솜씨를 뽐낸 병사를 바로 진급시킬 정도로 특유의 '유능한 인재'에 대한 갈망과 믿음을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을 믿는 '독단성'으로 똘똘 뭉쳐있지요.

특히 채모와 장윤을 선착장에서 기다리며 공개적으로 참수하는 장면이나 장간을 독살하는 장면은 이런 조조의 '복잡성'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후반부엔 너무 '잘난' 주유와 제갈량 보다는 조조쪽에 더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비교적 원작 소설에 충실하며 적절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각 캐릭터성은 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데 충분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CG의 힘 - 소설 속 명장면을 눈으로 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빈약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매년 흥행을 보장하는 이유는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시각적 요소 때문입니다.



특히 소설을 보며 상상에만 그쳤던 초선차전과 같은 에피소드와 조조의 대함선이 불타는 모습은 최첨단 CG가 동원된 값을 톡톡히 합니다. 불에 타올라 점차 허물어지는 조조의 진영과 빠지면 섭할 무장들의 '진삼국무쌍' 모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앞선 1시간을 보상할만한 '눈요기' 거리가 되지요.


아쉬운 한계

그래도 아쉬운 점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영화 자체는 상당히 각색이 잘 되어서 대강의 대립구도만 알면 삼국지를 전혀 안읽는 팬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중성'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에피소드들을 삭제한 것은 아쉽습니다.

제갈량의 설전군유는 적벽대전의 오프닝과도 같은 장면이지만 삭제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내용을 다 채우려면 10분에서 20분 정도 주구장창하는 논쟁을 삽입해야 하는데, 이 논쟁의 내용들이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100분 토론을 보는 듯 할 수 있겠죠. 또한 방통의 연환계나 황개의 고육계 등의 치열한 전략도 삭제되었습니다. 또한 적벽대전의 중요한 전략적 근거인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나 노숙, 주유등의 천하이분지계에 대한 내용도 상당히 부실하지요. 불이나케 달아나는 조조와 이를 구해주는 관우의 화용도 내용 또한 빠져있구요.

이러한 다소 '난해한' 혹은 '영상제작이 껄끄러운' 내용들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영화 특유의 러브씬을 몇 개 설정했습니다. 소교가 조조진영으로 가서 동남풍이 불 때까지 시간을 끄는 내용이라던가, 손상향의 첩보작전을 통해 벌어지는 조조군과의 우정 등이 그 내용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설정들이 굉장히 진부하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 소교 구출작전과 상대 '보스' 조조에게 그냥 돌아가라며, 주유가 '이 전쟁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젊은이들이 보기엔 정말로 손발이 오그라들게끔 합니다(누가 오우삼 홍콩영화 아니랄까봐!).

'적벽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 그리고 천하삼분의 시초가 되는 의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끝까지 계속되는 엄친아들끼리의 '인정과 의리'의 결말은 과연 이런 주제를 설파하기 위해 이런 대전을 벌여야 했을까하는 의문마저 들더군요.


그래도!

서양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를 보며, '더 이야기 거리가 많은 동양에서도 저런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면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스케일의 삼국지 영화가 하나 나왔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적벽대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훌륭한 동양 블록버스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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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5 23:40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새로 각색한 내용이 너무 진부했고...
무엇보다 영화가 좀 지루하게 흘러가도록 편집해두더군요. 후반부에 전투씬을 대량으로 배치하다보니 생긴 현상이겠지만요...

조조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조가 있었으면 저런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을정도의 싱크를 보여주더라구요.
09/02/15 23:42
수정 아이콘
저도 중간에 살짝 졸았었다는;; 저 역시도 '조조'가 있었다면... 실제로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영화보는 내내 했습니다.
미소천사선미
09/02/15 23:47
수정 아이콘
설에 보았었는데 적벽대전1과 삼국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저도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소교 참 이쁘더군요 ^^
09/02/15 23:54
수정 아이콘
소교 ... 왠지 가수 강수지가 생각나던데^^
중간 부분이 좀 지루했지만 암튼 잼있게봤습니다
마동왕
09/02/16 00:06
수정 아이콘
내 꿈은 세계제일의 기상학자 -공명-
아델라이데
09/02/16 00:29
수정 아이콘
스케일은 정말 크더군요. 전 이번 적벽대전 보고 좀 실망했었는데, 쓰잘데기 없는 러브신과 화살 이벤트, 주유 칼부림 장면, 소교이벤트, 그리고 지루하리만치 긴 화공전 을 조금만 줄였으면, 조조 퇴각 후에 관우와의 조우까지도 연출할 수 있었을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제갈량과 주유 캐스팅은 정말 잘한 듯 싶은데, 뭔가 아쉬우면서 남는건 없는.. 그런 씁쓸한 뒤끝이 아쉬운 영화였다는 생각입니다.
09/02/16 01:22
수정 아이콘
사실 제갈량 주유 캐스팅 하느라 돈을 다써서 유관장이 좀 허술해보이긴 하더군요. 특히나 관우는...
09/02/16 01:46
수정 아이콘
Latanta님//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주유를 좀 이름값이 떨어지는 사람 쓰기에는 좀 그렇니깐요,, 유관장 삼형제는 용의 부활에서도 좀 안습이지 않았나요??
Ms. Anscombe
09/02/16 02:08
수정 아이콘
근디, 관우와 장비 역할은 예전에 MBC에서 드라마 삼국지 했을 때 그 배우 아니던가요?
테페리안
09/02/16 03:06
수정 아이콘
손상향과의 우정을 나누는 조조군은 이대호선수였죠 ;;;
처음에 딱 나오자마자 옆에 애한테 '야! 대호다!'라고 말했는데, 보는 내내 그냥 정겹더라고요..
율리우스 카이
09/02/16 09:41
수정 아이콘
고육지계나 연환계를 삭제한 이유가 정사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고 좋게 봐주고 싶어도(둘다 나관중의 창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소교의 단신 투척(제가 조조라면, 어익후 감사 하고 하룻밤 보내고 허도로 보쌈해서 보냈을듯), 손상향의 단신적진침투에 이은 어설픈 조조군과의 우정(장난하나..)... 그리고 마지막 이유없는 조조 살려주기(후반부 15분동안 도대체 조조를 어떻게 살려주려고 저런식으로 묘사할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솔직히 역사/밀리터리 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는 OME수준의 작품입니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것과 몇몇 상상속으로만 그려오던 장면을 실제 영상으로 옮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시볼 가치가 없는 듯합니다. 뭐 물론 그나마도 못하는 영화는 참 많지만 말이죠.

판타지스런 무협이냐, 고증에 충실한 전쟁영화냐.. 전 모 아니면 도 의 평가 잣대를 가지는데, 이영화는 전쟁영화의 탈을 쓴 판타지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말 좋은 점수는 못주겠어요.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회색빛깔이라고나 할까요?

킹덤오브더헤븐, 알렉산더, 300, 트로이, 글라디에이터 등 서양권의 전쟁영화를 보면서, 저런 영화에 맞먹는 동양권의 전쟁 영화가 나오려면 소재가 적벽대전 정도는 되지 않아야 하겠나. 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 적벽대전 정말 기대했는데...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크네요. 쩝.

특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주는 손권남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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