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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6:32
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전 뭔가 감독이 굳이 범인/빌런 찾기를 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정 계층 또는 상황을 타겟한다고 하기엔 아이들의 순수악적인 측면을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나 싶어서..
23/12/04 16:59
엊그제 2회차 관람하고 왔는데 장문의 글 반갑습니다 크크
추천!! 1부와 2부, 성인인 '사오리'와 '호리' 선생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이상합니다. 마치 어안렌즈처럼 왜곡된 시선이에요.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눈에는 자기 아이는 뒷전이고 무언가 숨기기 급급한 교사들이 괴물 같습니다. 행동도 이상하고 말투도 어눌합니다. 그리고 사오리 본인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장 선생의 상처를 후벼 파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호리 선생은 학생들, 동료 교사들, 언론, 심지어는 여자친구까지...온 세상이 본인을 '억까'하는 것 같습니다. 1부가 '베케트'적이라면 2부는 '브레히트'적이에요. 어른들의 주관으로 바라본 세상은, 즉 녹음기처럼 알맹이 없는 말만 되풀이 하는 교사들, 본인 하나만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무사안일의 동료들,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액자의 각도 따위나 신경쓰는 교장의 모습 등은 일정 부분은 사실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진실'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히 늦게나마 본인의 오해를 깨닫고 후회하는 호리 선생이나 미나토와 교장 선생의 대화 등을 통해, 교원 사회나 학교라는 울타리가 단독범인으로 '괴물'이다 라는 혐의는 벗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간순으로 그냥 나열했으면 다소 밋밋했을 법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자르고 적당하게 겹치게 배열 함으로써 장르적인 재미까지 잘 잡았습니다. 전에 다른 글의 댓글로도 적은 것처럼 일견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다분히 주관적이었던 1,2부와 달리, 아이들의 시선이긴 하지만 다소 떨어져서 바라보는 3부의 거리감이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라쇼몽'과 다른 영화로 만들어주는 부분이기도 했고 영화의 애잔한 정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숨기기/드러내기'를 적절히 활용하여 트릭을 부여한 것은 좋은데, 1부 마지막에서 미나토가 투신한 것처럼 속인 것은 감독이 너무 밉습니다. 2부 막바지에 얼마나 안도 했었는데, 결말에 그 아이들을 다시 또...ㅠㅠ 이 영화의 괴물은 감독입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에 아이들이 등장하면, 아 이번에는 또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 아이들을 괴롭히려나, 걱정이 앞서요. 괴물같은 사람.
23/12/04 17:51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고 보니 1,2부의 연출적 과장을 긍정적인 쪽으로 다시 볼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특히 늦게나마 본인의 오해를 깨닫고 후회하는 호리 선생이나 미나토와 교장 선생의 대화 등을 통해, 교원 사회나 학교라는 울타리가 단독범인으로 '괴물'이다 라는 혐의는 벗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에 관해서 약간의 견해(혹은 감상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나 싶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도 이걸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여전히 들어요. 다만 3부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더 두텁게 구성하려면 '교원사회(특히 교장)'에 목소리를 더 많이 허용하기는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4부작으로 구성시 너무 늘어질테니 말이죠. 고레에다 감독은 굳이 4부로 구성을 안 해도, 관객이 "괴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괴물"에서 충분히 탈피할 수 있으리라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23/12/04 17:57
'단독 범인은 아니다' 정도이지 무혐의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흐흐
그리고 교장 선생님 파트는 좀 이질적이라서, 이동진씨는 4부 구성으로 봐도 되지 않나 하시더군요.
23/12/04 19:26
확실히 교장 선생님 이야기는 분량이 적은 걸 떠나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긴 했습니다. 교장의 이야기이지만 교장의 '시선'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요. 이동진 평론가의 해석도 참고해보겠습니다.
23/12/04 17:05
잘 읽었습니다.
다르덴 형제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감독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분석하신 것 처럼 "누가 괴물인가?" 가 중요한 영화였죠. 오곡쿠키님도 치밀한 분석을 통해 (연출적 결함이긴하지만) 교원사회가 괴물인것 처럼 느껴진다고 하셨던 것처럼 다른 관객들도 영화내내 저마다의 괴물을 찾았겠죠 일견 동의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영화의 풍부한 텍스트를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레에다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건 자신들만의 색안경으로 어떻게든 가해자(괴물)를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바로 괴물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로 보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말이죠. 서로의 본질을 보려고 했던건 미나토와 요리 둘뿐이었습니다. 카드게임에서 서로에 대해 묻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 정답을 말하죠. 본질을 본거죠 소문을 듣고 판단하고 단정짓는 어른들과는 다르게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uvellevague&no=1456873&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subject&s_keyword=.EA.B4.B4.EB.AC.BC&page=1 원래 엔딩이었다던 스틸컷을 보면 제 생각에 좀 더 힘이 실리는것 같아요 사족으로 고레에다 답지않은 장르적인 구성이라 좀 놀랐긴했어요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상업성도 가지고 있다는 칭찬입니다.) 이 양반 영화는 이제 좀 뻔하다 싶을때 또 이렇게 뒷통수를 날리네요
23/12/04 17:29
비극이지만 비극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15분의 편집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는 인터뷰를 볼 때, 저 스틸은 초반에 고민했던 여러 엔딩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말그대로 그저 '스틸컷'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죄하듯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차분히 쌓아올렸던 영화의 주된 정서와도 맞지 않아 보여요. 스크린에서 완전히 내려가기 전에 한번은 더 볼 것 같습니다 크크
23/12/04 17:57
본문의 관점에서 현실을 영화적으로 섬세하고 깊이있게 다루는 감독으로 저도 다르덴 형제를, 그리고 작품으로 <내일을 위한 시간>을 예시로 떠올렸었는데요. 댓글에서 확인하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저 또한 본문의 해석이 "영화의 풍부한 텍스트를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해석" 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근데 제 주장은 '충분히 풍부한 텍스트를 납작하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다'에 더 가까운 것이긴 합니다. 해서, 다시 보게 된다면 이 영화가 더 좋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저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고레에다가 굉장히 잔잔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충분한 각오를 했음에도 영화가 상당한 몰입력을 보여줘서 만족했습니다. 입소문이 좋은 이유가 있더라구요.
23/12/04 17:39
총평에서 말씀하신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스릴러적 요소를 사용하는 게 각본을 쓴 작가의 스타일입니다. 일본 드라마 보셨던 분들은 아실 마더나 그래도 살아간다, 우리들의 교과서, 콰르텟 등 모두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죠. 극 초반에는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위해 미스터리 형식을 띄며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뒤로 갈수록 장르적 성격은 옅어지고 작가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남죠.
이 작가(사카모토 유지)가 주로 드라마 각본을 많이 쓰거든요. 높은 시청률을 추구하는 대중성 있는 각본보단 웰메이드 각본을 쓰는 사람이지만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시청자의 이탈 장벽이 낮기 때문에 그들을 붙들어둘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장르물을 잘 쓰는 작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쓰지도 않고요. 오히려 드라마 장르, 의외로 로맨스를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향이 말씀하신대로 이번 영화의 강점과 약점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요. 뭐 영화는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버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이지만 저는 보면서 각본가의 색깔이 꽤 두드러진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초등학생인 이야기를 구상한 건 역시 감독이 고레에다이기 때문이었을 거고요. 작가의 어린시절 경험이 투영된 각본이라고 하더군요. 서로가 서로에게 빌런인 구조이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성향을 드러내고자 한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3/12/04 18:02
배경 설명 감사합니다. 첫 문단에서 해주신 말이 제가 <괴물>을 보면서 느낀 바와 거의 일치하네요. 영화를 고를 때 감독을 많이 의식해도 각본가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관심을 가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3/12/04 21:38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느낀게, 만약 영화에서 악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요리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정작 영화 상의 비중은 크게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기묘하게 숨겨놨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그게 누가 악인인가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그렇다보니, 영화의 정서가 어떤 분노나 반감이라기보단 처연하고 슬픔으로 모이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해요. 3부의 구성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누가 악인인가,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나보단 결국 각자의 피해와 각자의 슬픔, 각자의 아픔과 한계에 대해서 깨닫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릴러적 서사구조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호불호의 여지가 아닌) 많은 영화인 만큼 영화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23/12/04 22:14
저도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괴물이 누구냐'하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전체적인 전개를 되짚어 봤을 때 사오리, 호리, 미나토와 요리에게 허용된 맥락성이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호리 제외)에게는 불충분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나름의 문제제기(?)였던 것인데요.
댓글들을 읽다보니 1,2부의 연출로 우리가 쉽게 믿어버리는 진실의 허약함을 충분히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애초에 사오리와 호리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시선, 즉 어른의 시선을 보여준 것), 구태여 교장선생님의 시선을 두텁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작품이 3부의 끝맺음을 통해 그럴듯한 완결성을 갖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23/12/05 07:12
이 글은 제목 자체가 너무 스포성인뎁쇼... 제목 보고나서 특히 영화 1부 보면 호리 센세에 대해 어차피 결론 알고 보는거나 마찬가지라 확 힘빠질듯요.
23/12/06 07:58
https://youtu.be/teL4Iwu7TgM?si=2KApzFjWseri1nbX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이동진 평론가님의 온라인 대담이 올라왔습니다. 평론가님이 언택트톡에서 품었던 의문들을 직접 질문해서 확인하기도 하시네요. 내용도 재미있고 영화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23/12/06 13:07
링크 감사합니다. 역시 곱씹을 거리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이동진 평론가 역시 다소 짓궂게도(?) 결말에 관해 질문을 했군요. 감독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답했고요. 이동진씨의 지적처럼 불로 시작하여 물로 끝나는(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까지) 이야기로 본다면, 아이들에게 닥친 내적 재난이 물의 이미지로 해소되는 해피엔딩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저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 영화가 '아이들이 죽는 해피엔딩' 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어요. 고레에다 감독의 경우에도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을 노렸다는 식의 언급을 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는 엔딩이 궁극적으론 해피엔딩인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네요. 감독은 해피엔딩이라 돌려 말하고 있지 "살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도 하고요.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지금의 현실에선 퀴어적인 정체성을 오롯이 긍정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긍정하기 위해서 빅크런치 이후 재창조되는 세계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미나토와 요리가 "아무것도 달리지지 않았어, 그대로 살아가면 돼" 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달까요. 미나토가 빅크런치를 외치며 기차로 달려가기 전, 교장선생님과의 대화에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에 뭔가를 느끼는 것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이곳 현실세계에서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구나'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23/12/06 13:41
송강호씨와의 다른 대담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연출하려고 고심했다'고도 하셨죠. 이쪽이건 저쪽이건 암튼 한쪽으로 완전히 결론 내려지는걸 피하고 싶어하시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크크
23/12/06 14:05
거기선 또 그렇게 말하셨나 보군요 크크크 흥미롭네요. 고레에다 감독이 직설화법은 거의 피하는 감독이라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다른 작품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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