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12/02 00:55:18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280592199
Subject [일반] <괴물> -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기. (스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특징은 따뜻하면서도 냉담한 이중적 시선이었습니다. 묘하게 따뜻한 듯, 묘하게 온기있는 듯하면서도 슬쩍슬쩍 드러나는 객관적인 시선이나, 혹은 외부의 시선들이 개입되며 영화의 전체 분위기에 대해 의문점을 남기는 영화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괴물>의 구조는 같은 시간의 다른 시각을 보여줍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정 구간을 3번 보여주면서 퍼즐을 짜맞추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그리고, 세 겹의 퍼즐을 끼워맞췄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어렴풋한 슬픔입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가진 분위기는 그런 점에서 전작들과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세 개입니다. 엄마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 선생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 재밌는 건, 엄마와 선생의 이야기는 퍼즐의 힌트만 보여주는 셈으로 그려진다는 점이겠죠. 영화의 가장 큰 그림은,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우주는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영화의 모든 어른들은 주석처리되고, 아이들만 남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간까지는 <더 헌트> 내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류의 영화인줄 알았어요. 그렇기에 모든 잘못과 갈등을 주석처리 해버린 결말은 괜찮다 싶으면서도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모든 인물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또 결함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긴 하겠지요.

지나칠 정도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종말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되려 '빅 크런치'가 올 거라는 상황에서 낡은 기차에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뒤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냉소적인 말들을 할 뿐. 그렇기에, 영화가 끝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영화의 끝이 그냥 여기서, 이대로 해피엔딩을 내줬으면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어찌보면 영화의 감정이 '묘한' 슬픔과 서글픔인데는 적절한 선에서 끊은 엔딩의 힘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떤 영화는 배우의 얼굴로 기억되고는 합니다. 저에겐 <그녀>의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이 그런 종류인데요, 이 영화, <괴물>에서도 두 아이의 얼굴이 꽤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12/02 12:12
수정 아이콘
이따가 저녁에 한번 더 보러 갑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폭우 속에서 망연자실한 사람 중에 '요리'의 아버지가 있던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아이의 특정 모습, 특정 성향이 괴물로 겹쳐보였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소중한 자녀였던건지...
한국에서 리메이크 한다면 요리 아버지 역할로는 배우 윤경호씨가 잘 어울리겠다 싶어요.
aDayInTheLife
23/12/02 12:5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세요.
모든 사람이 일반적인 악인은 아니겠죠. 특정 상황, 특정 상대에게만 악인인 건 아닐까 싶네요.
김매니져
23/12/03 10:10
수정 아이콘
영화속 인물과 관객의 편협함을 상기해 주고 동시에 실시간 복기해 주는 영화였어요. 시종일관 담담하게 풀어가기에 오히려 뒤로 갈수록 호소력이 더 커졌고...엔딩이 살짝 이질적이라 아이들의 생사유무가 관객마다 갈리는듯 하나, 영화대사처럼 변하는것은 없어 보입니다.
aDayInTheLife
23/12/03 11:47
수정 아이콘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거죠. 아이들이 살았든 아니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399 [일반] 그 손가락이 혐오표현이 아닌 이유 [93] 실제상황입니다15738 23/12/04 15738 13
100398 [일반] <괴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지게 되는 질문(스포일러o) [20] 오곡쿠키9015 23/12/04 9015 7
100395 [일반] 달리기 복귀 7개월 러닝화 7켤레 산겸 뛰어본 러닝화 후기.JPG [36] insane10947 23/12/04 10947 5
100394 [일반] 애플워치9 레드 컬러 발표 [22] SAS Tony Parker 10913 23/12/04 10913 1
100393 [일반] 이스라엘 신문사 Haaretz 10월 7일의 진실(아기 참수설) [51] 타카이10761 23/12/04 10761 8
100391 [정치] 한국은 사라지는가 ? Is South Korea Disappearing? [40] KOZE15315 23/12/03 15315 0
100390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10) 자살수 [6] 후추통7098 23/12/03 7098 20
100389 [일반] 서면 NC백화점 내년 5월까지 영업하고 폐점 [30] 알칸타라16021 23/12/03 16021 1
100388 [일반] [팝송] 빅토리아 모네 새 앨범 "JAGUAR II" 김치찌개6079 23/12/03 6079 1
100387 [일반] 커피를 마시면 똥이 마렵다? [36] 피우피우11403 23/12/02 11403 18
100386 [일반] <나폴레옹> - 재현과 재구축 사이에서 길을 잃다.(노스포) [16] aDayInTheLife7146 23/12/02 7146 2
100385 [정치] 정부, COP28 ‘재생에너지 3배' 서약 동참 [109] 크레토스13246 23/12/02 13246 0
100384 [정치] 정부에 로비 중이니까 걱정마셈 [23] 인간흑인대머리남캐11207 23/12/02 11207 0
100383 [일반] 리디북스 역대급 이벤트, 2023 메가 마크다운 [37] 렌야11616 23/12/02 11616 2
100382 [일반] [책후기] 그가 돌아왔다, 의학박사 이라부 이치로 [14] v.Serum8322 23/12/02 8322 3
100381 [일반] 구글 픽셀 5년차 사용기(스압, 데이터 주의) [37] 천둥9996 23/12/02 9996 11
100380 [정치] 함정몰카취재 + 김건희 여사 + 디올 백 = ? [96] 덴드로븀15394 23/12/02 15394 0
100379 [일반] <괴물> -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기. (스포) [4] aDayInTheLife6282 23/12/02 6282 6
100378 [일반] 유로파의 바다에서 생명체가 발견되면 안 되는 이유 [29] 우주전쟁11410 23/12/01 11410 9
100377 [일반] 나 스스로 명백한 잘못을 행한다고 판단할 알고리즘이 있을까? [21] 칭찬합시다.7948 23/12/01 7948 6
100376 [정치] 윤 대통령 세 번째 거부권 행사, 검사 두 명 탄핵 소추 통과, 이동관 자진 사퇴 [155] 빼사스15984 23/12/01 15984 0
100375 [일반] 플레이리스트 2023 [1] Charli6407 23/12/01 6407 1
100374 [정치] 추구할 가치, 여유를 잃은 사회. 그리고 저출산 [75] 사람되고싶다11899 23/12/01 1189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