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3/01/12 19:38:46 |
Name |
네로울프 |
Subject |
대결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사회화 |
지난 금요일 모든 외출 건수를 사전 봉쇄하고 5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반갑쯤 남은 담배가 못미더워 새로 한갑 사놓고 재털이
도 큰 걸로 넉넉하게 준비해놓고, 1.5리터 생수통 옆에 새워두고 만
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게임넷 한달 유료회원을 등록
하고도 아직 시간은 1시간 반이나 남았더군요. 웨스트 들어가서 헌
터 팀플 네댓 게임쯤 하고 나니 시간은 7시20분. 서둘러 인터넷 실시
간 방송을 열었죠. 부담없는 세경기를 부담없게 봤습니다. 나름대로
누가 이겼음 좋겠다 했고 그날 따라 기대가 다 이루어지더군요. 그때
의 제 자세는 옆에서 누가 보기엔 민망한 자세였죠. 의자에 깊게 기댄
후 오른쪽 옆에 팔 걸이 용으로 의자를 하나 더 놓고 책상 오른쪽 옆
으로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다리 걸치는 용으로 썼습니다. 한마디로
의자 세개에 걸쳐진 빨래같았다고 할까요. 그리고 왼손으론 담배를
든 채 모니터에서 살랑거리는 희드라의 엉덩이를 보면서 낄낄대고 있
었죠..--;
드디어 본 게임이랄까, 메인 이벤트가 시작합니다.
황제 vs 아트저그/공공의 적/통계의 파괴자!!!
환호성이 터지는 가운데 응원소리에 조금은 민망해 하며 웃는 황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음 저렇게 웃는 날은 경기가 잘 안풀리던데.
내심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황제의 눈빛을 보고 마음이 진정됩
니다. 깊게 침잔한 노회한 안정감, 그리고 그 사이로 쏘아보듯 번득이
는 승리에 대한 집요함. 무언가 있다! 란 생각이 대퇴부를 건드리고
척추를 따라올라와 늑골을 찌릅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옆 의자에
걸쳤던 오른 팔을 나도 모르게 배위에 포개고 있더군요.
대각선. 음 쉽진 안겠는 걸.
저그 앞마당. 과감한데!
헉! 치즈러쉬!!!!
순간 난 몸을 일으키고 모니터 앞으로 깊숙히 다가 앉았습니다.
드론 대 scv. 무빙샷 하는 마린 한기. 엎치락 뒤치락.
필사적으로 앞마당을 버티는 저그. 추가되는 두번째 마린.
기우는가 싶을 때 뛰쳐나오는 저글링 네마리. 테란 후퇴.
활개치듯 떠돌던 열기는 어느새 없어지고 차갑게 가라앉는 전장.
잠시 후 벌써?라는 경악과 함께 드랍되는 럴커. 이어지는 저그의
입구돌파. 이후 공공의 적은 황제마저도 공공이란 불특정 다수의
무리속에 갈무리해버립니다.
허탈함과 멍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진행자들의 멘트를 듣는 둥 마는
둥하다 방송을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시간 여쯤 완전한 의욕부진
에 빠져 이것저것 툭툭 들쑤시다 pgr21에 들어왔습니다. 게임에
대한 후기들. 공공의 적에 대한 환호, 경이. 4강 예상의 글들이
주르륵 올라와 있더군요. 차마 글들에 손이 가지 않습니다. 제목만
대강 훓어보다 맙니다. 그러고도 이틀동안 계속 여기를 들락거리다
일요일 오후인 오늘에야 그 게임에 대한 글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읽어봤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때론 당사자보다 그 팬들이
패배를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한테만 국한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요.
사회가 조직화 되고 고도화 되어 갈수록 일반적 대중의 개인에겐
대결이라는 이벤트의 기회는 상대적으로 감소합니다. 원시사회에선
개인에게 있어 생활 속에 접하는 모든 대상이 대결의 상대였고, 기회
였을 겁니다. 하지만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이유로 사회속 개인
에겐 대결의 장에 서게 될 기회가 제한되게 되는 것이죠. 특히 1대1의
대결은 더욱더 그러합니다. 완전히 사회속에 편입되기 전인 어린 시절
이나 학창 시절엔 주먹다짐 정도의 1대1 대결의 기회가 가끔 있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편입되게 되면 그 마저
의 기회도 거의 없게 됩니다. 이 것은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죠.
이러한 대결의 상실로 인해 인간이 똑같은 기회로 잃게되는 것이
바로 승리와 패배에 대한 경험입니다. 특히 1대 1에 있어서 말입니다.
사회 속에서 모든 대결은 다수 대 다수, 불명확한 적, 복잡하고 불완
전한 승패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인간에겐 대결과 승패에
대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욕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사회적 대결, 사회적 승패에 욕구불만을 가지게 되죠. 이러한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리적 대결, 대리적 승패가 사회
속에서 기획되고 이루어집니다. 규칙이 있는 대리적 대결.
바로 게임과 스포츠죠. 개인에게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
대결과 그에 따른 승패를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과 스포츠는 사회의 고도화에 발 맞추어 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그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
소모성에 비추어 볼 때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덜 소모적이란
이유도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이 직접 게임과 스포츠로
대결과 승패의 욕구를 희석시키는 것보단 대결과 승패를 관람하게
함으로 해서 욕구를 희석시키는 것이 사회적인 손상을 더 감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대결과 승패는 더욱더 대리적인 개념이
되어버립니다. 특정 대리자들에 대한 응원자, 즉 팬이 발생하게 되고
대리자들의 대결과 승패로 개인의 대결욕구, 승패욕구가 충족되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리적 대결과 승패가 인간의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대결 욕구와 승패 욕구 자체를 감소시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각 스포츠나 게임의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대리자의 대결과 승패를
마치 자기 것인양 받아들입니다. 승리에 의한 고양, 패배에 따른
침잠. 이런 것들이 거의 개인의 대결에 따른 승패에서 발생하는
감정만큼이나 강력하고 지속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치명적이지 않음은 당연합니다. 역시 사회화에 따라 욕구와 반응도
세련되어졌기 때문일겁니다.
임요환 선수와 박경락 선수의 8강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제가 일으켰던
감정 상태와 반응은 한발짝 떨어져보면 사실 조금은 우스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왜냐면 저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손톱만큼도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놀라운 건 저는 개인적으로 실재적인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으면서
대결과 승리 그리고 패배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리 경험을
통해 몇가지 본질적인 사고에 닿게 됩니다. 그러한 사고와의 접합은
저의 인간적 성숙에 일정 정도의 재료가 되기도 하겠죠.
그러고 보면 인간이 발명한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사회 그리고 사회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됩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