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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1 14:24
삼국 모두 중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엄청 썼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현제 한강쯤을 사이에 두고 엄청난 싸움이 계속됩니다 한강 인근의 땅을 차지했을때 그 해당국이 전성기라는 말이 나올정도니까요 왜는 말그대로 배우는 입장이었던것 같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때문에 우수한 문명을 내륙에 비해 빨리 접하지 못해 백제를 통해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제 쪽에서도 아쉬울것이 없어보이구요
10/02/11 14:55
시간적 차이입니다.
백제가 전성기를 맞아서 한참 뻗어나가던 4세기에 신라는 아직도 부족국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껏 하는 일이 주변 부족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복속시키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백제는 이미 전성기를 맞아서 완벽한 고대 국가로 성장하였고 강대한 군사력의 고구려와도 싸워서 이기는 등의 가히 동아시아의 패권국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당시 중국은 남북조의 분열과 함께 남조든 북조든 서로 내란으로 치고 받는 상황이라 백제의 전성기 시기는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한 강대국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인지라 당연히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왜의 입장에서는 거리도 멀고 어지러운 상황의 중국과 딱히 자신들과 다른 상황도 아닌 신라 보다는 백제에 끌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왜는 백제와 친교를 맺었고 이는 백제 멸망의 시기까지 계속됩니다. 신라는 당과 수교할 당시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항성이라는 최적의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지금의 남양만이죠.)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개떵이다 님께서 생각하시는 울산쪽에서 돌아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개떵이다님께서 생각하시는 장보고의 시기는 당과 수교를 맺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시기보다 한참 이후의 시기이기에 보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제는 당나라와 친분을 유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당나라와 가장 먼저 친교를 맺은 나라는 신라였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친교를 맺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한강 유역 일대를 차지한 힘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신라가 저지른 짓이 바로 백제와의 동맹을 배신한 일이었습니다. 이 배신으로 백제는 한강 유역도 잃고 왕마저 전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백제는 이를 복수하기 위해서 이를 갈았고 자연히 대대로 중국 왕조와 적대적이며 강대국이었던 고구려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당나라와 동맹을 맺은 신라를 치기 위해서 고구려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친구의 적은 적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고 자연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여,제 동맹,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 동맹이 성립된 것입니다.
10/02/11 15:32
세계지도를 펴서 이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비교해보세요.
삼국시대보다 한참 전에 이미 로마는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바람이나 파도 등의 조건이 다를 수 있지만, 생각보다 먼 바다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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