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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21 13:39
징기스칸이 부족들을 규합한것이 이유가되지 않을까요? 그때 유럽쪽에선 돌격전술? 정도만 있었던 것 같은데
뒤로 쭉빼면서 무빙샷을 날려줘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09/08/21 13:39
전쟁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보급로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제국의 군대는 이 문제를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원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복지에서 보급을 처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정복지의 민심을 얻어 그 땅을 지배하겠다는 것 보다는 그곳을 수탈하여 인력과 물자 식량을 보충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 싸우겠다는 식의 정복전략이 기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범위의 제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칭키스칸 시대에 먼치킨이었던 이유는 부족중심의 세력으로 흩어져 있던 몽골 세력을 칭기스칸 때 하나된 힘으로 결집을 시켰고 그 힘을 정복에 사용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정복전략에 따른 후유증과 칭기스칸 후대에 이르러 다시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라고 책에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09/08/21 13:40
물론 말씀하신대로 기마민족이 몽골만 있는게 아니지만 궁기병은 단연 몽골이 최강이었죠.
그리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의 문제. 몽골은 유목민족답게 전투식량이라고 해야할까요. 간편하게 말린 식품을 지니고 다녔으니 보급이 쉬웠죠. 징기스칸이 워낙 먼치킨이어서 그렇지 그 이후의 황제는 무능했죠. 원제국이 여러 개로 찢기고 또한 다른 문화를 점차 받아들임으로써 점차 자신의 색깔을 잃게 되죠.
09/08/21 14:13
몽고의 말도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몽고군이 타던 말이 덩치가 작고 짤막해서 최고속도는 떨어지지만 코너링과 민첩성이 기가 막혀서 몽고 기병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죠..
09/08/21 14:17
원때 이전과 이후에 왜 몽골족이 먼치킨이 아니였던 이유는
중국왕조에 끈임없는 견제와 정벌때문입니다. 한무제 이전 흉노의 군사적 능력은 한족을 능가합니다. 한고조때 흉노정벌하러 갔다가 당시 선우였던 묵특한테 대박으로 깨지고 굴욕적인 화의맺습니다. 한무제때도 결정적으로 이겼던것은 아니고 전쟁에서 박빙이였지만 자원이 풍부했던 중국에비해 흉노에게는 큰피해였습니다. 그런 흉노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게르만족을 침공 게르만족이 로마영토로 이주하면서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하죠 아무튼 중국왕조가 통일하면 제일 먼저 하는일은 북방민족 정벌입니다. 군사적 정벌뿐 아니라 회유하거나 부족끼리 분쟁을 야기 시키기도합니다. 특히 원이후 세워진 명나라는 설립부터 후금이 새워질때 까지 꾸준히 몽골족을 괴롭힙니다. 명황제가 사로잡히는 수모도 격기도 하지만 명의 정벌은 몽고의 세력이 커지거나 통합하는 것을 방해를 합니다. 그에반해서 송나라는 설립부터 동북으로는 거란에게 싸우고 서로는 서하랑싸우고 남으로는 배트남이랑 싸웁니다. 세나라 모두에게 전쟁을 일으켜서 복속시키지 못하는등 아무 이득을 못얻고 군사력 약화만 불러일으켜 몽골족을 견제할 여력을 갖지 못합니다. 당시 거란도 송과 고려와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몽고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 후 여진족의 발호로 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세워지면서 한족은 더이상 몽골족을 견제 할수 없었고 여진족이 세운 금도 송을 멸망시켰지만 남송건재하고 특히 악비에 활약으로 금의 위기까지 몰리게됩니다. 이와 같이 남송과 금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금은 북쪽 몽골족을 방치하게 되고 그 틈을 타서 징키스칸이 몽고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중앙아시아쪽을 먼저 장악한다음 금을 멸망 시킬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지금도 몽골족은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 지금의 몽골하고 중국의 내몽고자치구 둘로 나눠져있습니다. 덧 붙혀 말씀 드리면 몽골에 살고 있는 몽고인들보다 내몽고자치구에 살고있는 몽고인이 훨씬 많습니다.
09/08/21 15:01
답변들 감사합니다.사실 이유를 들어도 몽고의 세계정복은 신기해요.
로사//그런데 흉노=몽골이라고 볼수 있나요? 얼핏 흉노는 투르크족계열이라고 들은거같은데요
09/08/21 15:35
곰님//
흉노와 몽골은 절대로 동일하지 않습니다. 일단 투르크는 크게 오스만투르크와 셀주크투르크로 나뉘는데, 이 둘과 몽골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셀주크투르크의 경우 몽골에게 관광당해서 간접통치를 맞보기도 하지요. 오스만 투르크는 잘 아시다시피 터키의 선조로서, 오스만 제국을 건립한 사람들이구요. 흉노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몽골 역시 이들과 다르구요. 뭐, 흉노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드리자면.. 중국 북방민족으로서 전통의 강호입니다. 한무제가 서쪽으로 사신을 보내 '마답비연', 즉 날으는 제비보다 빠른 말을 수입해온 이후로, 흉노족에 대한 막대한 정벌이 이루어집니다. 몽골의 경우에는 흉노가 번성했던 이후, 송나라 후기쯤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국가이구요. 뭐 길어졌지만 요약하자면 흉노 /= 몽골 /= 투르크입니다. 사실 투르크는 돌궐과 계통이 유사합니다.
09/08/21 15:55
몽골제국의 흥성,칭기스칸의 대정복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는 많은 요인들로 얽혀져 있다고 합니다.
우선적으로 어떤 작용 어떤힘이 일어나 몽골=기마유목민족이 고비사막과 중앙아시아의 대초원 지대에서 뛰어나와 남하했는가 그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부분에선 기후의 변화가 한요인이라고 합니다. 13세기들어서면서 기후가 일변하며 초원지대의 건초지영역이 남하하면서 과거 알뿌리등의 곡물류를 심을수 있는 경작지가 유목민의 말과 양을 먹일수있는 건초지로 변하면서 유목민의 남하를 촉진시켰다고 합니다. 그럼 왜 징키스칸의 몽고군대는 순식간에 발호할수 있었는가 라는 문제에서 이건 철저한 유목민집단의 특성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유목민은 대단힌 어렵고 살기힘든 자연조건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생존경쟁의 치열함은 이루말할수 없고 유목민 문화에선 은도 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겁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것이 최선이고 최고의 가치가 부여되며 사기에서 나오는 젊고 힘센 자는 그맛있는 부위를 먹고 늙고 힘없는 자는 그다음을 먹을 뿐이다라는 구절에서 알수 있듯이 유목민 세계에서 힘의 이합집산은 철저한 약육강식과 이익추구에 따라 결정되기에 만일 어떤 부족이건 그가 힘이 있고 그에게 협력하면 이익을 얻을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이전의 모든것 설사 그가 부모를 해한 원수라도 그에게 들어가는걸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어려워하지도 않는다는 그들의 가치관 문화가 징키스칸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나오면서 거의 폭팔적으로 그에게 세력이 붙고 그가 일순간에 팽창하게된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일단 그에게 협력하면 종족의 안전 일정한 식량확보에 필요한 건초지역, 물의 영역사용권을 확보할수 있다는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은 거의 일순간에 초원의 모든 유목집단이 그에게 복속하는 결과를 나았다는 겁니다. 징키스칸이 그럼 힘을 얻게 된 바탕이 무엇이냐에는 철저한 힘의 공백이 발생한것이 한요인이라고 합니다. 서쪽의 광대한 호라즘지역이 호레즘왕조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지만 이셀주크왕국은 완전 군장국가 정도의 소규모 부족국가라고 폄하해도 될정도로 약체화 되었고 그들의 사실상 지배가 미치는 히바지방을 지키는 그들군대만 해도 그냥 키르키즈초원과 구즈,캉글리등의 초원지대에서 어중이 떠중이로 모인 군대라 애초 대초원의 유목민들을 아우를수 있는 힘의 결정이 없었고 초원남쪽은 만리장성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금과 남송이라는 두 분할국가의 힘이 지나치게 하북이남과 이북으로 대치하면서 완전히 장성너머의 유목민족에게 멀어지면서 대초원의 유목세계는 그야말로 무퐁지대로 화했다는 겁니다. 이말은 다시말해 누군가 하나만 나오면 바로 그가 왕해먹을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는 뜻이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이가 바로 징키스칸이라는 겁니다. 징키스칸군단의 전투력은 어디서 나왔는가 라는 데서는 전적으로 그군단의 기동력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군단을 조절한 징키스칸의 판단이 컸다고 합니다. 징키스칸군단은 절대 정복의 개념으로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징키스칸이 정치적으로 또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일자무식의 야만족수장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징키스칸은 기본적으로 정복이 아닌 파괴,약탈 그리고 철저한 지역민 소개를 깔고 전쟁을 벌였답니다. 그가 보낸 제베와 수베에테이 양장군이 겨우 2만 5천정도의 기병군단만 가지고 페르시아와 남러시아를 초토화시킬수 있었던 전략의 기본이 바로 징키스칸이 지시한 저 철저한 파괴,약탈,그리고 지역주민을 완전히 소개(사실상 전멸)하는거랍니다. 이슬람 역사가 이븐할둔이 그당시 몽고군이 어떤식으로 점령지를 대했는지 왜 그많은 그엄청난 문화를 이룩한 이슬람세계가 그렇게 처참하고 허무히 몽고군단에게 무너졌는지를 적은 상황표현이 있는데 몽고군단은 일단 한지역에 들어서면 애초 점령이라는 개념을 지니지 않았기에 생포한 지역주민을 모두 결박시키고 나서 그들을 자신들의 최전방에 세워 말그대로 총알받이형식으로 써버렸답니다. 몽고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열심히 싸우는 상대편은 자신들은 몽고군단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쏘고 찌르고 죽이는 상대방은 바로 옆도시에 살던 그들의 이슬람형제들이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단 힘빼게 하고 나서 몽고군단은 자신들의 그 놀라운 기동력을 십분발휘 치고빠지는 식의 그리고 위험할시 사방으로 산개 흩어져 다시 정해놓은 일정장소로 재집결하는 작전을 펼쳐 이슬람문명권을 초토화 시켜나갔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무조건 파괴하며 그 정복한지역이 힘을 모으지 못하도록 지역민을 강제 소개혹은 싹 학살 함으로써 항시 후방의 안전로를 확보해 나가면서 전진했다는거고 이건 애초부터 징키스칸이 호라즘까지의 영역을 자신들의 지배권으로 정하고 그너머는 완전히 무인지대로 만들어 지배영역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창출해낸 전투력이라는 겁니다. 몽고군단은 정말 우수했는가 라는 데서는 그들의 개개인의 장비나 체력이 특출나게 우월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1258년 바그다드가 징키스칸이 보낸 수베,제베에테이에게 박살이 날때 그 전투를 직접목격한 이슬람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슬람의 창기병은 일단 장비 ,편제 면에서 나무랄것이 없엇다고 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그입장 그안목에서의 판단이겠지요 그역사가의 글은 "나는 몽고군단이 진격할때 차관의 군대에 있었다. 우리는 듀자일강의 지류인 나으르 바시르에서 그들과 맞부딪치게 되었고 우리쪽에서는 완전무장한 한기사가 아라비아산 말을 타고 맞싸움을 하려고 나왔는데 그모양은 인마일체의 큰산처럼 건장하게보였다. 그러자 몽고군쪽에서도 이에 대항하려고 노새같은 말을 탄 한기사가 나왔는데 손에는 막대기 같은 창을 쥐고 옷도 무기도 갖지않고 보는자로 하여금 폭소를 금할수 없는 거였다. 그러나 날이 저물기전에 이미 승리는 그들것이엇고 우리는 대패배를 안고 패주했으며 우리의 절망과 불행은 시작되었다." 입니다. 이슬람군대가 대패배한 원인은 자신들의 중장기 창병 전술이 한마디로 몽고군단의 저 유목민 사회특유의 무섭고도 끈질긴 경기궁병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었다는 겁니다. 더우기 그들은 말을탄 상태에서도 활을 마음대로 쏘기까지 하는 군단임에야 육중한 무기와 힘에 의존하던 이슬람병사들은 사실 치고빠지고 산개가 자유자재로 구사가능하고 턴과 동시에 화살을 날리는게 가능한 몽고군단앞에서는 그냥 날죽여주쇼하고 달려드는 꼴이었다고 합니다. 즉 몽고군단을 상대해야할 전술과 전투방식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미약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대처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몽고제국의 팽창과 힘은 =기후변화에 따른 건조지대의 남하=호라즘의 약체,북중국(금) 남중국(송)으로 분열되 장성너머로의 힘을 상실한 중국=힘의 공백발생 먼저먹는놈이 임자=징키스칸 먼저 먹음=유목민집단 의 철저한 강자논리=징키스칸 단시일내에 전 유목민족 일통=징키스칸 야만족의 수장이나 그 정치적안목과 판단은 일세의 영걸=호라즘너머는 완전 무인지대로 만든다.안전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히 공격,치고빠지기 전술을 구사하며 점령지를 초토화 시키고 주민을 산개해 힘이 발생치 않게 한다.=명받은 제베와 수베에테이가 또 대단한 무장들이었다.=북중국먼저 먹는다(힘의 낭비를 최소화 하면서 최대의 효과거둠) 징키스칸은 역시 일대의 영걸이었다. 결론: 기후와 시대상황과 대초원 유목민의 기질등 이모두를 한번에 아우르고 버무릴수 있는 인물이 또 그때 때맛추어 나왔다. 이덕분으로서 몽고제국이 대발호할수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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