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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07 23:59
첫번째 문제는 저도 5같긴 한데... 확실치가 않고...
두번째 문제는 2번이 확실할거 같은데요.... 갑자기 예전 대항해시대2 시절이 생각난다는... ^^;;
09/05/08 00:05
동방과의 무역을 이슬람이 가운데서 했는데, 동방이 아닌 신항로가 생겨서 이슬람이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1번 문제는 저는 4번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자 동맹은 독일 지역이고 신항로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는데. 또 17세기 이후로는 한자 동맹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ㅠㅠ 공부 좀 해야겠네요;
09/05/08 00:10
첫번째 문제는... 신항로 개척은 대략 15~16C인데, 한자동맹은 13~15C, 자유방임주의는 18C에 생성된 이론인데,
ComaAgain님 답변처럼 한자동맹은 독일 내에서만 국한된 동맹이고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지역(독일은 대서양과는 '심각하게' 떨어져 있죠)이니... 4번과 5번중에서 확실한건 4번이고, 5번은 약간 아리송하네요;;; 신항로 개척 이후로 화폐경제가 오히려 발달했죠.. 쇠퇴했다면 지금도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09/05/08 08:55
5,2...
이슬람상인들이 위축된 이유는 신항로를 개척하기 전까지는 이슬람국가들은 거치는 '육로'로만 활동을 했습니다. 그로인해 중간에서 중개무역(맞나..;)을 하던 이슬람상인이 이득을 많이봤습니다. 허나,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굳이 이슬람상인을 거칠 필요없이 유럽인들이 직접 '해로'를 사용하여 무역을 해서 이슬람상인이 위축됐습니다.. 가물가물하네요 -_-;;
09/05/08 09:47
1. 첫번째 문제. 보기가 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4번은 기본적으로 보호 무역의 한 형태이고, 5번은 자유주의 무역입니다. 자유 방임주의 경제 정책을 가장 먼저 실현 한 국가로는 영국인데, 산업 자본가들이 의회에 진출한 이후에 실현됩니다.
2. 두번째 문제. 제가 보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2,5번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만 굳이 하나만을 답으로 하자면 2번이라 생각합니다. 5번도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신항로의 개척과 공장제 기계공업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울 뿐더러 '확대'라는 의미는 기존에 공장제 기계공업이 있었으며,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확대'되었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문제가 되겠지요. 3. 그렇게 도식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항로 개척 이후에도 지중해의 주요 무역 중심 도시들의 부는 일정 기간 동안 지속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특히 영국)의 경제력이 이슬람의 주요국가나 인도, 중국을 앞선 시기는 18C나 되어서나 가능했었습니다. 신항로 개척이 서지중해 국가에서 볼 때 가지는 의미는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었던 국가들이 새로운 무역 루트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정도로 보면 될 듯하고, 이것이 지중해 무역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은 현실과도 차이가 있으며, 과도한 해석인 듯합니다.
09/05/08 11:04
풋내기나그네님// 저는 세계사를 잘 모릅니다만, 말씀하신 공장제수공업의 확대와 신항로의 개척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쭤보자면.
(과학사를 연구비스무리하게 하였던 짧은 지식으로) 유럽의 상업문명의 열풍으로 휩싸이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십자군전쟁이 그 시발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십자군전쟁의 최대수혜자는 이탈리아 상인계급이었지요.한국전쟁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것처럼. 오고가는 십자군에게 물건을 대주기 시작하면서 피렌체를 비롯한 여러 상업귀족계급이 급성장합니다. 이들이 이후 서양 르네상스의 재정적 후원자였는데, 메디치가도 그 대표적인 가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문명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동양의 식탁과 문화였습니다. 도자기, 비단,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 차....대부분은 중국과 인도 등에서 구입하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상인들을 부자로 만든 것들이기도 하고요. 이들에 의해 시작된 산업의 발달은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대포, 망원경,안경을 비롯하여 산업혁명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비누까지 총망라합니다. 이 열풍은 포르투칼을 거쳐 네덜란드까지 확산되었고, 이와중에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가 이탈리아 중심의 독점무역에 반발하여 일어납니다. 도자기,차,비단,후추,그리고 아편 등등을 수입하기 위해 지리상의 발견으로 신대륙에서 걷어들인 은화의 절반은 중국으로 다시 흘러들어갔다고 하는데요,이 무역전쟁에 포르투칼과 네덜란드가 압도적인 해상무역으로 도전하여 성공하면서 세계 무역은 이른바 대항해시대의 절정에 다다릅니다.(그 최대 수혜국은 청나라라고 합니다. 청나라의 대규모 노동집약적 농장노동이 발달하면서 은화가 대거 유입됩니다) 그런데 이때에 인도,중국을 비롯한 새로개척한 식민지에 주요수출품이 비누와 같은 공업품목이었고, 이것들은 석탄을 이용하여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인플레를 야기하면서 서양은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돌파구가 증기기관이었습니다.이로서 상업혁명은 동력혁명에 힘입어 산업혁명으로 이행합니다. 이런 과정의 근간에는 길드와 마스터로 알려진 서양의 탄탄한 공장제 수공업의 전통과 십자군전쟁이후로 국제무역의 발달로 야기된 시장이 커지는데 대응하는 초보적인 공장제 기계공업의 탄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내용은 저로선 조금 이해가 안됩니다. 설명을 조금 부탁드립니다.
09/05/08 12:41
happyend님// 궁금하신 점이 '신항로 개척과 공장제 기계공업이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라는 부분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happyend님의 댓글을 보니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우선 말씀하신 내용 중의 오류를 말씀드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1. 우선 개념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본문에서 '공장제 수공업의 확대'라는 의미가 분명하지는 않군요.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산업혁명이 유럽 국가로 전파되는 것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지만 일단 전자의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그리고 '상업의 발달'과 '산업의 발달'은 다른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상업'은 교역.무역 등을 의미하고, '산업'은 공산품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위에서 말한 개념에 기반하여 말씀드리자면 십자군 전쟁으로 도시국가의 발달과 무역이 발달한 것은 맞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부를 축적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의해 시작된 산업의 발달은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라는 말은 개념의 착오에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3. '산업혁명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비누였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공산품은 '면직물'을 꼽는 것이 일반적이며, 영국의 주된 수출 품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청나라의 대규모 노동집약적 농장노동이 발달하면서 은화가 대거 유입됩니다.'라는 부분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명나라나 청나라에서 유럽에 판매한 상품은 곡물이 아닌 도자기류나 차가 주 교역 품목이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신항로 개척 이후 무역 구조로 바뀜에 따라 나타난 현상'과 '공장제 기계공업'이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의 의미는 '신항로 개척'과 '공장제 기계공업의 확대'사이를 직접적 인과관계로 묶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며, 간접적인 원인으로 삼기에도 '공장제 수공업의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을 '신항로 개척'이라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그렇지만 본문 내용에서 볼 때 정답이 하나라고 가정한다면 역사를 조금 비약해서 맞는 선택지로 볼 수 있겠지요. 7. 제 설명이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양사 개설서 중 '산업 혁명'과 관련 된 부분을 한번 참고 해 보시면 제가 설명한 것보다 훨씬 이해가 잘 가리라 생각합니다. ^^
09/05/08 14:21
풋내기나그네님// 답변감사합니다. 굳이 제의견에 대해 의견을 다시는 수고를 끼칠 의도는 아니었지만^^
말씀하신 것에 대해는 잘 알겠습니다. 제가 개념비약을 좀 했기도 하고요. 상업혁명이 산업혁명을 이끌어내었다....이것은 당연한 것이니 다시 설명하지 않고요,저는 그 과정을 이탈리아에서 전 유럽으로 상업자본의 확대와 이에 따른 산업의 '공장제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뀌어갔음이 사실이 아니냐...그리고 그에 따라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내부적 요소가 있지 않느냐....이런 의미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도 일단 말씀하신 지적들을 굳이 변명하자면, 1.저또한 산업혁명과 상업혁명을 같은 개념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상업자본과 이것이 산업생산자본으로 변화하여 재투자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세세한 과정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만 그 과정이 르네상스이후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학자권력(대학)과 장인의 충돌과정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결국은 이 둘의 의미있는 권력투쟁(이라기보다는 장인들의 투쟁과 성공)과정과 산업자본화과정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요. 2.따라서 그 다음의 '급속하게'란 시간표현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아서 그런 것이니,굳이 그걸 현대의 시간개념으로 본다면 지극히 천천히 이루어진 것이지만,이전의 중세사회의 해체속도에 비교해본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3.비누에 대해 제가 너무 선언적인 표현을 내린 것 같아 이점은 죄송합니다.설명하자면, 면방적기의 경우는 동력혁명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산업자본가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굳이 꼽으라면 비누를 들 수 있는데, 이유는 당시 세계의 교역대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유럽의 비누였습니다. 비누를 팔아 막대한 은화,금화, 비단,도자기,차를 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비누를 만들려면 커다란 그릇에다 넣고 끓인 뒤 굳혀야 하는데요,처음엔 나무로 땔감을 쓰다 차차 석탄으로 바뀝니다. 이석탄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는데, 문제는 광도에서 캐어야 하는 석탄의 채탄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죠.이에 따라 석탄가격이 8배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그때 바로 증기기관의 원시적 장치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동력혁명의 시작입니다. 4.사실입니다.뭘 지적하신지 모르겠지만...제가 아는 한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저는 곡물을 수출했다고 쓰지 않았는데,뭘지적하신거죠? 5.시간이 먼가 가까운가는 중요하지 않고요, 인과관계가 있느냐 아니냐인 것 같은데요. 직접적 인과관계는 저는 절대적이라고 봅니다.아니라고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근거를 말씀해달라는 것이 원래 저의 질문이었습니다.(질문의 의도와 다르게 논쟁적이 되어서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제 의견을 장황하게 쓰면, 마찬가지의 근거들을 바탕으로 인과관계가 없다고 답해주실줄 알고 여쭸던 것인데요....) 6.그 비약이라는 근거를 좀 부탁드립니다. 예를들면 이런 식으로요. '공장제수공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길드조직의 변천사를 보면 그것은 분명한 공장제수공업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럽의 상업자본의 성장에 따라 더러는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기계의 동력이 단지 동력혁명이전과 이후가 다를 뿐입니다만....' 여기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의 존재를 부정할 만한 근거를 좀 부탁드립니다. 7.책 추천은 언제나 고맙습니다^^
09/05/08 14:59
1. '그 최대 수혜국은 청나라라고 합니다. 청나라의 대규모 노동집약적 농장노동이 발달하면서 은화가 대거 유입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농장 노동'이 곡물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나 보군요. 말씀 하신 '노동집약적 농장 노동'이 무엇을 두고 말씀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 동력혁명과 산업혁명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필요 조건입니다. '면직물'은 산업 혁명기의 주요 생산품이 맞습니다. 그리고 비누가 증기기관 발명에 끼친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3. 그리고 '공장제 수공업'이라는 말은 오타입니다. 두번째 댓글에서만 잘 못 쓴 줄알았는데 첫번째 댓글에서도 '공장제 수공업'이라고 썼네요. '공장제 기계공업'을 쓴다는게 잘 못 썼네요. 댓글의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겠습니다. 4. '신항로 개척'과 '공장제 기계공업 확대' 사이에 직접적 인과 관계가 없다는 말을 달리 하자면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공장제 기계공업의 확대가 이루어 졌다'라는 말이 되겠지요. 이것을 두고 비약이라 표현 한 것입니다. 신항로 개척 이후 영국의 대외적 팽창과 이로 인한 원료 수입과 상품 판매 시장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간접적 영향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공장제 기계공업의 확대가 이루어 졌다'라고 말하기에는 산업혁명의 원인이 되는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요인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2차 인클로저 운동을 통한 농업혁명과 노동자층의 증가, 영국 의회제도의 발달, 제철업 발달, 증기기관 등의 기술 발명, 면직업의 발달 등을 들 수 있겠지요. 5. 개설서 중에는 소나무에서 나온 '서양문명의 역사'도 괜찮을 듯합니다. 제가 본 개설서 중에는 비교적 산업혁명의 배경과 그 영향에 대한 서술이 잘 되어 있는 듯 합니다. 저도 사실 개설서만 보는 수준이라서 ^^
09/05/08 15:34
풋내기나그네님// 일단,이제야 말씀하신바를 알겠습니다.
-개척 이후 영국의 대외적 팽창과 이로 인한 원료 수입과 상품 판매 시장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간접적 영향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공장제 기계공업의 확대가 이루어 졌다'라고 말하기에는 산업혁명의 원인이 되는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요인이 너무 많다. -예를 들자면 2차 인클로저 운동을 통한 농업혁명과 노동자층의 증가, 영국 의회제도의 발달, 제철업 발달, 증기기관 등의 기술 발명, 면직업의 발달 등을 들 수 있겠다. 이게 말씀의 요지입니다. 공장제 기계공업의 직접적인 확대는 '산업혁명'과 동의어다....뭐 대략 이런 취지인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굳이 제 의견을 첨부하자면, 기계공업에 대하여, 동력이 증기기관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신항로개척시대에 새로운 수출지역을 겨냥한 산업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비누공업','유리공업','금속공업'을 비롯해서 상공업의 발달이 없었다면 이후의 산업혁명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비누'이야기는 단순한 상징성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모르시고 있다니,저야 더 드릴말씀이 없지만,과학사에서 그 이야기는 좀 유명한 이야기라....) 논쟁은 여기서 끝냈으면 합니다. 저는 말씀하신 근거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가가 궁금했던 것이라,논점은 해결되었습니다. 굳이 한마디 더 하라면(죄송합니다.저도 모자란 사람이지만) 공장제 기계공업의 확대시기를 영국의 산업혁명의 시기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졌고,그 이유가 바로 신항로개척을 통해 대서양연안국가들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영국은 활발한 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특허국의 문턱이 닳을지경이었고, 그중 3/4는 석탄산업에 관한 특허였으며 그중 14%가 석탄채굴시 배수문제였습니다. 이 배수문제를 해결하면서 증기기관이 탄생합니다.그리고 다음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요.따라서 풋내기나그네님의 생각은 좀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보충하여 말씀하신 지적에 대해 1.청나라의 노동집약적 농장노동:비단,차,도자기 공업은 이런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페어뱅크의 동양문화사를 참고하시면 정확한 데이터가 나옵니다) 2.동의어가 아닌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그관계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혼동해서 쓴것처럼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3.통과하겠습니다. 4.의견은 말씀드렸습니다. 신항로개척은 공장제기계공업의 확대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그게 유일하다시피한 이유이다고요(뭐,더 근본적인 이유는 신흥부루조아층의 이윤추구욕구이겠지만) 5.책추천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09/05/08 16:53
답변 달아주신 분들... 고등학교 세계지리 문제를 너무 푸신 듯 -_-;
답은 실제 역사와 관계 없이 5, 2로 찍어야 답이 됩니다. 1번의 4번 답은 사실 문제가 있지만, 신대륙 발견으로 상업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상업도시인 한자도시는 그냥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2번의 2번 답인 이유는 1,2,3,5 번이 지향하는 방향과 다르기 때문에 답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내는 문제를 풋내기나그네님// happyend님// 따지면... 선생님들 죽습니다. ^^;
09/05/08 17:47
happyend님// 증기기관 발명 자체가 공장제 기계공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동력(증기기관)을 통한 이전과는 다른 생산 방식의 산업 형태(공장제 기계공업)가 이뤄진 시기를 '산업혁명'이라 합니다. 그런데 공장제기계 공업의 확대가 산업 혁명에 비해 훨씬 앞선다는 말의 의미는 잘 알 수가 없군요.
어쨋든 역사사실의 비약의 문제를 떠나 문제의 맥락상 답지는 2번이 되겠군요.그런데 석탄채굴과 증기기관의 관련성을 디테일하게 잘 알고 계시네요. 전 예전에 몰라서 중요한 시험을 망친 기억이 있습니다. 내일은님// 본문을 올리신 분은 찍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 아닌 문제의 이해, 즉 문제에 대한 해석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 문제에 대한 해석 능력을 갖추지 못한 교사는 이미 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09/05/09 08:08
일단 답변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정답은 4번 2번이구요. 4번에서는 한자도시들의 기능이 쇠퇴되었다고 알려주셨는데 ...... 그 이유 알려주실 수 있는 분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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