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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27 01:40
한국사의 이해 과목을 들었을 때, 통일신라를 전공하신 교수님도 그러시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긴 한데 사실 고문같은 경우 현재와 뜻이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들도 많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구요. 다만 서라벌은 진짜 엄청 사람이 많이 살고 크긴 컸다고-.-;;
08/08/27 01:51
아, 어디갔다 왔더니 제가 완전히 뻘짓을 해놨네요. 졸려서요. 죄송합니다.(굽실굽실)
확실히 저 당시 서라벌 규모가 크긴 컸다네요. 일단 방이 1550개에 리랑 다른 행정구역도 있으니 35제곱킬로미터보다는 좀 더 넓게 봐야 되구요. 인구 수도 옛날 서민층 이하는 요즘보다 대가족이 훨씬 많았을테니 작은 집에도 몇남매,부모,조부모,친척 등이 모여 살아서 인구가 저렇지 않겠느냔 해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에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스쳐지나가면서 봤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네요;; 당의 장안이나 발해 수도 였던 그... 뭐시기(죄송합니다;;;)도 기록을 보면 인구 수준이 지금의 도시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고요.
08/08/27 02:09
무말랭이님// 상경이었나요.
무말랭이님 말씀대로... 그 뭐야, 1993년쯤 있었던 도농 통합 지역개발인가 뭔가, 아무튼 중심 시가와 근처 군면을 합해서 행정구역을 다시 짠 결과를 생각하시면 편할 듯 하네요. 다시 말씀드리면 "부르주아"(성 안에 있는 사람들)와 "근교 농민"이 합쳐진 인구가 90만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까요. 또한 기타 행정구역이 얼마나 면적이 큰지 나와 있지 않다는 것도 있죠.
08/08/27 04:01
제가 본 블로그에서는 경주가 100만가까운 도시라는거는 동시대 다른 나라와 비교할때 어불성설이라고 하던데요.
아마 윗분들 말씀대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생활권의 기준으로 보는게 옳을것같습니다. 어느시대에나 통용되는 합리적인 기준은 있는 법이니까요. 저도 어렸을때는 경주가 대도시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랬었는데, 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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