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한 곳에
-뭐가 됐든, 언제든
수업 첫 시간에는 오리엔테이션(OT)를 진행한다. 강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게 될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고, 평가 기준에 대해서도 공지한다. 그리고 수업에 임하는 자세를 권면하는데,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한 곳에”이다. 강의실에 몸을 데리고 왔으면, 마음도 수업 시간에 함께 있자는 소리다. 달리 말하면, “딴 생각 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집중 좀 해라!”가 되겠다. 몸이 있는 건 확인 가능하지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는 만화책에서 배웠다. 학창 시절에 재밌게 본 작품 중 하나가 서영웅 작가의 『굿모닝 티처』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 만화로 10대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방황을 그린다. 작중 시간은 1996년~1999년인데, 이 시기는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때와 큰 시차가 나지 않아서 더 공감하며 봤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는 작품의 주인공인 박영민이 진로를 비롯해 여러 고민에 빠져 있었을 때, 한 친구가 해줬던 조언으로 기억한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강의를 끝내는데, 한 학생이 왔다. 수업계획서에 대한 질문 몇 개를 했고, 이어서 “몸과 마음이 한 곳에”에 대한 저의를 물었다. 그래서 말했다. “오리엔테이션 들어보고,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기 힘들 것 같으면, 나가라는 뜻이다.”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수강 신청을 하게 되기에 1주 차 수업을 들어봐야지 감이 온다. 내가 맡은 과목은 교양이거나 전공 선택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대안은 있다.
살다 보면 인생은 아무렇게나 간다. 그건 의외로 내가 선택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탓이다. 일단 부모를 내가 택할 수 없다. 가족 구성원도 그렇다. 학창 시절에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얼굴들도 마찬가지다. 졸업 후는 또 어떤가? 상사도 동기도 후임도 사장도 내가 고를 수 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의 결정권도 대부분 딴 놈이 갖고 있다. 그래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굿모닝 티처』가 떠올랐다.
돌아보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인생을 꾸렸다기보다는, 그때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흘러왔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대강 그랬다. 남들만큼은 열심히 살았고 평균 이하의 수면 시간을 유지하며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도통 알 수 없는 삶을 여전히 산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만큼은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을 수 있는 안을 택하려 애쓴다.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하고, 그런 상황임을 인지하려고 한다. 강의를 준비하고 수업을 진행할 때, 누군가를 만나는 상황과 그 관계의 지속 여부를 가늠할 때,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육아에 전념할 때, 쇼츠를 보며 도파민 중독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뭐가 됐든 언제든.
대개의 학생들은 고등학생 시절까지 이미 주어진 수업을 듣게 된다. 대학생 때도 강의 전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양이나 선택 과목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라는 말을.
너무 많은 학생이 나가서 폐강이 되면 곤란하지만.
#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서 아주 오랜만에 만화책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간 자율 학습을 땡땡이친 상태에서 친구가 한 조언이었다. 불편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몸과 마음이 언제나 같은 장소에”라고 한 것이었다. 친구 말의 요지는 어차피 공부가 잘되지 않아서 시간만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땡땡이를 친 것이었고, 이미 그런 선택했다면 여기에 집중하자는 거였다. 작품 속의 박영민은 툴툴댔지만, 오히려 이 에피소드를 본 내가 더 와닿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