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일기장 같은 이야기라 어체가 두서없을거에요.
근데 한번 꼭 정리하고 싶더라구요.
반말?존댓말?? 휴먼만취체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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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였을 겁니다.
평소처럼 게임이 안 되서 집안이 떠나가라 악을 쓰는데 내가 사는 층도 아닌 윗층에서 문을 쾅 여는 소리와 함께 어떤 XXX야!!!!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뒷목이 얼어붙는 공포란.
그와 함께 생각난 1개월 텀을 두고 두 번 박살나 버린 휴대폰 액정.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정신과에 방문.
보통 '분노조절장애' 라고 알고 있는 이 병명은 정확하게는 [간헐적 폭발 장애] 입니다.
그래도 전 그나마(?)얌전한 축 이라고 해야 되나.
심하면 분노에 접어드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단기기억상실이 오기도 한다죠.
다행히 전 사람 앞에선 거의 티를 낸 적이 없었고 확실한 트리거-내가 하는 하려는 게임이나 일이나 작업이 어쨌든 계속 막혀서 진전이 없을 때- 아니면 발동이 안 되다 보니 저렇게 혼자 푼다고 했는데 방음이 안 되다 보니.....
초반엔 많이 괜찮아 졌다가 곧 다시 살아나긴 했습니다.
단지 빈도와 강도가 확연하게 줄어들었죠.
이제 옆집이나 윗집에서 벽을 두들기지도 않고 휴대폰 액정도 아직 멀쩡하고 화가 나도 금방 사그라 들게 되었죠.
비유하자면 물이 점점 차오르는 냄비가 있는데 옛날에는 냄비 용량도 작았고 차오르는 속도도 빠르고 차오르면 막 넘쳐나오고 어디 풀지도 못 하고 방황하고 사그라 든 이후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오고.....
지금은 냄비 용량도 늘어났고 물 빠지는 구멍도 하나 만들어졌고 적절한 속도로 차오르며 넘치는 일이 많이 줄었고.
물론 억제를 억제하는 알콜 이라는 존재가 추가되면 살짝 발동되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보단 훨씬 덜 한 강도.
오늘 갑자기 느꼈습니다. 갑자기 큰 문제가 생겨서 그걸 급하게 해결해야 했어요.
옛날 같았으면 두세번 반복하는 와중에 그거 못 참아서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을 거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이유를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고 이유를 찾아냈죠. 멍청한 짓을 해서 그만 크크크.
해결해 놓고도 그냥 아 잘 넘겼네 어휴 다행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찬찬히 떠올려보니 어느새 이만큼 발전 했습니다?!
치료 와중 2개월 지났을 때에 휴대폰에 과몰입해서 주변을 아예 확인하지 못 해서 회사에서 크게 혼난 적이 있어요.
완전 멘탈이 박살이 나서 1주일 정도 식사도 하기 싫어지고 불안감이 미친듯이 올라오고....
이걸 말씀드렸더니 2주치의 약을 하나 추가해줬고 극적으로.............라고밖에 할 수가 없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180도 뒤집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려나.
ADHD 약이었음. 증상중의 하나가 오히려 하나에 과몰입해서 주변을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거라네요. 보통 생각하던 ADHD 와는 완전 반대죠?
그 2주간의 희열과 고양감이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거에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도파민의 강제자극이 몰려오는 와중에 지금까지 잘못 되었던 행동들이 싸그리 다 교정되는 놀라운 효과란.
옛날에도 게임중독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정신과에 갔다가 효과가 딱히 없어서 슬그머니 그만 갔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엔 달라요.
드디어 일하는 중엔 너무나도 심심해서 무조건 달고 살던 휴대폰을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 휴대폰을 보면서도 주변을 보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게 되었고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사실 내가 놓친게 맞는데 꼭 잘 보고 있을 때는 안 오다가 내가 다른거 하면 와서 놓치게 한다 같은 피해망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내가 문제였으니까.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게 되었고. 우울증도 약간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없을거에요.
자는 것 보다 게임 못 하는게 너무 아까워서 항상 새벽2~3시까지 어거지로 붙잡고 있던것도 이제 자연스럽게 졸리면 바로 욕망을 떨쳐버리고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고. 불면증은 없어서 매우 다행이야.
옛날에는 될대로 되라 하면서 살았다면 이제 집에서 쉬면서도 주변을 돌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저번주에는 정말 오랜만에 대청소를 한 번 했어요. 1년 동안 묵어있던 안 쓰던 공간의 먼지도 제거하고 머리카락도 다 치우고 쌓여있던 쓰레기도 이제 재깍재깍 치우고 등등.
술만 좀 줄이면 되는데 위스키 사놓은게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1주일에 2일씩만 마셔야 한다.
의사쌤도 술 줄여야 한다고 말씀은 하시지만요 크크크.
알중으로 인생 조진 케이스를 아주 길~~게 지켜 본 덕분에 그래도 최대한 조절이 되고 있다고요!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장애만 제 마음가짐으로 줄이면 더욱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해주심.
좀 많이 늦긴 했지만 인생의 방향추를 드디어 제자리로 돌려놓은 느낌.
저는 아직 살 날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남아 있을 겁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불편함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바꿔 55세에 데뷔하여 이름을 남긴 가수도 있는걸요.
주말 2일간의 휴일이 항상 기다려져요. 노래를 양껏 부르고 먹고싶은 걸 먹고 술도 마시면서 편하게 마음 놓고 잘 수 있으니까요.
소(련의) 확(장주의적) 행(보) 라는거죠!
여러분 작은 소련이 있었어요!
맺음 - 지금까지 인생을 지배했던 습관들이라는게 이 9개월만에 다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의사쌤도 그랬고요. 1년만에 이걸 치료 할 수 있다면 그 병원으로 보내주겠다고요 흐흐. 평생 안고 가야 할 수도 있죠.
그래도 내일 더 한뼘이라도 더 성장하는 저를 기대하며 오늘도 행복감을 적절하게 충전하며 잠에 듭니....빨래 언제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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