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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2/05 15:23:57
Name 아난
Subject [일반] '캔슬된' 예술가들의 작품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할끼? (번역) (수정됨)
필자인 노엘 캐럴은 아주아주 유명한 미국 철학자 및 미학자입니다. 특히 대중예술에 대한 저작들과 영화미학 저작들이 유명합니다. 영화에 이론적 관심이 많은 분들은 주류 거대 영화론 비판이 키 포인트인 이 양반의 영화미학 저작들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단 한권도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영화학계가 편향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번역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두 권 되어 있습니다. 각각 제목이 '예술철학'과 '비평철학'입니다. 캐럴은 읽어내기 힘들게 쓰는 사람이 아니고 둘 다 아주 호평받은 책이니 이쪽 공부가 업이 아닌 분들도 예술과 비평에 이론적 관심이 있으면 도전해 볼만 합니다. '노엘 캐럴'이라는 제목의 노엘 캐럴 입문서도 있습니다. 두 번역서 중 '비평철학'의 번역의 질은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입문서를 쓰신 분이 번역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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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should we relate to the work of “cancelled” artists? (Noël Carroll )
우리는 '캔슬된' 예술가들의 작품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할끼? (노엘 캐럴)

• 출처: 뉴 스테이츠먼 / 2021년 2월 2일
https://www.newstatesman.com/culture/2021/02/how-should-we-relate-work-cancelled-artists

In engaging with the output of compromised figures, we must decipher whether the artist’s misdemeanours have a bearing on the moral questions arising from their work.

타락한 인물들의 소산에 임할 때에는, 그 예술가들의 비행이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생기는 도덕적 질문들과 관계 있는지 여부를 해독할 필요가 있다.

In recent years, especially in the wake of the MeToo movement, many art lovers have asked themselves what their response to dishonoured artists should be. Some have decided to “cancel” the offending artists – to boycott their work as a punishment for their wrongdoing. In fact, some media companies have literally cancelled their contracts with artists following allegations of misconduct – perhaps to protect their own products from being cancelled.

최근에, 특히 미투 운동을 계기로, 많은 예술 애호가들은 불명예 예술가들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문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벌로 그들의 작품을 보이콧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들을 "캔슬"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일부 미디어 기업은 부정행위 혐의가 있는 예술가들과의 계약을 말 그대로 해지하기도 했다 - 아마도 자사 제품이 캔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But these responses are not responses to the artworks themselves. They are motivated by external reasons pertaining to the artist’s standing and to financial issues.

그러나 이 반응들은 예술작품들 자체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예술가들의 지위와 재정적 문제들과 관련된 외부적인 이유들을 동기로 한 것이다.

Of course, such considerations are not utterly conclusive. One might still have reasons to consume works of morally compromised artists such as Leni Riefenstahl. Watching her Triumph of the Will, for example, may be a reasonable thing to do in order to gain insight into the minds of Hitler’s followers for historical purposes or in an effort to comprehend the allure of contemporary fascism.

물론, 그런 고려 사항들이 완전히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레니 리펜슈탈 같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소비해야 할 이유들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그녀의 <의지의 승리>를 시청하는 것은 역사적인 목적들로 또는 동시대 파시즘의 매력을 파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히틀러 추종자들의 심리를 통찰하기 위해 해야 할 합리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But here, too, external reasons govern the art lover’s response to the tainted artist, and these can be contrasted with what might be called “reasons of art” – reasons that grow out of our transactions with the artwork itself, reasons internal to the experience of the work.

그러나 여기에서도 오염된 예술가에 대한 예술 애호가의 반응은 외부적 이유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들은 "예술의 이유들" - 예술작품 자체와의 우리의 트랜섹션들에서 나오는 이유들, 작품의 경험에 내부적인 이유들 - 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과 대조적이다.

Simply reading The Clansman by the white supremacist Thomas Dixon is probably enough for the morally sensitive reader to dismiss it, since the experience of following the narrative, including rooting for the protagonists, asks us to accept racist ideas.

백인 우월주의자 토머스 딕슨의 <더 클랜즈먼>을 읽는 것만으로도 도덕적으로 민감한 독자는 그것을 주저없이 기각할 것 같다. 주인공들의 응원을 포함해 그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경험은 인종차별주의적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Sometimes internal reasons involve moral factors that arise from our very engagement with the works of culpable artists. In such cases, we may wonder whether internal reasons alone could count against our having any contact with blemished goods.

[이와 같이] 때때로 내부적 이유들은 과실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들과의 우리의 바로 그 인게이지먼트에서 생기는 도덕적 요인들을 포함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내부적 이유들이 흠집 있는 작품들과 어떤 접촉도 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인지 여부를 궁금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How?

어떻게?

Consider the novel. Novels do not only portray human affairs. Often, they endorse or condemn various ways of being in the world. The novels of the French author Gabriel Matzneff portray paedophilia. But recent revelations about his life indicate irrefutably that his books are also endorsing paedophilia, unlike Vladimir Nabokov’s Lolita, which only portrays it.

소설을 생각해 보자. 소설들은 인간사를 묘사할 뿐만이 아니다. 종종, 그것들은 세상의 다양한 존재방식들을 지지하거나 비난한다. 프랑스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의 소설은 소아성애를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생활에 관해 최근 밝혀진 것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소아성애를 묘사하고 있을 뿐인 것과는 달리 그의 책들은 소아성애를 지지하고 있기도 함을 반박의 여지 없이 가리키고 있다.

The difference between Nabokov and Matzneff suggests that, when an artist is proven guilty of some wrongdoing, that guilt can be considered in relation to the artist’s works that invite us to endorse the wrongdoing in question. That is, the morally conscientious art lover may justifiably refuse an author’s summons to endorse evil, although, I stress, only in the artist’s works that propose such a contract.

나보코프와 마츠네프의 차이는 한 예술가가 어떤 부정행위로 유죄로 밝혀질 경우, 그 유죄가 문제의 부정행위를 지지하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그 예술가의 작품들과 관련해서 고려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도덕적으로 양심적인 예술 애호가는 악을 지지하라는 한 작가의 호출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강조하는 바인데, 그 호출은 그러한 지지를 권유하는 그 예술가의 작품들에 있는 것이다.

I think this approach makes sense. WB Yeats was a proponent of eugenics. But why should that interfere with our appreciation of his poem “The Fiddler of Dooney”? There are no racial politics there. After all, we continue to use some of the statistical techniques of Karl Pearson, despite his commitment to eugenics, because they benefit us. Likewise, despite Yeats’s failings regarding race, we can benefit from his creations that don’t require us to endorse immoral sentiments. The celebration of joy in “The Fiddler of Dooney” is not compromised by Yeats’s dubious biological convictions.

이 접근법은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 WB 예이츠는 우생학의 지지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왜 우리가 그의 시 <두니의 피들러>를 감상하는 것을 방해해야 하는가? 거기에는 인종 정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칼 피어슨의 우생학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계 테크닉들 중 몇 가지를 계속 사용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익을 주기 때이다. 마찬가지로, 인종에 관한 예이츠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부도덕한 감정을 지지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그의 작품들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두니의 피들러>에서의 환희 찬양은 예이츠의 의심스러운 생물학적 신념들에 의해 손상되어 있지 않다.

Similarly, Roald Dahl’s anti-Semitism does not give us an internal reason to forsake his children’s stories which do not traffic in this prejudice. If James and the Giant Peach does not internally prescribe our endorsement of anti-Semitism, why cancel it?

마찬가지로, 로알드 달의 반유대주의는 이 편견을 반입하지 않는 그의 어린이들용 이야기들을 포기할 내부적인 이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제임스와 자이언트 복숭아>가 우리의 반유대주의 지지를 내부적으로 처방하고 있지 않다면, 왜 그것을 캔슬하는가?

Here, I have connected the known moral misbehaviour of the artist with the moral content of the work and urged that, where there is no connection, the art lover should feel free to savour the work. But why put such weight on the existence of bad behaviour as a clue to the artist’s endorsement of evil? Shouldn’t the conscientious art lover feel uncomfortable in the face of the mere portrayal of evil?

여기서, 나는 예술가의 이미 알려져 있는 비행을 작품의 내용과 대조해 보고 둘 사이에 아무런 연결도 없는 경우 예술 애호가는 자유롭게 그 작품을 맛보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왜 예술가가 악을 지지함을 알려주는 단서로서의 나쁜 행동의 존재에 그토록 무게를 두어야 할까? 양심적인 예술 애호가는 악의 묘사를 대면한 것만으로도 불쾌하게 느껴야 하지 않을까?

No, because the mere portrayal of evil does not always signal endorsement.

그렇지 않은데, 악의 묘사 그 자체가 언제나 악의 승인을 나타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David Chase, the showrunner of The Sopranos, presented the mafioso Tony Soprano as a harried family man, thereby eliciting positive feelings for him from many viewers. But the show did not endorse Tony’s criminal activities. Rather, it unmasked the way in which the excuse – “I did it all to take care of my family” – can serve as a rationalisation for the most heinous transgressions. In doing so, it asked the viewers to reflect upon this rationalisation, perhaps even in their own lives.

<더 소프라노스>의 쇼 런너 [작가] 데이비드 체이스는 마피아 단원인 토니 소프라노를 분주한 가정적 남자로 묘사해 많은 시청자들이 그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 쇼는 토니의 범죄 활동을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 모두 가족을 돌보기 위해 했다"는 변명이 가장 흉악한 범죄의 합리화로 구실할 수 있는 방도를 폭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아마 그들 자신의 삶에서도 작동하고 있을 이 합리화에 대해 숙고하도록 요구했다.

Similarly, apparent evil is sometimes lionised for the sake of what might be called “moral immoralism”, where the actions in question are designed to challenge the dubious constraints of conventional morality. For example, violations of established sexual mores, as portrayed in DH Lawrence’s Lady Chatterley’s Lover, may be foregrounded in order to subvert the status quo, so that what appears immoral serves a higher or more moral morality.

마찬가지로, 때때로 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도덕적 부도덕주의"라 불릴 수 있을 것을 위해서 추켜 세워진다. 문제의 행동이 관습적 도덕의 의심스러운 제약에 도전하도록 있는 고안되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DH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묘사되어 있는 것 같은, 기성 성관습의 위반은 현상태를 뒤집기 위해 전경화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전경화된 결과 부도덕해 보이는 것은 더 높거나 더 도덕적인 도덕에 봉사한다.  

For these reasons, and others maybe even more obvious, the simple portrayal of evil cannot be read as an endorsement of evil. Yet when an artist has been found guilty in their daily life of the very crimes and misdemeanours that are exhibited in their work, then it seems reasonable to suspect that we are meant to endorse them – to embrace a positive attitude toward them. And this is something a righteous art lover may resist, even to the point of closing the book and putting it aside.

이러한 이유들, 그리고 아마 더 명백한 다른 이유들로, 악의 묘사 그 자체가 악의 지지로 읽힐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묘사되어 있는 범죄들이나 비행들을 일상생활에서 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그 작품이 우리에게 그 행동들을 지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 행동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요구는 정의로운 예술 애호가가 책을 덮고 치워버릴 정도로 저항할 수도 있을 어떤 것이다.

Of course, this may not be the final word. There may be reasons to open the book again, possibly to gain a better grasp of the corruption involved. Nevertheless, what I have called “reasons of art” can play a legitimate role in deliberating about what is to be done with respect to disgraced artists. And whether we continue to engage with an artist’s work may depend on weighing our external reasons against our internal ones.

물론, 이것이 마지막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아마도 관련된 부패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다시 펴야 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예술의 이유들"이라고 부른 것은 명예가 실추된 예술가들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검토하는데 정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예술가의 작품과 계속 인게이지 할 수 있을지 여부는 우리의 외부적 이유들과 우리의 내부적 이유들을 저울질 하는데 달려있을 것 같다.  

Noël Carroll is Distinguished 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CUNY Graduate Centre. He is the author of Art in Three Dimensions and Beyond Aesthetics.

--
노엘 캐럴은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의 저명한 철학 교수이다. 그는 Art in Three Dimensions 과 Beyond Aesthetics 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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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17:52
수정 아이콘
[악의 묘사 그 자체가 언제나 악의 승인을 나타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다는 점을 계속해서 느낍니다.
계층방정
21/02/05 17:56
수정 아이콘
문제는 독자들조차도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죠. 독자들은 작품 내의 악의 묘사만을 보고 (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음 속으로 악을 승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영만 화백의 비트도 작품의 주제의식은 조폭 생활의 허망함이지만(실제로 끝까지 다 읽어보면 주인공의 조폭 인생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죠), 작품에서 묘사되는 조폭의 생활을 보고 '조폭은 멋있어!'라고 생각한 독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21/02/05 18: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맞습니다.
일차적으로 계층방정님 말대로 그냥
예술작품에 나오는 행동들, 특히 주인공이 하는 행동들을 무비판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독자들이 많다 보니
이에 대한 반발로 '예술 작품에서 악의 묘사는 옳지 못하다'는 황당한 의견들 역시 생겨나죠.
최근에 '조커'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겠네요.
21/02/05 18:15
수정 아이콘
결국 창작자도 작품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테니 적절한 해설(적극적이진 않더라도 마지노선을 세우는 측면에서)을 작품 내에서 해주던가 아니면 작품 밖에서라도 해주는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요즘처럼 창작자와 대중의 거리가 가까워진 시대에는요.
닌자35
21/02/05 18:24
수정 아이콘
멍청한 독자 몇이 지껄이는 소리들은 세월이 가면 잊혀질 거라 별로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남는 건 남을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 동시대를 살아가던 별 의미도 없는 생명들의 헛소리들이 아니죠.
실제상황입니다
21/02/05 19:25
수정 아이콘
애초에 작품 내적으로 악을 승인해선 안된다는 법도 없죠.
21/02/05 22:00
수정 아이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술가가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악이라고 생각하면서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악을 추구하는 인물을 다룰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예술가가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전혀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데 비평가에게는 그 행위나 삶의 방식이 악으로 판단된다면 비평가는 해당 예술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그 때문에 떨어졌다고 평가합니다. 즉 악을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지 않음은 예술가 자신과 비평가 양자 모두에게 훌륭한 예술작품의 필요조건입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 예술가도 비평가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작품 내적으로 악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습니다. 작가 자신은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더라도 그 행위나 삶의 방식이 사회적 통념상 악으로 판단될 경우 해당 작품은 상영되지 않을 것이고 출판되지 않을 것이고 전시되지 않을 것이고 공연되지 않을 것이며 설혹 되더라도 조만간 그리될 것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2/05 22: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당연히 평가야 떨어지는 거구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평가의 측면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아니 물론 크게 봤을 땐 다 평가의 측면이긴 한데... 그러니까 악을 지지하는 작품이라고 해서("예술가가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전혀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데 비평가에게는 그 행위나 삶의 방식이 악으로 판단된다면"), 존재해선 안 될 것처럼 혹은 읽어선 안 될 것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거죠. 아니 뭐 그것도 어차피 다 가치판단의 영역이긴 한데...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있는 게 아니라 없습니다. 애시당초 반드시 훌륭한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당연히 메이저한 플랫폼에서는 상영되거나 출판되거나 게시되기 어렵겠죠. 근데 그런 곳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악을 지지하는지 아닌지도 판단하기 애매하니까요.
21/02/05 22: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메이저하지 않은 플랫폼에서라도 안 됩니다. 사실 굳이 '예술적 가치' 운운할 필요조차 없고 따라서 '반드시 훌륭한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게 아니다'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가장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에서도 사회적 통념상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나 삶의 방식을 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예술작품 폼을 잡든 아니든] 그 어떤 것이든 캔슬됩니다. 따라서 다시 말하지만 작품 내적으로 악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습니다. 해당 예술가나 해당 되는 것의 제작자에게 강제력이 행사된다는 의미에서 거의 문자 그대로 법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악한 것으로 인지하면서 그 행위나 삶의 방식을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 예술가는 없습니다. 실제로 캔슬되는 경우 모두는 예술가가 작품 내적으로 자기의식적으로 악을 지지한 경우가 아니라 예술가에게는 악의 작품 내적 지지이지 않은 것이 사회적 통념상이나 특정 유력 집단의 통념상에서는 악의 작품 내적 지지로 판단되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악을 지지하는지 아닌지도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 경우도 실제로는 예술가에게는 악의 작품 내적 지지이지 않은 것이 사회적 통념상이나 특정 유력 집단의 통념상에서는 악의 작품 내적 지지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경우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2/05 22:3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위에서 나온 작품들, 소프라노스나 롤리타 같은 것들은 지금 나와도 캔슬 안 되지 않을까요?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대중들이 보기에는 적어도 롤리타 같은 건 애매할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유명한 작품들 아니더라도, 웹소설 사이트 같은 데 가 보면 인종차별 뉘앙스가 강한 소설들 수두룩합니다. 로리콘, 쇼타콘 미화하는 소설이나 화간, 그루밍 미화하는 소설들도 수두룩하구요. 평가 운운하시는데 이런 것들은 비평가들의 평가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제가 봤을 땐 아직도 너무 메이저한 플랫폼 위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온갖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팔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생업이 아니라 취미로 제작되는 것들도 부지기수이며, 메이저는 고사하고 음지에서 유통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작품 내적으로 악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습니다. 그저 조건의 여하에 따라 있는 경우들이 있고, 그런 게 양지에서 주류로 통하니까 하시는 말씀이겠죠. 뭐 애초에 그런 주류적인 레벨에서 이야기하신 걸로 이해는 합니다만.

그리고 네 저도 "사회적 통념상이나 특정 유력 집단의 통념상에서는 악의 작품 내적 지지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경우"를 이야기한 것인데요. 댓글 수정하셔서 저도 추가로 적습니다.
21/02/05 22: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작품 내적으로 악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있다'로 저는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을 악한 것으로 [인지]하면서 그 행위나 삶의 방식을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 예술가는 없다'를 의미합니다. 결과적으로 작품 내적으로 지지할 수는 있으나 [자기의식]적으로 그리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경우들에서 해당 작가들이나 그 작품들 감상자들은 '그게 뭐가 악이야'라고 또는 나는 '그런 것을 권장할 의도가 없었다'라고 생각/주장할 것입니다. 그 생각/주장은 그리 소박하거나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작품 내적으로 지지하는 지 여부'는 대중예술조차 못되는 포르노그라피 수준의 작품이 아니라면 늘 조금이라도 애매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주장은 통합니다. 그러나 물론 애매하다는 것은 요즘같은 캔슬 문화 시대에는 안전판이 아닙니다. 애매하긴 하지만 여전히 감상자들에게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평가를 유력한 집단으로부터 받으면 주류에서든 아니든 캔슬될 위험에 처합니다. 물론 캔슬에도 여러 수준이 있기는 합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2/05 22: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그 자기의식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엄밀하게는 악을 지지하는 작품이 없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다만 편의상 사회통념적으로 악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지지하는 경우를 얘기한 거죠. 그런 경우 캔슬될 위험에 쳐하는 것까지는 당연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고 그걸 감수하고 만드는 경우도 많으며 그렇게 그럭저럭 많이 만들어져서 소비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반드시 작품 내적으로 악을 지지하면(자기의식적으로는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안 된다는 법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습니다. 어쩌다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현실적으로도 그렇단 겁니다. 사회통념상 불온한 것들은 당연히 그러한 위험에 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념상 악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작품 내적으로 항상 지지해선 안될 만큼 언제나 그 위험이 크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게 당위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계실 뿐이구요.
21/02/05 18:18
수정 아이콘
하도 사고 많이치는 장르를 오랫동안 들으니 어느정도 내성이 생기는거 같더라구요.
아티스트가 사고친 경우 => 듣는건 듣는건데 배우지는 말자..
가사 내용적으로 좀 그런 경우 => 듣는건 듣는건데 어디 추천은 하지 말자..(?) 뭐 이런식으로요 크크
갸르릉
21/02/05 21:13
수정 아이콘
현대들어서 작가와 작품의 분리란게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바라보기가 힘들다는게 입증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닌자35
21/02/05 21:36
수정 아이콘
오히려 현대 들어서 작가의 인성과 작품을 분리해서 보는 이론이 더 발전했고 그게 작품을 올바로 평가하는 법임을 알게 된 거죠... 실제로 문학과(제 경우엔 영문학과지만 다른 어문학도 유사합니다)에선 작가의 인성이니 뭐니 거들떠도 안 봅니다.
소독용 에탄올
21/02/05 21:54
수정 아이콘
학술적으로야 나뉘긴 합니다만, 그런건 해당 분과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작품을 올바로 평가하는 법이 학술적으로 존재하는 일은 가능할겁니다만, 사회일반에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은 학술적 기준이 아닐 공산이 크죠.
21/02/06 00:51
수정 아이콘
언제나 흥미로운 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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