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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2/09 18:18:07
Name Lighthouse
Subject [일반] 만남, 추억, 사랑, 이별, 그리고 죽음.
나는 중학생활을 한국에서 마치고 해외로 나가서 공부를 했다.


해외에서의 생활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결코 아니였다. 중학교까지 올라가던 시절 가장 잘하던 과목 중 하나가 영어였고, 부모님의 조기 교육으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데에 익숙해져있어서, 사실 영어를 배우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니까.

긴 해외생활을 보내며 가장 힘든게 있다면, 돌이켜보면 그건 바로 아는 사람들과의 인연의 끈이 옅어짐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 있을 시절, 나는 광주에 계시는 할머니 댁을 꼬박꼬박 찾아뵙곤 했다. 우리 집에서 광주까지 한시간도 안걸릴뿐더러, 친가뿐만 아니라 외가또한 광주에 있었기때문에 각종 명절들 혹은 그런게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광주로 올라가 친가와 외가를 방문하곤 했다. 그런 주기적인 만남이 내가 해외로 나오면서 끊겨버린것이다.

나에겐 할아버지가 안계신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두분 모두 내가 태어나기직전, 그리고 태어나고난 직후 돌아가셨기때문이다. 내겐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분이 계시는데, 외할머니는 정말 지혜로우시고, 내가 본 그누구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노력하시는 분이셨다.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외할머니가 떠오를정도로 손자의 눈이 아닌, 자라난 사람대 사람으로써의 눈으로 봐도 외할머니는 인격자셨으며, 성실하신 분이셨다.

친할머니는 그에 반해, 평범하시다면 평범하신 할머니셨다. 정말 매우 보수적이시고, 어디 어느곳에서나 보이실만큼 평범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그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에게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나에게 너무나도 큰 사랑을 베푸셨기때문이다. 나는 어렸을때 할머니들에게 혼난 기억도 단 한 번도 없고, 항상 너무 받아서 어린나로써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광주에 친가를 가면 아버지와 단둘이 갈때도 많았는데, (가족구성원인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형이있었지만 당시 나는 중학생이였고 형은 해외로 유학간 상황이였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건, 아버지가 이렇게 할머니께 봉투를 드리면 거기서 항상 돈을 몇만원씩 빼서 나에게 용돈으로 챙겨주시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건, 그 친가를 가서 방에 앉아있으면 할머니가 가장 먼저 물어보셨던건, 뭐 좀 먹을래 였다.


한 번은 친가를 갔는데, 할머니가 닭을 드시고 계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제나처럼 할머니는 나에게 닭을 권하였고, 나는 아버지가 눈치주는 것도 모른채 닭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떠나기전 지나가는 말로 할머니께 "와 할머니ㅡ 닭 정말 맛있네요." 라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몇주뒤 다시 할머니 댁을 방문했는데, 할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았다.

뭔일이고 하니 옆집 할머니께 물어봤는데, 우리 할머니께서 내가 먹을 닭을 챙기시기 위해서 그 곳으로 갔다가 오는 중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어린 나였지만, 정말 너무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나는 고등학교를 해외로 떠나고 할머니와의 연락이 단절되다시피한다. 물론 할머니와 그런 것만은 아니였다. 다른 가족들과도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당시에는 더더욱 철이 없었고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하지도 않은채 해외에서 내 삶을 살고 있었고 방학때 잠깐 나와 일년에 많아봤자 한번 뵙는걸로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 되고나서 할머니를 뵈러갔다. 정말 오랜만에 뵈러가는 기분이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광주의 친할머니댁을 방문했던 나는 알게모르게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와 내가 방문을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나는 제쳐두고 할머니의 주제는 오직 하나셨다. 당신의 어디가 아프신지. 내가 거기서 있었던 몇시간의 시간동안 할머니는 당신의 치아가 얼마나 아프신지, 걷는게 얼마나 힘드신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셨다.

내가 충격을 받은건 오랜만에 방문한 손주를 귀여워해주시지 않으셔서 그런것이 아니였다. 나는, 내가 할머니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던 그 시간동안 할머니가 더욱 노쇠하셨고,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셨는데도 그 이상으로 당신의 몸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때마다 꼬박꼬박 챙겨주시던 음식들을 챙겨주시지도 못할정도로 나이가 드셨던 것이다. 물론 그 연세로써는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렸을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였다.



그리고 그 다음 방문은 친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방문이 이루어진 곳은 작은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요양원에서의 만남이였다. 친할머니의 치매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요양원으로 모실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친가에서 혼자 지내시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그 곳을 방문했을때의 그 무거운 공기는 아마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 나와 할머니가 방안에 있는데, 할머니는 계속 본인의 댁으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시고 아버지가 그 대화를 받아주고 계셨다.

더욱 놀라운점은 우리가 방문한 그날 정신을 차린것이지, 평소의 상태에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칭얼거리시면서도 나를 보면 방긋 웃으시면서 OO야, 정말 잘생겼다, 잘ㅡ컸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그 표정이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정말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래서 한국을 돌아갈때마다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가는것이 조금 두려웠다. 할머니가 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실때,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뵜을때 도저히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말을 해야할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앞에둔 아버지를 앞에 두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으니까.

작년 할머니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뵜을때 당시에 할머니의 치매증상은 더더욱 심해지셔서 이젠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실 정도에 이른 상황이였다. 할머니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시거나, 긴 과거의 이야기들을 하시거나, 혹은 당신이 아픈 부위를 이야기 하시곤 했다. 이젠 댁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말도 하시지 않으셨다.

그런 상황에서도 친할머니는 나를 보고 잘생겼다. 라며 주름진 웃음을 짓곤 하셨다.
그리고 그런 웃음을 마주보고 나는 눈을 피하고 싶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그 만남이 나와 할머니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죽음이란 우리옆에 있는 것이다 란 말은 정말 흔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죽음을 실감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흉부외과 의사로 인턴을 응급실에서 하신 내 아버지라면 그게 익숙하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에서 학교를 다닌 나에게 죽음이란 먼 나라 이야기와 같다. 더욱이 어릴적부터 해외를 나와 온갖 가족 행사로부터 멀어져서, 그 누구의 장례식, 결혼식에도 한 번도 참가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죽음이란 언젠가는 오겠지만 지금은 결코오지 않을 그런 이야기와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피부로 느꼈던 기억은 내가 대학생 시절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의 부고였다. 아마 지금의 내가 그 때 그 선생님의 나이일것같은데, 당시 나는 내 은사님을 통해서 그 선생님을 소개받았고 몇달에 걸쳐 노래를 배웠다. 그러나 대학교가 시작을 하고 노래 수업은 휴식기였었다.

그 날 왔던 전화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 셋이서 이렇게 장난으로 즐겁게 떠들면서 놀고 있었는데, 나의 핸드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사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대화조차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OO야, 뭐하고 있니?"
"아 그냥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아 그게... 놀라지 말고 들어라. 그 너 노래 가르쳐준 OOO선생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그때 죽음이란 말을 들었을때 들었던 충격은 뭐랄까 뒤통수를 쎄게 맞은 그런 충격이 아니였다. 말그대로 순간적으로 이해를 못했다고 해야할까. 죽음? 죽었다? 그게 무슨말이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오고가면서 몇초의 침묵이후 이해를 했다. 아 죽었다는 말이구나 라고.


오늘아침, 한국시간으로 어제밤, 컴퓨터 소리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엄마로부터 온 카톡이였다.

"OO야, 언제 정신차릴꺼냐. 할머니 돌아가셨어."

자고 일어났는데 돌아가셨다는 말을 보고 난 순간적으로 내가 아직도 꿈에 있는 줄알았다. 아니, 꿈에 있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글을 쓰는 이 순간조차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할머니께서 아침을 드시고, 그리고 점심때 작은 어머니가 할머니께 간식을 드리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신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라는 게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덧붙였다. 그리고, 큰어머니가 폐암말기로 병원에서 최대 6개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와 살면서 정말 지독한 사실은, 바로 시간의 멈춤이라는 것이있다. 나에겐, 그래, 할머니는 항상 맛있는 것을 챙겨주시고 나에게 온갖 사랑을 다 베푸셨던 분이었다. 큰 어머니 역시 젊으셨던 분으로 활동적이셨고 가족의 제사같은 게 있으면 항상 일들을 도맡아 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큰 어머니는 폐암 말기로 몇달내로 죽으신다니.

멍청하게 멍때리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전화를 아버지께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할수없었다. 도대체 무슨 위로를 해야할지 몰랐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지조차도. 사촌형은 큰어머니의 소식에 울다 지쳐 쓰러져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 형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와 잠깐 통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 주위의 사람이 이렇게 가는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내가 기억을 하는 죽음은 바로 꿈인데, 내가 어렸을때 꿨던 꿈중에 내 형이 죽는 꿈을 꿨던 기억이난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였던 꿈이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생생했던 꿈이기에 그 꿈을 꾼지 십몇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 일어난 일인마냥 기억을한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갔다. 그리고 그 장례식에선 난 이상하게 울지 않았다. 한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펑펑우는 우리 어머니 옆에서 서있다가 장례식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형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더이상 이 방에 형이 없을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눈물이 펑펑 쏟아져나왔다. 꿈에서 깨는 그 순간까지 나는 계속 울었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경험한 내 가족,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죽음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우리가족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나는 장례식에 참가하지못했다.
온 가족이 슬퍼 모여서 우는데도 나는 이게 정말 일어난 사실일까, 꿈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있다.

하나 확실한게 있다면, 예전 그 선생님이 죽었던 그날을 기억하듯이, 이날의 기억또한 내 평생또한 잊혀지지않을 순간이 되리란 것이겠지.

부끄러운게 있다면, 자식이된 나지만 과연 아버지께 어떤 위로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왜냐면, 지금 아버지의 상황은 마치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것과 같으니까. 물론 치매를 오랫동안 앓으셨고, 연세가 연세이므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을 하시겠지만, 연세가 많은들, 적은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없어진다는 그 고통의 가벼움이 사라질까?

만약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 형, 혹은 내 외할머니같은 가족이 없어진다면 마치 내 심장의 한부분을 도려내는듯한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나의 일부분과도 같으니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니까. 나에겐 할머니셨지만, 아버지께는 어머니셨을 것이다. 설사 아버지가 의사시고 치매에 걸리신것도 오랫동안 봐와서 익숙해졌다고 한들, 그래도 볼때마다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돌아가셨다. 이걸 무슨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생로병사는 삶의 일부분이고, 그분의 연세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간것이 축복이다. 라고 남의 이야기라면 나는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되고

내할머니가 되니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자연스러운 이별이라고. 언젠간 일어날 이별이였다라고.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내가 이역만리 타지에서 장례식에 참가도 하지못하고
가족들에게 변변찮은 위로도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문다.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큰어머니의 폐암말기의 시한부 선고를 들으며 나는 하나의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해외에 나오면서 내가 가진 그분들의 기억들또한 그때 그시절로 동결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기때문에 이런 이별들이 오기전에 그분들께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 드려야하는 그 시간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 내가 치매걸린 할머니를 보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랐던건, 내가 아는 사람이 치매가 걸렸을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내 기억속의 할머니와 실제 할머니에서 온 괴리감이 더 컸었다는 사실을.


흔히들 말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삶의 탄생이 있기때문에 죽음이있고, 그렇기때문에 삶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의 무게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죽음이라는 말의 무게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건 영원한 이별이다. 그건, 어느날 갑자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온다.

마치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오고, 혹은 잠에서 막깨어났을때도 온다.
이번주 토요일에 있을 아버지의 환갑잔치 계획을 짜다가 그 다음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

할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나이가 먹고 받은 사랑을 꼭 다시 보답하겠다고, 멍청하게 가시기전에 보답하지 못한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꼭 보답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약속 못지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뵜어야했는데, 제가 주도적으로 할머니를 뵈러 갔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할머니,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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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피
18/02/09 19:40
수정 아이콘
아 금요일 저녁에 이런 덤덤함으로 사람을 이렇게 울려요 엉엉
랭롱이
18/02/10 00:54
수정 아이콘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글쓴분이 생각하시는것보다 본인으로 인해 할머니는 더 행복하셨을껍니다.
18/02/10 01: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는 아무도 알아 보시지 못했습니다. 여러 자식들이 찾아가도 그냥 뻘쭘하게 두리번 거리기만 하셨죠. 그런데 저에게는 ‘총각, 참 잘생겼다. 이쁘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저에게 할머니는 치매에 완전히 빠져서 본인의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순간 돌아가신 것으로 여기고 혼자 울면서 마음으로는 이미 상을 치러 드렸습니다. 하지만 ‘총각 참 잘생겼다. 어떻게 왔어?’ 이 말씀을 하실때는 견딜 수 없이 슬퍼지더군요. 이미 오래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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