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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24 19:48:49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나?


최근에 Atul Gawande라는 사람이 쓴 [Being Mortal]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Atul Gawande는 외과의사인데 이 책에서 현대인들이 어떤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들이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바꿔야 할 일들이 없을까 하는 문제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이가 든 다는 것은 존경과 경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산업화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사회에서 나이가 든 다는 것은 그만큼의 삶의 경험과 연륜이 쌓였다는 것이고 젊은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마을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최종 조정자로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던가 하는 문제들은 모두 마을의 제일 연장자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최신 IT기기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고 칩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어보겠습니까 아니면 구글링을 하시겠습니까? 답은 정해져 있지요.

또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사회적인 효용역시 줄어든 상태가 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노화의 모습인 것입니다. 거기에 예전에 대가족이 모여 살 때는 어느 한 자식이 도맡아서 나이든 부모를 모셨습니다. 그 자식은 그 대가로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 재산상의 이익을 더 보든가 가족 문제에 있어서 더 큰 발언권을 가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핵가족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나이든 부모들은 자식들과 떨어져서 그들끼리 살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자식들을 많이 낳지도 않고 어느 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으로 남게 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나마 부모들이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할 신체적인 능력이 유지될 때는 상황이 괜찮습니다. 진짜 문제는 부모들이 너무 나이가 들어서 독립적인 생황이 어려워지는 경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대부분 자식들이 선택하게 되는 답안은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요양원 같은 노인 시설들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지 않은 방식의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들이 그런 시설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 이들은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바로 one of them의 환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기상시간의 자유가 없습니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남들과 똑같은 정해진 복장을 착용해야 하고 본인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정해진 활동에 단체로 참가해야 되고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잠들어야 합니다. 안전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신체적 활동 역시 최소한의 것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수인(囚人)의 생활이고 몰개성의 생활이며 인간이 사물화(事物化)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신체적 능력과 기능은 점차 상실하게 되지만 나라는 개성을 가진 주체로서 남고 싶어 하는 마음은 죽는 순간까지 노화되지 않는 다는 데 있게 됩니다. 그런 노인들에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100% 노출이 되고 모든 개인의 특징이 지워져버리고 자신들이 물건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게 되는 이런 환경은 참을 수 없는 지옥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한 일생에서 가장 내밀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주변의 가족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후회와 회한을 뒤로하고 신과 또는 자기 자신과 화해를 하면서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기다리게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내밀한 인생의 마지막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조용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사방이 다 공개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에 처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양원에서 짐만 되고 귀찮은 존재로서 one of them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기관 삽관을 한 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가 그렇게 마지막을 정리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을 좀 더 인간답게 가치 있게 보내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이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이 많아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저자의 주장에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구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노화를 맞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물화(物化)된 죽음이 아니라 이러한 편안하고 의미 있는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지 남들을 위한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내 자신도 겪어야 되는 그리고 그로인해 꼭 한번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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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4/11/24 19:55
수정 아이콘
저 책 발췌해서 번역한 부분만 좀 봤는데, 의사 사회에서, 그리고 환자 사회에서 실제로 논란이 되는 요소에 대해 상당히 진솔한 기술을 하지 않았나 싶더군요. 번역서를 기다릴까 원서를 살까 고민 중입니다.
Neandertal
14/11/24 21:05
수정 아이콘
사실 책에는 현대의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기술해 놓은 부분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고친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 "고칠 수 없는" 노화와 죽음이라는 문제의 대처에 한계가 있고 그게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말기암 환자들에 대한 무의미한 항암치료라고 지적하더군요. 저자는 호스피스가 훨씬 더 의미있는 접근이 아니겠냐고 주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레지엔
14/11/24 21:15
수정 아이콘
직접 읽어봐야 알겠습니다만, 현대 의학 전공자 중에도 호스피스의 확대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실제로 임상의도 확신이 없는(내지는 부정적인 확신이 있는) 항암화학치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그 중 상당수는 누구의 의지도 아닌데 차마 죽음을 택한다는 걸 입 밖으로 낼 수 없어서 그렇게 됩니다. 좋은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소독용 에탄올
14/11/24 20:05
수정 아이콘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읽어보기 위해선 (투자자원한계상 원서를 사면 책꽂이 장식이 될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ㅠㅠ) 일단 번역본이 나오길 기다려야...

'나라는 개성을 가진 주체로서 남고 싶어 하는 마음'역시 노화되어가죠, 신체의 기능상실/저하에서 '뇌'가 예외 가 될 순 없으니까요...
문제는 이 일이 전혀 긍정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ㅠㅠ

소득계층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현재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유지된다면, 분명 '노화'와 '죽음'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경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겁니다.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죽음을 '준비'함에 있어서 자신으로 남기를 고민하고, 중환자실에서 삽관을하고 '요양원'에서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것 자체가 특정한 지위표식이기도 하니까요.

현 시점에서도 이미 '죽음준비'의 격차는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족구조의 변화와 사회경제적 조건변화에 따라 독거노인빈곤가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노인빈곤율이 50%가까이 나오는 조건 속에서 이들중 상당수는 (병원 중환자실은 물론이고...) '요양원'에서 표준화된 형태로 죽음을 대기하는 일에 필요한 자원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실제 노인빈곤층의 '죽음' 수용연구들에 따르면 빈곤집단의 노인들에게 가장 '위안'을 주는 사회적 개입중 하나로 '장제급여'가 언급되고,
관공서에 의해 '시신'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최저선에서 '의례'적 절차에 따라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로 보고될 정도니까요...
Neandertal
14/11/24 22:12
수정 아이콘
사실 죽음의 양태 마저도 계층에 따라 나뉘는 슬픈 자화상이 요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죽음이라는 주제는 모두 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라서 그런지 아무도 선뜻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가고자 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14/11/24 21:04
수정 아이콘
'조화로운 삶' 의 저자 헬렌 니어링의 남편인 스코트 니어링 같은 노년과 죽음을 맞이고 싶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 생일에 맞춰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자살이 아니냐 하지만 저는 병들어 산소호흡기 단 채로
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물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찌됐든 최소한 병원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계획적이고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요.
Neandertal
14/11/24 22:15
수정 아이콘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자의로 선택하기가 정말 어려운 문제여서 말이죠...
단지 희망만 할 뿐...그래도 여러 사람이 뜻을 모으면 현실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선택지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저희 할머니도 저런 식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낙상하셔서 뼈가 부러지셨는데 한 달 정도 누워 계시더니 어느 순간 식사를 안하시더군요...그 때 아버지께서 곧 할머니가 돌아가실거라고 말씀 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Chasingthegoals
14/11/24 22:07
수정 아이콘
이 글과 이 책을 보니 마왕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생각이 나네요. ㅠㅠ
Neandertal
14/11/24 22:15
수정 아이콘
ㅠㅠ
14/11/24 22:41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역시나 이 책도 아직 국내판은 없네요.
최근 '죽음'에 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저자와의 견해가 일치하는 구석이 많네요.
안그래도 최근에 ebs에서 '죽음'에 관하여 3부작 다큐도 방영했는데 관심있으시면 찾아보세요.
번역서 나오기만을 정기적으로 스캔해봐야겠네요.
Neandertal
14/11/24 22:43
수정 아이콘
미국에서도 10월에 나온 책이라 번역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14/11/25 00:41
수정 아이콘
지금부터 준비해도 수십년 뒤 죽는 시점의 사회는 또 달라질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늙고나서 이런 시대상에서 돌아가실 지 상상도 못해본 분들이 대부분이듯이요.
똥눌때의간절함을
14/11/25 20:39
수정 아이콘
죽음에 대한 책은 무조건 삽니다. 번역본 나오기만을 기다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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