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신상털이, 신상유포를 형벌로 다스린다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법은 개인정보보호법인데
지금 당장 관련내용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명예훼손 문제만 언급할 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란 얘기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니면 꺼내질 않았습니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그 수범자로 '개인정보처리자'라는 개념을 정해두고
그 위반행위를 형벌로 다스릴때도 일부 예외를 빼면
'개인정보처리자'를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강남패치, 한남패치 운영자 같은 근본없는 종자들은
통상 '개인정보처리자'의 까다로운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법위반으로 처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범위를 확장시킬 가능성이 있는 대법원 판결이 하나 나와 주목됩니다.
2.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5도8766 판결
가. 공소사실
피고인 1은 아파트 관리소장이고, 피고인 2는 아파트 동대표다.
피고인 1은 아파트 주민들이 작성한 아파트 동대표들에 대한 해임동의서를 피고인 2에게 제공했다.
위 해임동의서엔 동대표 해임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성명 등 개인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로서 피고인 1은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했던 자'로서 무단으로 3자에게 개인정보를 누설했고
피고인 2는 이를 알면서 개인정보를 제공받았다.
* 피고인 1의 경우의 적용법조는 구 개인정보보호법 제75조 제5호, 제59조 제2호였습니다.
이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 제5호, 제59조 제2호입니다.
나. 1심의 판단: 전부무죄(서울북부지방법원 2015. 1. 13. 선고 2014고단2134 판결)
검사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했던 자'='개인정보처리자이거나 였던자'임을 전제로 기소했습니다.
이에 아파트 관리소장인 피고인 1.이 개인정보처리자인지 여부가 쟁점이 됬습니다.
1심은 이를 부정했고, 이에 연쇄적으로 피고인 1과 피고인 2의 행위는 무죄가 되었습니다.
다. 2심의 판단: 항소기각=전부무죄(서울북부지방법원 2015. 5. 21. 선고 2015노166 판결)
검사는 피고인 1.이 개인정보처리자라는 주장을 유지하면서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2심은 1심의 판단을 지지하며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라. 대법원의 판단: 파기환송
대법원은 두 가지 논리에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1) 이 사건 적용법조의 수범자인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했던 자'는 '개인정보처리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2) 그와 별개로 피고인 1.은 개인정보처리자인 것으로 볼 소지가 크다.
이중 특히 주목할 부분이 (1)에 관한 설시임은 두말할 여지 없습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1) 제59조 제2호의 의무주체인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2) 제2조 제5호의 ‘개인정보처리자’에 한정되지 않고,
3) 업무상 알게 된 제2조 제1호의 ‘개인정보’를 제2조 제2호의 방법으로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를 포함한다.
이 중 '업무상 알게된'이란 단서는 제59조 제2호의 법문에 '업무상 알게된'이란 단서가 있기에 붙은 것이며
그런 단서가 없는 제59조 제1호, 제3호에는 이런 단서조차 붙을 여지가 없습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개인정보의 '처리'가 뭔지도 주목되는데, 결론적으로 이는 굉장히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개인정보의 수집, 생성, 연계, 연동, 기록, 저장, 보유, 가공, 편집, 검색, 출력, 정정(訂正), 복구, 이용, 제공, 공개, 파기(破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개인정보보호법 제2조 제2호)
3.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이쯤에서 문제의 제59조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59조(금지행위)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
2.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
3. 정당한 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권한을 초과하여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 멸실, 변경, 위조 또는 유출하는 행위
위 대법원 판결에서 쟁점이 된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이 규정 전체의 구성요건임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규정 제1~제3호 위반을 이유로 처벌당하려면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자' 요건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이 요건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제59조 위반행위로 처벌되는 자의 범위를 넓히는 결과로 직결됩니다.
특히 신상유포와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제3호입니다. 이 규정은 개인정보의 '유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신상유포'='개인정보를 수집하였던 자의 정당한 권한 없이 타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행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앞서의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새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의 금지행위는 개인정보를 처리한 자라면 일반인에게도 적용 가능.
2)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 제2호에 따라 개인정보의 처리에는 '수집'이 포함.
3)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제3호의 구성요건에 '업무성'이 요구되지 아니하므로 일반인을 보다 용이하게 포섭 가능.
4) 그리고 위 규정의 위반행위태양의 하나로 '유출'이 있음.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명예훼손 문제로 처리되는 신상유포행위를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 제6호, 제59조 제3호로 의율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 때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서
종래 신상유포에 적용되는 정통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보다도 무거운데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점에 비춰
신상유포행위를 과거보다 더 무겁게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개인정보보호법위반과 명예훼손이 실체적 경합범인지, 상상적 경합범인지는 추가적인 검토를 요합니다.
5. 결론
위 대법원 판결 사안에서 검사와 하급심 판사들이 모두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의 수범자를 '개인정보처리자'로 이해한 것만 보더라도
사실 이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법리는 종래 개인정보보호법의 해석론에 비춰 대단히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정보보호법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암튼 이 판결을 접하기 전까지 이런 해석론은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어땠는지를 조사해봤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그리고 여기서 제가 언급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그런 가능성이 열렸다는 데 불과하며
이런 식의 해석이 추후 법조계, 수사기관의 일반적인 실무 태도로 정착할 것인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사안은 '업무성'을 요건으로 하는(즉 '개인정보처리자'와 비교적 유사한) 제59조 제2호와 관련된 사안인데다
대법원은 이 사건 피고인 1.을 개인정보처리자로도 볼 수 있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으므로
막상 대법원 스스로는 이 설시가 종래의 개인정보보호법 해석과 그렇게 멀어진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런 가능성을 몰랐으나 막상 이 해석론이 제59조 제3호에 적용되는 상황이 오면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범위를 너무 넓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새로운 제한을 부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가능성이 열렸다는 자체는 사실이고, 이 글이 지적하는 바는 딱 거기에서 그칩니다.
그런가 하면 이 대법원 판결 자체에서도 이 가능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설시가 발견됩니다.
"제8장 보칙의 장에 따로 제59조를 두어 ‘개인정보처리자’ 외에도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를 의무주체로 하는 금지행위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개인정보처리자 이외의 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정보 침해행위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여 사생활의 비밀 보호 등 개인정보 보호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여기서 대법원이 지적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의 입법목적, 즉
'개인정보처리자 이외의 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정보 침해행위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
'사생활의 비밀 보호 등'을 달성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장 전형적이며, 가장 중대한 사안을 하나만 찾으라면
무차별적인 신상유포 사안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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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개인정보의 '처리' 개념이 굉장히 광범위하기 때문에
'개인정보처리자'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개인정보보호법위반의 적용범위가 얼마나 넓어질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는 있습니다.
당장 여기 피지알 회원들 중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닌 사람은 많아도
'개인정보 처리'를 전혀 안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테니...
한편 이렇듯 일반인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59조 위반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상 두번째로 높은 법정형으로 의율되는게 균형에 맞는지도 좀 문제가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