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테러로 벨기에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만 벨기에에 대한 추가 글을 써봅니다.
이전 글에서 벨기에가 분열되어 있다고 전제했는데 과연 벨기에의 분열이 사실인지 알아봤습니다.
구글 맵에서 도보로 2시간 30분으로 표시되는 두 개의 관광 홍보센터는 벨기에의 남북 두 지역을 각각 홍보하는 시설입니다.
* 구글 맵에서 찾은 두 개의 런던 소재 벨기에 관광 홍보센터
저도 직접 찾아가 본 것은 아니라서 홈페이지로만 두 곳을 비교해 봤는데 아래 브뤼셀과 왈로니아 홍보센터 홈페이지를 보면 방문 지역 안내 중 플랜더스 지역(대표적으로 브뤼헤나 앤트워프 등)은 수도 브뤼셀을 제외하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런던 소재 벨기에 홍보센터(브뤼셀과 왈로니아) 홈페이지녹색 관광지를 보면 브뤼헤나 앤트워프는 없습니다.)
http://www.belgiumtheplaceto.be/index.php
남부 지역을 소개하는 홍보센터가 상대적으로 부동산 값이 저렴한 Canary Wharf에 있는 것과 달리 북부 플랜더스를 소개하는 홍보센터는 런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홈페이지를 보면 벨기에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곳이 맥주와 초콜릿, 패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관광지, 사이클링, 음식, 문화, 축제에 대한 소개는 모두 플랜더스가 앞에 붙어 있습니다.
* 런던 소재 벨기에 홍보센터(플랜더스) 홈페이지
http://www.visitflanders.com/en/?country=en_GB
이런 지역별 홍보가 그 자체로 매우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소개하는 또는 벨기에 관광지를 한눈에 소개하는 홍보센터는 없으면서 지역만 소개하는 홍보센터만 있다는 것은 분명 외국인(이 문제를 제기한 The Economist 기자나 저에게는)의 눈에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언어 전쟁: 유럽사법재판소는 왜 벨기에 법을 문제 삼았는가? 그리고 BHV 갈등과 루뱅 대학 분할
솔직히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벨기에의 네덜란드어와 불어 공용은 결코 평화롭지 않습니다.
대단한 유혈사태가 벌어진 적은 없지만 벨기에 남북은 taalgebied라고 불리는 언어 경계선이 명확히 그어져 있으며 각 언어 경계선 안의 언어 배타성은 상식을 넘고 있습니다.
북부 플랜더스의 법(Flemish law)에서는 네덜란드어로 작성된 계약서만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공용어의 유효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배타성은 결국 유럽재판소(the European Court of Justice)의 개입을 불러왔습니다.
Anton Las라는 네덜란드 사람은 앤트워프 항구 관리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임명되었으나 당시 고용 계약서가 영어로 작성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고용계약이 무효화되었으며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Las는 이 문제를 유럽재판소에 제소하였는데 유럽재판소는 플랜더스 법이 EU 법에 위반되었다고 2013년 판결하였습니다.
* 유럽재판소의 판결문
http://curia.europa.eu/juris/document/document.jsf?text=&docid=136301&pageIndex=0&doclang=en&mode=req&dir=&occ=first&part=1&cid=1027954
http://www.economist.com/blogs/johnson/2013/04/language-policy
Anton Las의 억울함이 한 개인의 피해라면 브뤼셀 교외에 거주하는 15만 명의 불어 사용자들이 겪는 문제는 벨기에 언어 갈등이 얼마나 첨예하고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플랜더스 지역에 속했던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이자 EU와 NATO 지휘부가 들어서면서 유럽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도시가 발달하자 남부 왈로니아 불어 사용자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불어 사용자가 80%를 넘어서며 주된 사용 언어가 불어로 바뀌었습니다.
어쨌든 브뤼셀은 불어와 네덜란드어 동시 사용 지역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브뤼셀을 둘러싼 교외 지역(BHV 지역)으로 불어 사용자들이 퍼져가면서 이제는 15만 명이나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 Brussels-Halle-Vilvoorde 지역과 불어 사용자 비중
https://fiandra.wordpress.com/focus/la-convivenza-difficile-la-questione-brussel-halle-vilvoorde/
플랜더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독점권이 있던 지역에 불어 사용자들이 증가하자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이들 지역에 네덜란드 사용을 강제하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모든 지역 의회는 네덜란드어로만 진행되어야 했고 공식 문서도 네덜란드어로만 작성되도록 하였습니다.
심지어 불어를 사용하는 시장이나 시의회 의원이 다수인 경우에도 이 조치는 예외 없이 적용되었고 불어 사용자가 관공서를 방문할 때는 네덜란드어 통역자를 대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데 BHV 지역의 왈로니아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들 공무원들이 사실 불어를 말할 수 있음에도 이런 번거로움을 견뎌야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플랜더스 사람들은 거꾸로 '우리는 당신 말을 할 줄 아는데, 왜 당신은 우리 말을 모르느냐?'는 주장으로 이런 조치를 합리화 하였습니다.
결국 불어 사용자들은 시민 불복종 운동에 나섰으며 지역 상점에서 네덜란드어 사용을 거부하고 네덜란드어로 적혀진 지방세를 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999년에는 이 문제가 소수자 권익 침해라며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 청원을 하기에 이릅니다.
2002년 유럽평의회는 벨기에를 소수자 인권 침해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럽평의회의 성명은 플랜더스 정치인에게 큰 압력이 되지 못 했으며 오히려 2007년 BHV 지역에 대한 이중언어 사용권을 폐지하였고 이를 의회 표결에 부치면서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신사협정(Belgian pact)에 따라 직접적인 분리 이슈를 투표에 부치지 않는다는 전통이 무너지며 중앙정부 연정이 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BHV 이슈는 큰 개선을 보지 못 하였는데 2010년 영국 가디언의 취재는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브뤼셀 남부 Linkebeek(위 지도 하단 빨간 지역의 소도시)는 인구 5천 명 중 85%가 불어 사용자로 티에리 시장과 시의회 의원 15명 중 13명이 모두 불어 사용자였습니다.
그런데 티에리 시장은 선거 홍보물을 불어로 인쇄한 것이 적발되어 시장직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으며 절대 다수가 불어 사용자임에도 시의회 회의를 불어로 하게 되면 세션의 효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초등학교는 1층에 불어 사용 학생이 다니고 2층에는 네덜란드어 사용 학생이 다녔으며 커리큘럼도 달랐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공공 도서관의 장서 중 네덜란드어 책이 55%를 넘지 못하면 정부 보조를 받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BHV에서 벌어지는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1968년 프랑스가 68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을 때, 벨기에의 유서 깊은 루뱅(Leuven) 대학에서는 성난 네덜란드어 사용 학생들의 데모 속에 불어 사용 교직원과 학생들이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왈로니아 지역에 새로운 Louvain-la-Neuve 캠퍼스가 만들어졌는데 160만 권의 루뱅 대학 장서는 매우 황당하지만 평등한 방법으로 분할되었습니다. 서지 번호가 홀수인 책은 루뱅 대학에 남고 짝수인 책은 왈로니아 캠퍼스로 보냈다고 합니다.
즉, 벨기에의 언어 전쟁은 결코 간단한 이슈가 아니며 역사가 매우 깊습니다. 또한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지금도 양측은 여전히 반목하고 있으며 솔직히 이제는 통합의 방향보다도 각자의 길을 찾는 것 같습니다.
* The Economist가 벨기에 두 언어권의 깊은 반목을 그린 삽화
이어지는 글에서는 벨기에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면서 왜 이런 반목과 갈등이 커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더 심해져 가는 양측의 대립이 어디에 연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벨기에 분열이 왜 EU 통합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드는지도 따져 볼까 합니다.
다음 글에서 써 보겠지만 벨기에 상황을 보면 볼수록 국가로서 벨기에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은 EU 실패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