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땅은 참 많습니다. 그게 쓸모없는 땅이건 괜찮은 땅이건 비옥한 땅이건 금싸라기건 땅은 무진장 많고, 국가 단위에서는 굳이 없어서 나쁠 건 딱히 없죠(옛날 나폴레옹 때의 프랑스마냥 유지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던가 하지 않는 이상). 그러한 영토 제일주의가 제국주의 및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부른 것은 익히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이후에도 국가 스케일의 분쟁은 늘 있어 왔죠. 가장 가깝게 대형 사고가 났던 게 크림 반도이고, 그 전에는 체첸, 팔레스타인, 코소보 등등등...
헌데 재미있게도 어느 누구도 "우리 땅 아님" 하는, 다소 희한한 땅도 몇몇 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겹쳐셔 생긴 일종의 해프닝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오늘 이야기할 것은 그 중의 하나인 비르 타윌이라고 하는 동네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한창 3C 정책이라 하여 카이로, 케이프타운, 캘커타를 잇는 대~ 제국을 건설하겠답시고 한창 여기저기서 사고를 쳐 가면서(보어 전쟁, 파쇼다 사건, 세포이 항쟁 등등등) 자기 식민지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카이로. 이집트 아닙니까. 케이프타운은 몇 달 전에 제가 소개했던 레소토보다도 더 남쪽에 있는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남쪽 끝이고... 쉽게 말해서 동아프리카 전역을 전부 접수하겠다는 거였죠.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고(...) 셜록 홈즈에서 왜 그 사건 있잖습니까. 톱밥하고 창문 높이로 운동부 애가 시험지를 빼돌렸다는 걸 밝혀냈다는 그 사건. 그 범인이 로디지아로 가겠다고 한 바 있죠. 바로 그 로디지아가 남아프리카 북단, 오늘날의 잠비아(Zambia)와 짐바브웨(Zimbabwe)를 합친 지역입니다. 하여간 그 어마어마~한 땅을 영국이 싸그리 접수를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아프리카가 좀 넓어야 말이죠. 이집트가 지도상으로는 그리 안 넓어 보여도 백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의 4.5배 정도 됩니다. 그 바로 밑의 수단은 남수단이 떨어져나갔는데도 더 넓어서 188만 제곱킬로미터니까 이건 한반도의 8.5배 가량. 어마어마하죠. 얼마인지 감이 안 잡히신다면 독일 + 프랑스 = 이집트가 되고, 독일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네덜란드 + 벨기에 + 스위스 + 오스트리아 + 덴마크를 해도 수단보다 넓이가 적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포함 저~~ 끝의 아프리카까지 먹어버린 게 영국이라는 거죠. 하긴 뭐 어디 그뿐입니까마는 이것 하나만도 영국이 얼마나 땅 욕심이 많았는지 실감이 가시는지요.
그러다 보니 이게 관리가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당히 선을 쓱 그어서 관리 구역을 설정합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국경선이(특히 북부 아프리카의 넓은 땅덩어리들) 죄 직선인 이유죠. 이것도 왠지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은 것 같습니다만- 대충 이쯤이 좋겠다 하고 자 대고 직선으로 쓱 그은 선이 북위 22도였습니다. 이게 오늘날 이집트와 수단의 국경선의 유래가 되죠(1899년의 일입니다).
근데 자 대고 긋고 보니까, 그 북위 22도 근처의 동네들 중에 뭐 하나 눈에 걸리는 게 있던 겁니다. 이 비르 타윌이라고 하는 동네는 북쪽의 아스완(그 아스완 댐 지역 맞습니다) 인근의 유목민들이 목초지로 삼았던 동네고, 비르 타윌 동쪽의 할라입 삼각지대(Hala'ib Triangle)의 경우는 거기 사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하르툼에 사는 사람들과 가까운 점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비르 타윌은 아스완 관할로, 아스완은 원래 카이로 관할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비르 타윌은 카이로 관할(이게 풀어서 써서 괜히 어렵게 느껴지시는 건데 대충 동/리 - 읍/면 - 시/군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할라입 삼각지대는 하르툼 관할. 이렇게 관할 행정구역을 서로 바꿔치기를 해 버렸죠(1902년의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얘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요.
영국이 양차 대전으로 돈이없엉 신세로 전락하고(...) 각지의 식민지들을 그나마 인도주의적이랍시고 체면은 살려 가면서 독립을 시키는 과정에서 얘들도 독립되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근데 원래대로라면 북위 22도로 쓱 그은 선대로 얌전히 물러났으면 됐는데, 수단 입장에서 좀 욕심이 동했던 모양입니다. 이집트는 1899년에 그었던 북위 22도선이 국경선이라고 주장하고, 수단은 1902년에 조정했던 행정구역상의 관할구역이 국경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뭐 양쪽 말이 사실 서로 일리가 있기도 하고... 그게 이유가 있어요. 여기에서 지도를 꺼내드는 게 좋겠네요.
역시 지도는 구글 어스가 최고입니다(...) 북위 22도, 동위 35도로 가시면 됩니다.
빨간 선을 대충 그리면 ▼▲쯤 되는 모양이죠? 왼쪽의 조그마한 사각형이 있는 곳이 비르 타윌이고, 오른쪽의 넓은 땅이 할라입 삼각지대입니다.
이러니 누가 할라입 삼각지대를 내주고 비르 타윌을 먹고 싶겠습니까? 알맹이 다 내주고 쭉정이만 가져가라니요... 사실 이 말도 좀 웃긴 게, 저거 유심히 보시면 알겠지만 애초에 저 할라입 삼각지대라는 땅도 정말 저거 별 볼 일 없는 땅이에요(...) 저기서 광물이 나오기를 하나, 뭐 사람이 많이 살기를 하나, 인프라가 제대로 깔려 있기를 하나 뭘 하나... (물론 영토는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논쟁 자체가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만) 하여간 이 땅을 먹으려고 서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 보니, 이 땅을 먹고 싶으면 먹고 싶을수록 반대편의 비르 타윌은 더더욱 찬밥 신세가 된 겁니다(...)
쉽게 말하면 그거죠. 거기 비르 타윌에 사람이 살면 "야, 니들은 비르 타윌도 먹고 할라입 삼각지대도 먹으려고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거냐? 앞뒤가 맞는 행동을 하라고 이 놈들아"라는 말이 나오게 되니까, "어이, 비르 타윌에서 방 빼!"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비르 타윌은 이집트와 수단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버림받은 땅 신세가 된 겁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2000년에 수단이 할라입에서의 이집트의 지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물렸으며, 지금은 이집트가 할라입에 도시도 세우고 선거도 하고 하면서 실질지배(de facto)를 강화하고 있다는군요. 물론 수단도 심심하면 "야 거기 원래 우리 땅이야..." 한마디씩 하고 있고(...) 이 모든 만악의 근원은 역시나 영국이죠... 에휴; 그리고 그 와중에 버려진 저 땅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터라 완전히 그야말로 테라 눌리우스, 아무것도 없는 땅이 되어 버린 거죠. 그야말로 무주공산. 그래서 비르 타윌은 지금도 무주공산 신세입니다.
재미있는 건 무주공산 신세인 땅이 여기 하나뿐이 아니라는 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국경이 다뉴브 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관계로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지역이 몇몇 있다 보니(물론 이것도 비르 타윌과 정확히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굴러갔습니다. 강 저편의 땅이 더 넓으면 강 이편의 땅에서 국민을 빼내고...) 서로 우리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땅이 나왔고, 그 땅을 바탕으로 웬 운동가가 독립선언을 하고 나라를 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는군요. 그것도 엉뚱하게도 서로 싸우는 두 나라와는 전혀 관계없는 체코 출신의(...) 비트 예디츠카, Vít Jedlička. 국가명은 Liberland, 직역하면 자유국쯤? 아 물론 미승인국이기는 합니다마는... 하여간 이쪽은 대부분의 예상대로 실질지배 영역의 경계선과 다뉴브 강이 정확히 같아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군요(말하자면 서로 영토를 교환하는 느낌?).
자료는 영문 위키피디아의 Terra Nullus 항목과 Bir Tawil 항목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