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는 달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계기가 필요하다면,
가장 쉽게 감사를 전할수가 있는 '감사의 달' 이기도 하다.
난 사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타입은 아니다.
다만 가족에게 만큼은 심각한 츤데레 성향을 보였다.
'고맙다' 라는 말이 타인에게는 쉬워도 가족에게는 그 어느 말보다도 어려웠고,
'미안하다' 라는 말은 더더욱 어려웠다.
7년전의 5월은, 절대로 잊지 못할 괴로운 추억의 시작이였다.
아버지께서 5월초 입원을 하시고, 결국 5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돌아보면 사람마다 언젠간 경험할 법한,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이지만,
그 당시 아직 고3 수험생이였던 나에겐 너무나 큰 부담이였다.
입원을 하고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아버지가 쉽게 나을 병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이성은 몹쓸 정도로 솔직해서, 3주쯤 계속된 입원 치료가,
3달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라는 현실적인 계산부터 반복하고 있었다.
없는 돈 빌려가며 아버지의 입원비를 충당하고 있던 가족 형편이 너무 훤히 보였기 때문이였을까?
나는 "사람이 연약해지면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뜻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그런 어려운 5월을 보내던 한편,
학교에서는 모 대학에 견학을 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지망하던 대학이였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고,
조심스럽게 부모님에게 여쭤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내가 아프다고 너까지 기죽으면 안된다고 하시며,
견학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다녀오라고 하셨다.
견학 날짜는 5월 24일 이였고,
아버지는 정확히 5월 24일 새벽에 세상을 떠나셨다.
23일날, 의식 불명 상태까지 가셨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의식을 찾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줘"라고 갑자기 그러셨다.
순간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4일날, 난 의외로 덤덤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견학은 못가게 되었다"라고 학교에 전했고,
해외에 거주중이였기에, 3일에 걸쳐 장례식을 치르고,
한국에 귀국하여 다시 한번 장례식을 치렀다.
이 모든 과정이 다 끝나고,
갑자기 현실로 복귀한 나는 문득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 대학 견학을 못갔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런 우문에 어머니께서는 현답을 하셨다:
"하루쯤 못가보면 어때? 나중에 합격해서 4년동안 보면 되지"
갑자기 너무나도 울컥했다.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하기 어려웠던 사랑한다는 말이,
가족에게 매일 해줘도 부족함이 없을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였다.
오늘 아침, 한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어린이날 즐겁게 보내" 라는 카톡이 왔다.
난 이미 직장 2년차인데... 크크크;
나는 그 대학을 실제로 4년동안 매일 보게 되었고,
취직도 운좋아 순조롭게 하게 되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어느새 정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런 내가 어린이로 보이는게 어머니의 마음인가 보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아버지에겐 좀 미안하지만, 감사의 표현은 어머니에게 2배로 해드려야겠다.
그 어느때보다도 많이 감사하다고, 사랑하다고, 그리고 미안했다고 해 드려야겠다.
그동안 너무 가정의 달을 어렵게 생각한 것도,
이 시절만 되면 힘들던 생각만 나던 것도,
이제는 다 감사와 사랑으로 돌려드려야 할것 같다.
그러라고 있는 '가정의 달' 이자, '감사의 달'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