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릴 때도 니 동생은 한 성깔해서, 책가방 싸 들고 집에 와버렸다니까.”
세 모자가 오랜만에 모였다. 두 살 터울 동생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영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레 국민학교 시절로 화제가 넘어갔다.
“형은 그 때도 오락실 다니다 걸려서 학교에서 쫓겨날 뻔했잖아.”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 한 당시 전국적으로 불어 닥친 전자 오락실 열풍은 강원도 산골까지 마수를 뻗쳤다.
읍내에만 무려 5개의 오락실이 생기면서 영월 어린이들을 공략해 나갔다.
새로운 악당의 등장에 당황한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악에 세력으로 지키기 위해 골몰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오락실에 가면 눈이 나빠지고, 귀가 안 들리고, 머리가 나빠져 시험을 못 본다는 경고를 하였지만, 브라운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컬러 도트들의 유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교장선생님은 오락실에 다니는 어린이를 퇴학을 시킨다는 무시무시한 불호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오락실에는 네모난 죠다쉬 학생가방을 맨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한껏 엄숙한 얼굴로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들어섰다.
“자, 지금부터 거짓말하는 나쁜 어린이를 잡아내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영락없는 분필 상자를 손에 들고 선생님은 말 그대로 약을 팔기 시작했다.
“이 약은 거짓말 하는 어린이를 잡아내는 약이에요. 지금부터 한 명씩 나와서 선생님한테 잘못한 것을 얘기해요.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면 이 약을 먹일 거에요. 거짓말을 하고 이 약을 먹으면 손가락이 썩어요.”
선생님은 몇 년 전 거짓말을 하고 약을 먹었다가 손가락이 썩어 불구가 된 형아 얘기까지 생생하게 해주며 약의 효능을 1학년 2반 어린이들에게 홍보하였다.
손가락이 썩는 다는 말에 겁먹은 어린이들은 한 명씩 차례 차례 나와 존경하는 스승님 앞에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지난 날에 작고 작은 잘못들을 토해 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나 역시 울컥 눈물을 터뜨리며 내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지키기 위해 그 전전날 일요일, 교회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오락실에 들렸던 잘못을 고백하며 석고대죄하였다.
그 때도 전자 오락이라는 것은 곱디 고운 8세 소년의 눈물만으로는 씻을 수 없는 대역죄였을까, 그 날 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퇴학이라는 충격적인 처벌과 함께 집으로 귀가하였다.
물론 그 다음 날 3명의 어린이는 다시 학교에 등교하였다. 선생님은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착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특별히 용서해주는 거라며 다시는 오락실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었다. 그 날의 위장 퇴학은 오락실을 가지 말라는 어린이를 향한 선생님의 강력한 메시지였지만, 한 달도 안돼서 나는 오락실을 또 다녔지롱….
6번의 월말고사와 2번의 중간고사, 2번의 기말고사를 치루면서 국민학생이 1년이 지났다. 겨울 방학이 끝날 즈음해서 의례적으로 행해지는 몇 명의 엄마들과 담임 선생님의 만찬이 읍내의 한 고기 집에서 열렸다. 나름 학구열이 높았던 나의 어머니 역시 만찬의 주최자였다. 나와 몇 명의 어린이들 역시 불고기를 먹으러 만찬에 참석하였다. 어린이들은 대충 밥을 먹고 음식점 앞마당에서 뛰어 놀았고, 선생님 아줌마를 포함한 아줌마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 수다를 엿듣게 되었다.
“애들이 참 순진하다니까요. 거짓말 하면 손이 썩는다니까, 엉엉 울면서 다 얘기하더라니까요.”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선생님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나를 퇴학으로 몰고 갔던 무시무시한 chemical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에 속아 거짓말을 하지 못해 흘렸던 눈물이 억울하였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열 받는다니까. 어떻게 순진한 어린이들한테 그렇게 무서운 거짓말을 하냐고. 너 때도 그랬냐?”
그 만찬이 있고 1년 후 동생도 나를 따라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행운인지 불행인지 동생의 담임 선생님은 내가 1학년 때 만났던 선생님이었다.
“형, 기억 안나? 형이 나 학교 들어갔을 때, 손 썩는 약 얘기에 절대 속지 말라고 그랬던 거. 그래서 내가 학교 안 다닌다고 집에 왔잖아.”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1학년 때도 그 분은 손이 썩는 약을 꺼내 들며 어린이들에게 고해성사를 유도하였다.
다행히도 동생은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경고를 마음에 잘 새기고 있었다. 동생은 선생님에게 거짓말 약은 거짓말이라 주장하였다. 당황한 선생님은 동생한테 귀가를 명령했고, 한 성깔 하는 동생은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때 집에 온 게 그거 때문이었어?”
어린이의 호통에 놀라 휘둥그래진 선생님의 눈과 선생님한테 쫓겨나 씩씩거리며 집으로 걸어가는 어린이의 뒷모습이 상상되었다.
그제서야 지난 세월동안 비밀번호 찾기 위해 나오는 ‘기억에 나는 담임선생님 이름은?’ 질문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억울함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잘했다. 동생아.”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그 옛날 영월로 돌아가 오락실에서 구경만 하던 어린이에게 5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건네줘 본다. 그 옆에 동생과 보글보글 한 게임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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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생각해 보면.. 담배피우는 어른들도 많고 (그때야 실내 어디서든 흡연이 일상적이긴 했지만) 좀 노는 친구들이 자주 가기도 하고, 오락 자체도 폭력적인 게 많고 하다 보니 기성세대들은 더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시대에도 게임 탓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에는 더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