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2 C조의 경기가 2라운드 까지 완료되었습니다.
스페인은 살아난 토레스의 골을 시작으로 아일랜드를 맹폭했으며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는 1:1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탈락이 확정되었고 이탈리아는 탈락이 확정된 아일랜드와의 경기를 꼭 이겨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각 나라별 두 경기가 끝난 현재 상황의 C조의 순위입니다. 이탈리아가 아일랜드를 이긴다고 가정할 때, 만약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비기게 되면 세 팀의 승점은 모두 5점으로 동률이 됩니다. 이 상황에서 월드컵과는 다른 유럽선수권 대회의 순위 산정방식 때문에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월드컵은 승점이 같을 경우 골득실-다득점 순서로 순위를 매깁니다. 유로도 승점-골득실-다득점. 인 것 까지는 같은데, 이 때 골득실 및 다득점을 전체 경기의 득실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동률인 팀들간의 득실만을 가지고 계산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같을 경우 조에 속한 모든 팀과의 득실을 이용합니다. 위 표에서 *가 된 득점과 실점이 동률 가능한 세 팀간의 득실을 표시한 것입니다.
즉,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2:2로 비겨버리게 되면 이탈리아는 아일랜드에게 100대0 승리를 해도 두 팀에게 다득점에서 밀려 3위로 조별예선 탈락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지만 이탈리아 국민들과 팬들에겐 재미없을;;) 딱 8년전인 유로2004에서 이탈리아는 지금과 거의 동일한 상황에 놓였었다는 것입니다.

위 표는 유로2004의 C조의 2라운드 까지의 결과입니다. 그러고보니 공교롭게도 조도 C조로 같았네요. 완전 똑같진 않지만 양상이 거의 같습니다. 이 때 이탈리아 측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스웨덴과 덴마크가 2:2로 비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불가리아를 상대로는 무조건 이겨야했고요. 조별예선의 마지막 경기는 같은 시간에 열리기 때문에 스웨덴vs덴마크 / 이탈리아vs불가리아는 같은 시간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팬들은 양 쪽을 다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전반 종료 직전에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내줍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열심히 뛰었고 후반 초반에 동점골을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같은 시간 덴마크와 스웨덴은 1:1 동점 상황이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반대쪽 경기가 어찌되었든 이겨야 했으니 사력을 다해 뛰었고 후반 추가시간인 94분에 카사노가 극적인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며 벤치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벤치로 달려갔던 카사노는 울면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옵니다.
같은 시간 열린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기에서 덴마크가 토마손의 두 골로 2:1로 앞서다가 89분에 실점을 하며 2:2 동점이 되었고, 결국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렸기 때문이죠. 열심히 뛰어 극적인 역전골을 넣었으나 이탈리아는 '다득점'에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 쪽에는 북유럽 이웃 두 국가에 대한 비난여론도 제법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덴마크와 스웨덴은 경기의 네 번째 골이 들어간 이후 약 3~4분 가량을 '경기를 할 의지가 없이' 보냈습니다. 그게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다고 하면 굳이 어긋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어떤 팀, 어떤 감독이라도 같은 상황에서는 동일한 모습을 보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두 팀은 경기 전의 몇몇 이탈리아 언론과 팬의 우려-2:2 무승부가 되어 함께 올라가려 할지도 모른다-와 달리 매우 치열하게 경기를 펼쳤습니다.

아무튼 현재 아주리 군단은 8년전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물론 토레스마저 살아난 모습을 보인 스페인이 크로아티아에게 전력적으로 우세하긴 하지만 루카 모드리치가 이끄는 크로아티아가 그리 호락호락한 팀은 아니기에 난타전이 펼쳐질 경우 다득점 무승부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아니 2004년 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이,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1:1 무승부가 되면 세 팀이 완전 동률이 되어 아일랜드와의 스코어가 가장 중요해지는데 스페인은 득실을 넷이나 벌어두었고, 크로아티아도 3:1 승부였기에 +2에 3득점을 벌어두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는 일단 3점차이 정도는 만들어두고 카시야스의 미친 선방을 믿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죠.

먼 타국에서 그저 축구를 즐기는 입장에서 이런 흥미로운 상황은 참 반갑습니다만 이탈리아 국민들과 팬들은 한국시간으로 며칠 후 새벽이 정말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