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삼식이 삼촌 마지막 14~16화 시청을 하고 나머지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미 제 글을 읽어주신 선생님들께선 참고 부탁드립니다.
----------
삼식이 삼촌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총 16화이고 오늘 마지막 3개가 올라와서 완결될 예정)
지난 5월 중순에 디즈니플러스로 출시되어서 저는 바로 지난주 2일에 걸쳐 1~13화를 몰아보았네요.
가급적 스포를 자제하면서 재미있게 본 포인트를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1. 시대적 배경에 맞물린 캐릭터 큰 틀에서 삼식이 삼촌(송강호), 김산(변요한)을 주축으로 빌런인 강성민 의원(이규형)이 스토리를 엮어 나갑니다.
이 작품에서 캐릭터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서사의 진행 방식을 짚고 가야겠더라구요.
극중에서 현재 시점은 60년도 중반입니다.
60년은 3.15 부정선거, 4.19 혁명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입니다. 4.19 혁명 이후 4.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4.29일 허정 과도정부, 6.15일 내각제 개헌안 국회 통과, 7.29일 5대 총선거(양원제), 8.13일 윤보선 대통령 취임, 8.19일 장면 총리 인준, 10.25일 한일회담 등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숨가쁘게 이어졌고, 이듬해 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으로 연결되는 큰 흐름이 나타납니다.
작품은 60년대 초반 이런 일련의 흐름에서 주로 정치적 격변과 경제 재건의 두가지 굵직한 축을 두고, 그 큰 흐름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때론 만들어간 인물들을 보여줍니다. 거칠게 보면 삼식이 삼촌과 강성민 의원은 각각 흑막의 조종자와 야심으로 뭉친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격변에 초점울 두고 있고, 미국 유학파 엘리트 군 장교 출신 관료인 김산은 대한민국 경제재건에 인생을 건 인물로서 그려집니다.
게다가 각계 각층에서 이들과 복잡하게 얽힌 주변 인물들도 적지 않게 출연합니다.
대충 줄잡아 봐도 정치인, 언론, 군부, 미 정부와 연관된 브로커(로비스트?)까지.
특히 당시 겉으로는 견제하고 내부에선 야합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뒤가 구린 거래라든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지만 현실 앞에 절망하고 탄압받는 언론인(기자),
썩어빠진 군 조직을 일신하겠다는 이상론과 그 와중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양가 감정 사이에 갈피 못잡는 젋은 장교들,
(아마도 입양아 출신으로) 미국 고위 정치계를 등에 업고 한국을 말 잘듣는 협력국으로 만들겠다며 쿠데타를 사주하는 로비스트...
여러가지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처음의 단순한 스토리를 복잡하게 만들면서 활동합니다.
처음에는 머리 좋고 능력 있는 내무부 과장이었던 주인공 김산은 "내 조국 대한민국을 밥 굶지 않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단순한 꿈을 순수한 마음으로 추진하려 합니다만,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 삼식이 삼촌과의 만남이 모든 것을 바꿔 놓습니다. 그는 모든 공작과 꿍꿍이의 배후에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완전한 선역도, 악역도 없고,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복잡하게 꼬여있음을 김산에게 경험시켜주는 역할이랄까.
국중에서는 60년을 기준 시점으로 잡고 그 이전 시점과 끊임 없이 교차하면서 사건들을 묘사해 갑니다.
뭔가 좀 이야기가 진행되나 싶을 때마다 현재(60년)로 돌아와 군의 취조/수사가 진행되는 지하벙커를 비춥니다.
지난 몇년간의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의 행적이 어떻게 이어져서 이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고문 받고 증발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지하벙커에 눈을 가리고 끌려와 대질심문을 받고 있게 된 건지를... 느리게 풀어나갑니다. (전혀 숨막히는 긴박감이라고는 없는... 그러나 눈을 뗄 수도 없는...)
요컨대 극중 캐릭터들은 시대적 배경에 찰떡 같이 맞물려 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적이 곧 제1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역사가 곧 그들입니다. 격동하는 역사와 캐릭터를 최대한 붙여 놓음으로써 캐릭터들은 살아 움직이고 생동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빌런인 국회의원 강성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만,
후반부에 가서 예상하지 않았던 찐 빌런의 등장도 꽤 흥미로웠지요.
2. 소재의 역사성작품은 실제 역사를 무리 하지 않는 선에서 비틀어 놓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승만 같은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살짝씩 바꿔 놓는다든가...
제가 당시 현대사를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있다면 이를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도 더해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네요.
작품에서는 어떻게 해방과 6.25 사변 이후 자유당 정권이 권력을 향유했는지, 그 와중에 친일파(예: 왜정시대 순사출신 여당 국회의원)의 득세, 진보진영 대선 후보의 암살, 권력과 정치깡패들의 결탁과 테러, 무정부주의 세력의 테러공작(극중 삼식이 삼촌과 빌런인 강성민 의원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소재임),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부정을 하게 만든 자유당 부정선거와 뒤이어 민주정체를 뒤흔든 군부 쿠데타의 획책 등이 마치 논픽션 마냥 진행됩니다.
다루어야 할 역사적 이벤트가 많은만큼 극은 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줌에 있어서 과도하게 생략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늘어져서 극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도 않는 적절한 호흡을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앞에 언급한 60년도와 그 이전 시점을 교차편집하는 것도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긴 한데 너무 과하면 오히려 짜증을 유발할 수 있구요.
일부에선 요즘 트랜드에 맞게 8부작으로 깔끔하게 끝내면 될 것을 무리하게 잡아 늘여 16부작으로 만들어놨다며 박한 평가를 주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제작진도 나름대로 고민의 결과 16부작의 어려운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무튼 잠깐 얘기가 샜는데, 기본적으로는 이 작품의 구조라고 한다면 주인공 김산이 추구하는 "조국 경제의 재건"과 삼식이 삼촌이 추구하는 "절대 권력자를 만들어 내는 배후의 킹 메이커"가 서로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 과정에 많은 역사적 이벤트들을 적절히 버무려 요소마다 배치해 놓았다고 하겠습니다.
삼식이 삼촌의 생각은 야심찹니다.
- 자기 영향력에 있는 정치인을 현 집권 자유당의 최고 권력자로 세운다.
- 그를 통해서 총리가 통치하는 의원내각제로 개헌을 단행한다.
- 자신이 내세운 권력자를 내치고, 김산을 차기 총리(=떠오르는 샛별)로 당선시킨다.
- 김산과 자신이 추구하는 계획경제형 경제 재건정책을 본격 추진한다.
(삼식이 삼촌과 김산은 정치에 대한 이상은 다르지만 중앙 주도 경제재건에서 공감)
그러나 이는 만만치 않은 대항 세력을 직면합니다.
- 재계 최고 유력자의 젋은 후계자가 급부상한다.
- 그는 의원내각제 등 일련의 계획이 지나치게 돌아가는 것이며, 군부 쿠데타야말로 가장 단순하고 빠른 길이라고 여긴다.
- 그에겐 미국내 유력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로비스트의 비호가 있다.
- 군부내 젋은 장교들 또한 배경은 다르지만 쿠데타에 동조하고, 이를 직접 실현하려 한다.
삼식이 삼촌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남으로 인해 단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종국엔 숙청 대상이 될 것이며 그간 이뤄낸 모든 유산이 사라질 것을 우려합니다.
강 대 강으로 부딪혀 어느 한쪽이 파국을 맞을 때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물론 역사는 61년 5.16군사정변으로 군사 정권이 들어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장치와 연출1950년대 서울의 번화가가 주된 무대가 됩니다.
다만 무대가 그리 크지는 않고, 야외 촬영 장면도 많긴 하지만 반복되는 씬(예:극의 중심이 되는 고급호텔과 대로)이 많다보니 나중엔 그냥 작은 세트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권력층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극중 장면들은 당시로서는 고급진 호텔과 실내, 서울 번화가의 거리 모습 등을 보여줍니다. 많은 예산을 들인 작품인만큼 그렇게 유치하거나 싸구려틱한 느낌은 없고, 꽤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면서 그 당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흔적이 느껴지지요. 버튼 없는 교환식 검정 전화기라든가, 버스/트럭 같은 차량, 군인과 경찰들의 복식, 대로변 노점상의 모습 등이 그러하고요. 특히 저의 경우는 극중 가장 중요한 언론기관인 애민일보 편집실 장면에서 고증을 위해 활판인쇄를 위한 활자판과 활자들을 일일이 제작해 놓은 장면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증에 대해서야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러쿵 저러쿵 맞다, 틀리다로 여러 이야기가 나올테니 자신 없는 저는 이쯤까지만 얘기하도록 하고, 장치적인 측면에서는 몇가지 언급을 해두고 싶네요.
우선은 단팥빵입니다. 삼식이 삼촌은 말합니다. "단팥빵이 먹고 싶어서 처음 사람을 죽였다"라고. 그뒤로는 마음껏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죠. 힘과 부를 얻어 제빵 회사를 사버렸거든요. 이 제빵 회사(=빵공장)는 극중에서 여러가지 장치로 활용됩니다. 무정부주의 테러범을 창고에 숨겨주기도 하고, 불꺼진 매장에서는 역적 모의가 이뤄지고, 심지어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면서 진짜 투표함을 빼돌릴 땐 이 빵 회사 로고가 인쇄된 종이박스에 숨겨서 운반을 하는 등... 삼식이 삼촌은 그래서인지 늘상 단팥빵을 먹고 있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빵을 주는 자, 그가 바로 삼식이 삼촌입니다.
다음은 피자입니다. (이 작품은 먹는게 장치입니다.) 김산은 외칩니다. "혹시 피자를 먹어보았느냐"고, "미국에서는 누구나 매일 피자를 먹을 수 있다"고. 아무리 국가를 위해서라고 해도 목숨을 잃게 되고, 배불리 먹지도 못해 굶어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외칩니다. 마치 김구 선생께서 나의 소원은 독립이라고 하신 것처럼, 김산은 "나의 소원은 국가 경제의 재건"이라고 말합니다. 의원내각제가 되었든, 군부 쿠데타가 되었든 간에 국가 경제를 일으킬 수 있기만 하다면 된다고. 평소 거드름을 피우듯 "피자 먹어봤냐"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던 삼식이 삼촌은 우연히 정치 강연에서 미국 유학시절 피자 가게 건물에 월세살이를 하며 실제로 피자를 먹어본 김산이 "온 국민을 배 곪지 않게 하고 싶다"고 외치는 것을 듣고 운명적인 엮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피자는 단팥빵과 함께 이 모든 일의 시초에 있었지요.
마지막은 극중 무정부주의 테러집단인 "신의사"의 강령입니다. 만, 이에 대해서 얘기하자니 글이 마치 '삼식이 삼촌'마냥 너무 길어지고 지나친 스포가 될 것 같아 그만두려 합니다. 아무튼 신의사에 얽혀진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는 (이 또한 실제 역사에서 유명한 백의사와 염동진의 소재를 차용했다고 보는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이로 인해 과하게 극의 분량이 길어지는 역효과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4. 종반부의 감상
늘어지면서도 어찌어찌 끌어온 일련의 사태들은 14화에서 16화에 이르면서 물살을 타고 마지막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14화에서는 그 직전까지 극의 중요 빌런으로 활동한 강성민의 말로가 4.19 혁명의 불길과 맞물려 흥미롭게 그려집니다만, 장장 십몇화에 걸쳐 메인 배역으로 존재감을 나타낸 것에 비해서는 그의 사망 후엔 완전히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 영 별로네요.)
도대체 1960년 중반 쿠데타 혁명군의 본거지 같은 지하벙커에서 삼삭이 삼촌과 김산은 무얼하고 있는걸까요.
저의 의문은 의외로 너무 쉽게 풀려 버렸습니다. 삼식이 삼촌,, 김산, 장두식 장군 등이 쿠데타를 모의하고 거사일을 5월 16일로 잡았거든요. 즉 이들은 5.16 쿠데타를 모의한 셈이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61년도에 일어난 일이지만 작가는 60년으로 시점을 각색해 버립니다. 4.19 혁명 이후 불과 한달도 안 된 시점이지요. 왜 그랬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실제 역사에서는 쿠데타의 이유가 계속되는 정치 불안, 사회 혼란, 군부에 대한 홀대와 부패, 막장스러운 파벌 싸움 등이었는데, 극에서도 유사하게 묘사되긴 합니다. 극에서는 쿠데타의 트리거가 되는 것은 4.19 이후 자유당 실권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 신구파가 내각 갈라먹기를 하면서 국방부 장관을 민간인으로 세우고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리는 결정에 군이 반발하게 된 것이었죠.
어쨌든 이로써 모든 것은 60년 5월 16일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주인공들을 쓸어 버린다라는 것이 장장 14화를 끌어온 이야기의 진상이었고, 그 이후 남은 시간은 그저 이미 관객은 다 알고 있는 상태의 삼식이 삼촌+김산 등의 쿠데타가 어떻게 실패에 이르렀는지를 구구절절 풀어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반전이라고 하기엔 결말을 다 알고 있다보니 맥이 풀린채로 감상할 뿐.
오히려 극 후반부의 감상 포인트는 삼식이 삼촌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어떻게 혁명군부의 총탄에 스러져갔는지 그 비장함과 무상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삼식이 삼촌을 가슴에 묻고 억세게 살아남았던 김산이 어떻게 군사정권에서 염원의 국가경제 재건을 이루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것이었네요. ... 만, 그 부분은 마지막 에필로그 격인 장면에서 간단히 나올 뿐 나머지는 그저 삼식이 삼촌에 대한 회상씬으로 마무리.
요컨대 마무리는 해야될 이야기를 했을 뿐 어떤 흥분이나 반전보다는 담담히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갈 뿐이었고, 그냥 그것으로 족할듯 싶습니다. 극 자체가 큰 틀에서 실제 역사의 전개를 따라 갔기에 상관은 없지만요. 애초에 박정희의 군사정변이 드라마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고 보기에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에 있어 시종 비슷한 리듬을 유지하고, 뭔가 급작스럽게 종반부에서 변주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듯 싶네요.
5. 마무리 : 삼식이 삼촌, 그는 누구인가?
댓글에서도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지만, 늘어지는 전개로 인해 비판이 많고 소재가 소재인지라 호불호도 갈리고, 대중적으로 화제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게 마냥 못만든 작품이 아닌데 저로서는 많이 아쉽네요.
아무튼 제가 볼 때 이 작품의 화두랄까, 핵심은 결국 "그래서 삼식이 삼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머리가 비상한 사람, 수완이 뛰어난 사람, 야심을 품은 사람, 흑막에서 음모를 꾸미고 조종하는 사람, 냉정하게 살인도 마다않는 사람.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렇게나 그를 무시하고 머슴마냥 함부로 대한 강성민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한 것에 깊은 후회까지 느꼈지요. 또한 김산의 "국가재건 연설" 이후 그를 장관님이라고 부르며 수많은 충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원하였고, 끝까지 김산만은 살려달라고 쿠데타군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습니다. 나라 경제를 틀어지고 정계와 결탁한 재벌 집단인 청우회에 대해서도 늘 무례한 취급을 받았지만 위기 때마다 수완을 발휘해 그들을 구해줍니다. (물론 종국엔 그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었지만요.) 그가 진행하였던 3.15 부정 선거를 깡그리 망쳐놓아 곤란한 처지에 빠뜨린 차태민에 대해서도 그를 안타까워 할 뿐 미워하지는 못했었네요.
태생이 미천하여 부잣집인 강성민 일가의 머슴으로 들어가 "하루 세끼 밥만 먹여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해서 삼식이라고 불렸던 그. 단팥빵을 먹여준다는 말에 십대에 처음 사람을 죽인 그. 그리고 김산이 민주당에서 국가 재건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낙심해 있을 때 그에게 "당신은 시루떡처럼 찐득한 사람"이라며 격려도 해줍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사실은 내가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며 김산에게 진짜 피자 맛이 어땠는지 묻습니다. 먹을 것으로 시작해서 먹을 것으로 끝난 삼식이 삼촌은 해방과 전쟁 이후 배를 곯아 죽어가던 그 시대 민초들에게 아무도 배를 곯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그 단순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었죠. (묘하게도 이런 그는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 "밥은 먹고 다니냐"와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극의 종반부, 그의 인생은 군부에 의한 총살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국가 재건을 책임진 장관이 된 김산은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며 이미 가버린 삼식이 삼촌을 추억합니다. 그렇게 "우리 장관님" 한 결과일까, 마침내 장관이 되었고, 삼식이 삼촌의 열망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김산의 가슴에 남아서 착실히 이뤄져 갔다고 말입니다.
이런걸 보면 삼식이 삼촌은 항상 입버릇처럼 "우리 김산 장관님은 그저 한가지 밖에 모르는 순수해 빠진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결국 가장 순수했던 것은 삼식이 삼촌 본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더러운 나쁜일을 벌이지만 결코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적에게 고용되어 늘 그를 염탐해 온 사람에게도 배라도 곯을까 쓰라고 돈을 찔러주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랬기에 김산의 전 약혼자 주여진이 김산을 볼 때마다 "삼식이 삼촌이 당신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지만 삼식이 삼촌의 참 모습을 이해하고 있던 아마도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김산은 삼식이 삼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나 괴물 맞아요."라고 맞받아 칩니다.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든 시대,
괴물에 의해 상처입은 사람들이 다시 복수의 괴물이 되어 가해자를 처단한 시대.
연출과 극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이 바라본 혁명의 시대의 모습은 그렇게 괴물을 낳은 시대였던듯 합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모두가 각자도생하면서 누군가를 챙겨주기 보다는 자기 앞가림 하기도 버거운 메마른 시대에 삼식이 삼촌 같은 사람이 그립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