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성남시장으로 명성을 얻고, 경기도지사직을 수행하며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입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대선후보였으며, 낙선한 해에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재까지 약 3년간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피습을 당했다가 기사회생했고, 총선을 승리했으며, 당대표를 연임하였습니다.
이재명은 이러한 정치적 자산에도 불구하고 약점이 많이 발견된 인물입니다. 전과 4범
(지하철역 명함살포·성남시의회 기물파손·음주운전·검사사칭 협조)일 뿐만 아니라 8개의 사건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대북송금·위증교사·허위사실공표·법인카드유용)으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기본 시리즈는 포풀리즘 우려를 낳았고, 경제관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있으며, 안보관은 친중적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재명이 이러한 부정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당 장악력을 앞세워 다시 대선에 출마하는 흐름에 대하여, 일찍이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검찰·언론·암살자가 모두 죽이려고 드는 이재명이야말로
[ 사회 기득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물 ]이므로, 지지할 만하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이재명처럼
[ 논란이 많고 비호감도가 높은 인물 ]을 내세우기 때문에 중도층의 지지가 제한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돌아본다면 윤석열 정부가 제 임기를 채우기만 했더라도, 전자의 의견은 갈수록 소수화되고 후자의 의견이 법원 판결의 지지를 받아, 이재명의 정치생명은 끊어졌을 것입니다. 그의 피선거권은 박탈당하고, 정치적 영향력은 감소하며, 그 뒤에는 실형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성토하더라도, 누가 정말로 법원 판결에 불복하자고 주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설령 주장하더라도, 시민들이 따를 수가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12월 3일에 계엄이 선포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은
정상국가로 남고, 이재명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어째서인지 대한민국을
비정상국가로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이재명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이 국면의 역설이 있습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던 측과 죽이려던 측의 대립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가 더 본질적인 거악(巨惡)이라고 주장하는 두 세계관의 충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국가를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고 이재명이 이들의 권력을 위협한 것이라면, 수사와 재판은
[ 탄압의 증거 ]가 됩니다. 반면 국가를 지배하는 암중세력은 없고 권력자를 단죄하려는 사법 시스템만 있는 것이라면, 탄압의 서사는
[ 범죄자의 변명 ]이 됩니다.
2024년 11월까지 ‘탄압의 세계관’은 큰 설득력이 없었고, 이재명의 정치생명은 법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입지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근거했고 대선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일단 피선거권이 박탈되고 나면, 이재명이
정상이기 위해서는 국가를
비정상으로 치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압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국가의 정상성을 부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4년 12월에 이르러,
국가의 정상성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계엄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이재명은 계엄 해제를 주도하며
정상성의 붕괴를 최소화하고자 진력했습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더는 국가 체계의
정상성과 이재명의
비정상성을 설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가장 시급한 단죄 대상이 되고, 그 일을 할 수 있고 잘할 것 같은 인물로 이재명이 주목받았습니다.
[ 공수가 전환된 것입니다. ]물론 12·3 계엄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국가 기관들이 윤석열 정부와의 차이를 강조하며 사후 처리에 협력했다면 이재명의 대두는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의 인권을 수호했으며, 헌법 재판조차도 권한대행이 한 차례 탄핵된 뒤에야 개시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경호처를 동원해 영장에 불복했고, 검찰과 법원은 구속취소 논란으로 의심의 시선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국가의 정상성을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뜨리고도, 그 뒤 4개월 동안 당당함을 뽐내며
[ 체제의 신뢰도를 한없이 추락시켰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충격이 앞서 언급한 ‘탄압의 세계관’을 널리 납득시켰습니다. 단지 대통령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체제 운용자들 전반이 한통속이었다는 인식이 너무 많이 확산되었던 탓입니다. 결국 이재명의 대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초래된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오늘날 이재명의 시간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체제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킨 현재의 상황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조차
비정상의 일환으로 해석되지, 정상적인 작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판결에 대항하는 조치는 유의미한 역풍을 발생시키지 못하며, 여권 후보가 모두 계엄 당시에 국무위원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보장해 줍니다. 변수가 극도로 제한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재명은 마치 운석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운석은 도래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운석이 육안으로 보인다면, 이미 운석을 피하기는 늦은 시점이겠지요. 따라서 운석을 보고 멸망을 예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운석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운석은 기어이 공룡을 멸종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22대 총선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 운석은 윤석열 정부가
[ 스스로 불러온 재앙 ]으로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