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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03 07:25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일단 투니버스배(99PKO)는 예선으로 선수를 선발한 것이 아닌, 당시 8개프로팀에서 2명씩을 초청한 대회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코리아오픈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마추어도 참여못하고, 프로도 전부 참여하지 못하는 대회였죠... 어쨌든 이대회에서 상위4명이 하나로통신배에서 시드배정되고 12명은 예선선발하게 되는데, 투니버스배에 초청받은 선수들 중 예선을 통과한 선수는 김동구 선수밖에 없었습니다. 11명이 새얼굴이었죠. 이후 프리챌배 역시 시드배정자 4명을 제외하고 20명을 예선에서 선발하는데, 이중 그래도 4명(봉준구, 김대기, 도진광, 장경호)이 기존에 얼굴을 비췄던 선수네요... 그래도 여전히 16명이... 새얼굴이었죠. 한빛소프트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습니다. 24강에서 16명으로 바뀌면서 2명만 시드배정을 받았는데, 이 2명을 제외하고 14명이 첫출전자였어요. 이런 이유때문에 임요환선수나 임성춘선수는 이때가 데뷔였음에도, 이미 충분히 알려진채로 데뷔했기때문에 데뷔하자마자 고참선수였죠.(데뷔한 주요선수, 임요환 장진남 박용욱 홍진호 임성춘 이운재 한웅렬) 코카콜라배에 와서야 첫출전자는 16명중 9명으로 비교적 줄어듭니다. 시드배정자를 제외하고서 14명중 5명이 예선을 통과한거죠.(데뷔한 주요선수, 성준모 변길섭 박태민 박정석) 스카이01은 4명을 온라인예선에서 선발했음에도 첫출전자가 7명뿐이었습니다. 2명의 시드제외, 4명의 온라인예선 제외하면 10명중 3명만 첫출전이었던거죠. 결국 투니버스배에서 한빛배까지 첫대회라고 하기에 두루뭉술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프리챌, 한빛, 코카중 아무거나를 시작으로 잡아도 임요환선수나 김동수선수가 초대와 2번째 로열로더가 되기에 숫자가 같아집니다...(김동수선수는 한빛배에서 시드를 받지 못해 2번째 우승한 스카이01대회가 두번째 참가한 대회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 첫대회와 두번째대회에서 우승한 두선수를 기점으로 잡아 '로열로더'란 이름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08/11/03 11:48
온게임넷이 독립적으로 스타리그를 개최한것은 하나로통신배가 아닌 프리첼배입니다.
하나로통신때 까지는 투니버스와 같이 했었죠. 그렇기 때문에 프리첼배에서 처음 등장해서 우승한 김동수 선수를 1st 로열로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온게임넷 역사속에서의 진정한 로열로더는 박성준 선수라고 봅니다. 그 전의 임요환 김동수 이윤열 같은 선수들은 사실 당시에 데뷔선수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했죠,,,
08/11/03 14:08
BK_Zju님// 김동수선수는 분명한 데뷔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로열로더는 이미 제왕에 오른 사람이 온게임넷 우승의 길을 걸어가는 느낌어었달까요... 차라리 임요환선수나 이윤열선수, 마재윤선수의 느낌이 더 가까웠습니다. 최연성선수는 박성준선수에게 막혔지만요.
08/11/03 14:36
信主NISSI님// 제 말은 그때 당시만 해도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지금 같은 초 메이저 대회는 아니였지 않습니까.. 뭐 KGL 게임큐 대회 등등 많은 권위있는 대회들이 많았고 김동수 선수는 이미 그런 대회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던 선수였죠.
때문에 프리첼배의 김동수 선수는 해성같이 확~ 나타났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빛배의 임요환, 파나소닉의 이윤열) 정말 어라? 왠 처음보는 어색한 사람이 딱 등장해서 우승한 경우는 온게임넷으로는 박성준선수가 처음이였죠.
08/11/03 15:54
제가 기억하기론 프리챌배때의 김동수 선수는 좀 관심있는 분들한테는 굉장한 유명고수, tv에서 스타 중계해줄 떄만 가끔 보는 분들에게는 무명에 가깝던 선수였습니다.
저그전 하드코어 질럿러시에 이은 질템이 굉장히, 정말 굉장히 유명했고 (일명 가림토스) 프리뮤라 최진우 선수랑 로템에서 붙는거 보고 싶다고 하는 팬들도 많았었죠. 방송에서는 첫등장이라 8강인가 재경기끝에 김동준,변성철을 꺾고 올라갈 떄 많은분들이 이변이라고 하셨지만 그 당시에 게이머들 사이에선 이미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프로토스였습니다. 그 당시의 가시적인 대회 경력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프리챌배가 2000년 가을쯤이니까 게임큐나 키글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전일거고 지금은 기록에 잘 남아있지 않은 각종 오프라인대회등의 수상경력이 대부분일겁니다. 재미있는 건 이 당시의 김동수 선수는 전략과 거리가 먼 프로토스였다는거죠. 3종족을 상대로 모두 2게이트웨이를 종종 하기로 알려져있었고 본인이 말하길 '섬맵에서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왜 강한지, 테란전 패스트 드래군의 기본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이해를 못한 상태로 우승을 했었다'고 회고했었습니다. 게임큐에서 임요환 선수의 토스전 센터 3배럭등을 비판하면서 '정석을 못하는 임요환 논쟁'을 주도한 인물중 하나이기도 하고 (일명 송병석과 아이들 크크) 그랬는데 불과 1-2년후엔 임선수랑도 친해져있고 자신은 이미 프로토스 진영 최고의 전략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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