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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22 01:39:26
Name OrBef
Subject [일반] [잡담] 현대 정치에서 호민관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로마의 정치는 평민들로 이루어진 민회 + 귀족들로 이루어진 원로원 이렇게 두 개의 의회에서 이끌어나갔고, 형식적으로야 민회가 원로원과 권력을 양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원로원이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정치도 하던 놈이 잘한다고, 농사짓던 시민들이 민회에 나가봤자 할아버지 때부터 정치하던 원로원 귀족에 비해서 가진 정보의 양이나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 등이 터무니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회에서 호민관을 몇 명 선출해서 원로원과 원로원 수장인 집정관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권력을 줍니다. 민회에서 선출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집정관의 최종 결정에 대해서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었고 때로는 원로원을 소집하는 권한도 있었다더군요. 그리고 호민관을 역임하고 나면 원로원 의원이 되는 특권 (이건 나중에 없어졌지만) 도 있었기 때문에 패기만만한 평민들의 출세 코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일반 국민들은 nll 이 뭐가 어쨌다는 건지 국정원이 뭐 어쨌다는 건지 이석기가 정말로 뭐라고 발언한 건지 잘 모릅니다. 그냥 자기가 지지하는 당에서 얘기하는 게 맞겠지 (혹은 맞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덮어버리기 일쑤인데, 정치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도 없고 그런 정보를 처리하는 훈련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거지 싶습니다. 정치 덕후 쯤 되면 시간도 투자하고 사고력도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겠지만, 여전히 가진 정보의 양과 질에서 직업 정치인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는 정기적으로 국회로부터 감사를 받지요. 하지만 국회의원은 누구에게도 감사를 받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하는 수행 평가는 무효!) 시민 단체들이 가끔 의원 평가 등을 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결과들은 국민들이 해당 시민 단체를 신뢰하지 않는 이상은 별로 의미 없지요. 그래서 결국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라는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생각난 것이, 국회 의원 선거 때 지역구 선거, 비례대표 선거와 별도로 10 명 정도의 전국구 호민관 의원을 선거로 뽑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들이라면:

- 호민관은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정치 신인들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해당 인물이 아직 정파에 단단히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비교적 투명하게 정치 사안을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 지원자들은 되도록 무소속이면 좋고, 설령 특정 정당에 소속된 사람이더라도 호민관으로 당선이 되면 임기 동안은 해당 당적을 버려야 합니다.
- 호민관은 국회의원과 동일한 임기와 면책 특권을 지니고 국회의원과 동일한 정보 접근 권한을 지닙니다.
- 호민관은 법안을 발의할 권한이 없는 대신 국회의원과 정당에 대한 감시를 주 역할로 합니다.

*추가: - 국민들은 인터넷이나 전통적인 서류 작성을 통해서 호민관에게 관심 사안에 대한 조사를 요청할 수 있고, 호민관은 일정 기간 이내에 그 사안에 대한 본인의 조사 결과를 공개해야합니다 추가끝*
- 호민관은 일정 주기마다 국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투명한 해석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 의원들이 말을 바꾼다든지, 접근 권한이 없는 정보를 취득했다든지, 정당이 특정 안건에 대해서 정당한 이유 없이 입장을 바꾼다든지 하는 일들에 대해서 추적/감시를 하고 해당 사실을 공개합니다.
- 호민관은 4년 임기가 끝나고 나면 *수정: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고, 국민들로부터 50% 이상의 지지도를 받게 되면 4년 동안의 국회의원 자리를 보장받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당선자는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해야하니다. 수정끝* 이것은 다른 국회의원으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특권이 좀 오버스럽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하여튼 뭔가 안전장치가 있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일들은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 언론은 이미 정상적인 감시 기능을 상실했지요. 자기편은 있는 잘못도 감싸고 저쪽편은 없는 잘못도 만들어내서 깝니다. 하지만 호민관은 이런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본인의 정치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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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
13/11/22 01:46
수정 아이콘
결국 어떻게보면 일종의 양원제 형태 비슷한 운영이 가능하니 헌법개정등을 거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겁니다. 다만 실현가능성이나 실효성, 그 외의 정치적인 부분등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我無嶋
13/11/22 01:47
수정 아이콘
정파에 단단히 묶이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지만 정파적으로 판단할 사항들이 너무 많죠
"투명한 해석", "정당한 이유" 를 정치적 견해 없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당론변경에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다만 그 이유가 얼토당토 않게 느껴질 뿐이죠.
반대파가 답답하고 정당치 않다고 생각해도,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그 이유가 타당해 보일겁니다.
아마도 그 몇명의 호민관들이 각자의 정치적 스탠스, 혹은 지지받거나 지원받는 정당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열중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정치적 신인이 뜬금없이 데뷔해서 국회의원까지 보장받는 길을 읽다보니 문득 손수조씨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이자스민씨 같은 분들을 비례대표에 갖다 꽂아서 이미지 메이킹 하듯 그런 용도로 쓰이겠다. 싶네요.
그사람. 알고보니 유력한 누구누구가 맘에 들어 했다지. 하면서 말이죠.
13/11/22 02:00
수정 아이콘
사실 본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같은 사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정파에 묶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드린 부분에서 의도한 바는 특정 정당의 정치인들과 '우리가 남이가' 로 묶이는, 정치 성향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경계해야한다고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래도아이유탱구
13/11/22 01:50
수정 아이콘
정치신인이라는 것이 시민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정당에 대한 견제는 상대당이 하는 것이 맞고, 이런 것조차 언론을 통해 여론형성이 안되는 상황에서 호민관이라는 제도가 생기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귤이씁니다SE
13/11/22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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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참신하기는 한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저울이 아닌이상 결국 자신의 성향대로 판단할테니 말입니다. 결국 호민관 또한 정치계 입문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되는데, 과연 정치신인으로 구성한다고 해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지도 의문이구요. 결국 자신이 돌아갈 당의 눈치를 보게 되겠죠.

뭐... 좋은 예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번 총선때 새누리의 젊음과 참신함을 상징하던 이준석 군과 손수조 양의 그동안의 발언등을 보면 글쎄올습니다.. 좀 회의감이 드네요.
13/11/22 02:02
수정 아이콘
네 그런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호민관 이후 국회의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13/11/22 01:59
수정 아이콘
세 분의 말씀을 듣고 본문을

호민관은 4년 임기가 끝나고 나면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고, 국민들로부터 50% 이상의 지지도를 받게 되면 4년 동안의 국회의원 자리를 보장받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당선자는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해야하니다.

으로 수정했습니다.
endogeneity
13/11/22 01:59
수정 아이콘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호민관 제도를 사회의 내적 갈등이 좋은 제도의 정착을 야기하여 결국은 인민의 자유를 보호해낸 사례라는 흥미로운 관찰을 한 적이 있습니다.(갈등의 순기능을 주창한 유명한 사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호민관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개싸움들을 직접 조정하는 가운데서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Orbef님이 호민관 자격을 젊은이(정확히는 정치신인이라 하셨으나)로 잡은건 흥미롭습니다. 하이에크 같은 우파 사상가들은 같은 역할에 오히려 노인들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이 경우는 로마 원로원이 모델인지도..)

공평무사함에 가까운건 젊음인지, 연륜인지...생각해볼 거리인것 같습니다.
13/11/22 02:07
수정 아이콘
정치 신인이라고 했을 때 젊은이를 생각하긴 했습니다. 님 말씀처럼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오히려 '내가 뭐 이제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나 하다 죽어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긴 하고, 그래서 미국도 하원보다 상원이 더 평화롭지요. 말씀대로 결론이 쉽지 않은 질문이긴 하네요.
아우구스투스
13/11/22 02:08
수정 아이콘
원로원이 아니라 평민회의(귀족이 아닌 평민들만 소집됩니다.)를 개최할 수 있고 그 평민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로마 민회와 동일한 위력을 가지죠.
로마의 시스템도 원로원이 권고(명령이 아니라 권고였죠)를 통해서 민회에서 결정하는건데 평민회의도 같은 권한이 있었죠.
호민관제도가 그라쿠스 형제시기정도만이라도 해주면 좋지만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정치 등용문 수준이었으니까요.
13/11/22 02:09
수정 아이콘
아 그런가요? 제가 조금 잘못 알고 있었나보네요. 뭐 본문의 주요 주장에는 큰 영향이 없는 부분이니까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
13/11/22 02:12
수정 아이콘
이게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니까요 흐흐흐
어떻게 보면 원로원은 그야말로 원로원, 즉 집정관이 일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자 조언자 역할을 해야하는데, 사실상 1년에 2명씩 나오는 집정관이 나올 수 있는 집단이 결국 원로원이고 그 둘이 겹쳐지며 또한 원로원이 워낙 탁월한 공(포에니 전쟁 승리)를 하다보니 민회를 밀어내다시피했죠.
bloomsbury
13/11/22 02:10
수정 아이콘
본문과 같은 호민관 제도가 생기고 그들이 정말 순수하게 맡은 바 일을 한다고 한들
저쪽 세상과 이쪽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언론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언론이 자신의 임무를 포기했기 때문에 호민관이 필요한 거라면 그런 타락한 언론을 통하지않고
자신들의 활동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방법이 있는 것인가,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 덕후'수준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인가가 문제겠지요.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양심적인 국회의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언론이 문제라고 봅니다.
아우구스투스
13/11/22 02:13
수정 아이콘
카이사르가 한 것중에 하나가 원로원 회의의 내용을 죄다 공개해버리는 것이었는데요.
이것을 통해서 상당한 여론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원로원들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국회방송까지 있어도........................................................................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13/11/22 02:19
수정 아이콘
사실 제가 저 자신을 볼 때 전형적인 일반 시민 수준의 정치 관련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 방송이 있어봤자 본 적도 없고 국회의원 홈페이지 같은 것은 가본 적도 없고 시민 단체가 발행하는 의정 평가 등을 읽어본 적도 없지요. 저는 정치에 대해서 일주일에 두 시간 이상 관심을 쏟고 싶지 않지만 사회는 정의롭게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저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수천페이지의 문서를 대신 읽어서 '이게 해당 사안에 대한 정성적인 진실임' 이라고 말해줄 누군가이고, 그런 사람을 제도적으로 존재하게 해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보니 호민관 생각이 나더군요.
9th_avenue
13/11/22 02:25
수정 아이콘
사실 지금같이 복잡한 사안들이 대립하는 때 '본질흐리기' 물타기' 등에 많이 당하는 게 국민이죠.
정말 국민들에게 서머리 노트를 제공할 그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한가지 사안에 대하여 통찰력 있게 접근하기엔 너무 힘든 경우가 종종 있어요.
데오늬
13/11/22 02:20
수정 아이콘
전 요즘 들어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비욘세
13/11/22 02:26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특히 요즘의 한국은...
9th_avenue
13/11/22 02:21
수정 아이콘
재밌는 논의네요.
그런데 선출직은 시간이 지나면 또 나름대로 국K1원꼴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네요.
게다가 현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무관한 신인들만 지원하는 것이 어쩌면 정계의 등용문 내지는 미리 줄대놓고 나중에 정당공천받기
라는 꼼수로 변질될까 또 두렵네요.
(요새 같은 공고한 정당정치 밑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보다는 정당에 줄잘대고 나팔수, 저격수들이 더 요직에 들어가니까요.)

예전 청나라의 완벽한 통치제도의 끝도 부패와 무능으로 종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완벽한 제도를 갖춰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이미 글러먹으면 그 제도는 아마 글러먹은 모양새가 나오지 않을까요?

위에 분도 언급하셨지만 Orbef님께서 언급하신 저 기능을 주요 언론에서 담당해야 했었는데.. 하아~~;;
국회 모든 일정에 참여가능하고 기록을 남기고 공표할 수 있는 프리랜서 기자 내지는 방송이 필요하겠네요. 18세기 조선의 사관이 필요한 21세기
대한민국입니다 껄껄껄~

덧으로 생각해보니 농담이 아니라 제3자 같은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기자를 익명을 보장해주고 모든 회의와 속기록들을 보게해서 공중파 저녁10시타임에 딱 20분만 할애해주는건 어떨까요?
13/11/22 02:32
수정 아이콘
위의 데오늬/비욘세 두 분과 마찬가지로, 결국 사람이 문제긴 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행동도 결국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인지라 (해당 개인의 행동이 변한다기 보다는 다음 세대의 문화가 달라지겠지요),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문의 호민관 제도가 그 해답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일단 호민관 선출을 어떻게 할 지부터가 답이 별로 없....), 그냥 같이 생각해볼 만한 소재라고 봐서 야밤에 확 던져 봤습니다 :)
비욘세
13/11/22 02:29
수정 아이콘
부조리가 일신의 영달의 지름길을 너머 생존의 필수조건인 사회분위기의 해결방법은 무엇이 될수있을까요?
그르지마요
13/11/22 02:36
수정 아이콘
현대정치학은 투명한 감시자에 의한 공정한 과정의 통제보다, 상호적대적인 세력간의 부딪힘에 의한 역학을 중시합니다... 투명한 감시자란 개념은 너무 이상적이라, 그런 존재가 진짜 있다면 차라리 왕으로 세우는게 낫겠죠. 무엇보다 그렇게 '쓸만한 정치역학'은 제도에 의해 이식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누적된 경험, 역사로부터 자리잡힙니다. 예컨대 미국이 외국에 민주주의 이식해 본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되는 건 안되지요. 지금 정말 필요한건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거리의 투쟁에 한정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포포탄
13/11/22 03:1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요즘 의회와 정당사를 수련하고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를 보자면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정당사가 대한민국의 사회균열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7년 보수적 민주화 이후에 한국이 다른나라들과 같이 이 균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과같이 이념도 모호하고 이른바 후견주의(clientelism)가 득세하는 정세가 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의회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사실상 국민들은 별 관심 없고, 나한테 이득이 되느냐 아니냐만을 따지는 풍조가 되어버렸죠. 우리가 가난하고 가진것도 없는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찍고, 저 재수없는 강남좌파들이 민주당코스프레 하는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정치역사가 그 동안 얼마나 이 사회균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안일하게 정치를 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노무현 정부 시기 간, '세대'라는, 그나마 명확하게 사회균열을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등장하기는 했습니다만 여러 실책으로 인해 MB정부에서 후견주의가 재등장했습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정치성향의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 지금에야 질높은 정보나 활동보조를 통해서 정치력을 뒷받침한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의회의 부활을 담보할 것인지는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분위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점을 모색해보자면 일단 무지막지한 교섭단체의 권환 약화, 국회의장 권환 강화 또는 국회의장 조건부 종신제 도입, 영국식 상원제도의 일부 도입 등을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런 개혁안을 모색하면 꼭 팔다리 다 잘린 누더기 개혁안이 통과되는 기이한 땅이라서요..-_-; 국회선진화법도 교섭단체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국회의장의 권환만 약화시켜서 국회의장이 꼭두각시화 되고 분란 조정 안되고 정파싸움은 더 심해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라는 생각이 듭니다.

OrBef님께서 제시하신 호민관 제도를 지금 당장 어떻게든 도입해야한다면 그 형태는 결국 직능대표제와 제한적 상원의회제도(영국식)의 도입같은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철수가 아무것도 안함에도 불구하고 신뢰도가 비교적 높은 이유가 바로 안철수가 걸어온 길이 어떤 직업군을 대표할 만 하다고 인정받고 정치에 몸담지 않았던 과거 경력때문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을 다양한 방면에서 양산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직능대표제+상원의회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라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회균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정치지형을 새롭게 재편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3/11/2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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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듣고 보니 직능대표제가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는 제도긴 하군요. 제한적 상원의회제도는 어떤 것인 지 조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포포탄
13/11/2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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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은 제가 붙인 말이에요. 영국식을 그대로 가져다 북/붙하기에는 맞지않는 부분이 있으니까요..(새벽이라 그런지 영국인지 프랑스인지 갑자기 헷갈립니다.)

영국식이라면야 당이나 정부에서 추천한 직능대표나 명망있는 사회인사, 작위수여자들을 모아다가 상원에서 법안이나 사회현안에 대해서 검토할 수 있도록 만든 의회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국에서는 긴 기간동안 무제한 릴레이 토론을 통해 상원에서 격론을 벌이게 한 후에 하원에서 의결하게 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원도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하원이 지역구에서 일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에 상원이 이를 보조하는 형태로 움직이지요. 영국식의 장점이라면 상원은 임명직이라서 미국처럼 당을 떠나서 자신의 지역구나 대표직업군을 위한 주장을 소신있게 펼치는 경우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상원에서 정보를 제공한 후에 하원이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기각할 것은 기각하는 시스템이죠. 물론 당의 보조를 받는 상원의원은 당의 입장을 두둔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상원의원활동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당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정보제공과 논리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구요. 적어도 말도 안되는 헛소리하는 당쟁보다는 말 되는 당쟁이 될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특히나 당의 연구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더욱 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구요.

사실 이런 복잡한 제도 말고 상임위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상임위가 훨씬 간편하고 시간/자원도 적게드는 제도입니다만, 한국에서는 교섭단체의 막강한 권력때문에 상임위가 제대로 굴러가기에는 사실상 어렵고, 법사위를 장악하면 사실상 의회 전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인지라.. 상임위를 따로 떼어내서 상원의회같은 역할을 맡겨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곤 합니다. 지금 국회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당쟁이나 몸싸움 이런 것 보다 아예 수면위로 떠오르지도 못하는 수많은 법안들이 묻히면서 소위 '국회의원들 일도 안한다'라는 이미지가 박혔고, 이 때문에 정치무관심이 형성되고,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해 왜곡보도하는 언론이 뒷받침하는 형상이라고 생각해서요..
13/11/22 06:03
수정 아이콘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제가 미국 살다보니 미국식 양원제밖에 모르는데, 영국의 양원제는 기능이 완전히 다르군요!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해주신 부분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입니다 (법사위를 지배하는 자가 게임을 지배.. 아 이건 아니구나). 역시 일반 시민은 뭘 몰라도 한참 몰라요 ㅠ.ㅠ
13/11/22 08:16
수정 아이콘
귀족들과 평민들의 회의체를 구분하였던 것에서 시작된 유산이니까요(상원의원은 명예직이라 월급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최종심 재판도 상원에서 했었습니다. 상원의장=대법원장이었죠.
13/11/22 08:55
수정 아이콘
오호라 오늘 이것 저것 많이 배우네요 :)
포포탄
13/11/22 09:10
수정 아이콘
법사위원장을 거쳐갔던 국회의원들 검색해보시면 바로 수긍하실거에요... 거물급은 죄다 여기를 거쳐갔구요. 국회의원에 변호사/검사출신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도 법사위테크 한번 타면 가지게 되는 권력이 막강한지라 당에서도 이런사람들을 계속 후보로 키워둘 수 밖에 없고, 또 거쳐가기만 하면 엄청난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계신다니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은 각 소관 상임위를 거쳐가고, 각 소관 상임위에서 일정기간 심사 후 통과가 되면 법사위에서 다시 최종심사를 거쳐서 본회의에 회부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법사위제도가 2중필터링이라는 지적도 있고, 법사위에서 악의적으로 입법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기도 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상임위제도를 채택한 다른나라에서는 상임위를 두번 거치는 이런 2중심사구조가 흔치 않은데, 상임위를 처음 출범시켰던 당시, 정치인들의 역량문제때문에 도입되었다가 지금은 제1당이 법사위를 가져감으로서 실질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죠.
13/11/22 09:15
수정 아이콘
아, 말씀듣고나니 이해가 깔끔하게 됩니다. 관련 공부 하시는 분인가보네요. 시간 많이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3/11/22 09:29
수정 아이콘
20세기에는 1당이 법사위원회를 장악하는 형태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법사위 자체가 여야동수에 위원장은 야당이 하고 있는 것이 관례로 거의 굳어졌다고 알고 있는데요. 과거부터 위와 같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전제가 달라졌다면 위 비판은 더 이상 유효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포포탄
13/11/22 09:42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찾아보지않고 배운대로만 설명하다보니 이런 오류가..
정치를 책으로 배웠더니 놓치는 부분이 있었네요.

하지만 비판점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여전히 심사기간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문제때문에 이번에 국회 선진화법에서도 심사기간을 제한하기도 하고(몇가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효력은 거의 없어보입니다만..), 사실상 법률을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의원이 몇 없기도 하구요. 야당이 장악한다면 지금과 같은 정국에는 법안 통과 안시켜주는걸로 떼쓰는 문제도 있겠네요..
지구사랑
13/11/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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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의견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원로원이 선출직이 아닌 종신직이었고, 이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호민관의 존재 의의를 찾는다면,
어차피 선출직인 국회의원과 어떤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드네요.
레지엔
13/11/22 09:45
수정 아이콘
국회의원이 민의를 반영하는가도 애매한데, 호민관은 더더욱 애매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10명으로 감사를 한다면 조직을 강화하고 그 조직의 수장이 되거나, 아니면 10명보고 죽으라는건데... 전자면 Who watches the Watchmen이 될거고, 후자면 추후의 '명예로운 경로'가 될 뿐일 것 같습니다.
13/11/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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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주신 분들의 의견이 대체로 '재미있는 생각이긴 한데 아마 잘 안될 거야' 로 모아지는 것 같네요. 그럼 저도 그냥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일이나 해야겠습니당;;;
13/11/22 10:40
수정 아이콘
걍 재미로 읽는 글이죠.
여러모로 재밌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은 점점 정치에 대해 알기 어렵고 그걸 정치권이 이용하는 현 상황이 쉽게 개선되기 쉽지 않긴 하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
13/11/23 01:15
수정 아이콘
국회의원들이 OrBef님 절반만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이렇게 발전적인 생각을 하려고만 해도 참 국민들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부터 들면서 그래도 참신하고 재밌는 의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3/11/22 16:32
수정 아이콘
저게 잘못가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될겁니다. 국회를 견제하는 다른 헌법기관의 창설은 대통령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고요.

시민운동이 그런걸 해야하는데 박시장도 한계를 느끼고 제도권 들어와서 좀 아쉽습니다. 국회의원낙선운동할 때 멋졌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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