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에 친구A가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적이 있었다. 자기 모쏠인데 여자랑은 어떻게 해야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내가 해줄수 있는게 뭐가 있겠냐. 모쏠이든 뭐든간에 개선은 된다. 하지만 그건 나를 만나서 개선되는게 아니고, 여자를 만나야 개선이 되는거지. 그래서 말했다. 너 사적으로 연락할수 있는 여자사람 있냐? 당연하게도 없댄다. 그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누구든 상관없으니깐 여자사람중에 니가 사적으로 주기적으로 연락할수 있는 사람 만들어와. 그럼 다 알려줄게!
한달쯤 뒤에 만난 친구는 불쑥 그이야기를 꺼내더라. 나는 솔직히 까먹고 있었다. 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몇번 해준적이 있는데 (일단 만들어와 그럼 알려줄게) 그건 어떻게보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기위한 의도도 있었다. 사적으로 주기적으로 연락할수 있는 사람 만들수 있으면, 그 사람은 내 도움이 없어도 자연스레 앞으로 잘해나갈거고, 그렇기때문에 보통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근데 이 친구는 만들어왔다고 이제 알려달라고 하더라. 나의 첫마디는 어디서 알게된 여자야? (=다단계나 영업당하는 그런거 아니지?) 였다.
간혹 미친 새퀴들이 있다. 그날 나는 내친구가 미친 새퀴라는걸 알게됐다. 본인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만들어오기만하면 내가 다 해준다' 기에 이런 찬스를 놓치기 싫었댄다. 근데 전화번호부를 아무리 뒤져도 대화가 안되는 여자번호도 몇개 없더란다. 당연히 그랬을거다. 있었겠나. 과거 동창들 연락 다 돌렸지만 당연히 실패. 그래서 여자에게 통할 자기가 잘하는게 뭘까 생각해봤단다. 외모도 화술도 눈치나 배려심 매너 같은거도 특별히 메리트가 없는데, 영어하나는 잘하는데 젊은 여자분들한테 통할거 같았단다. 그때가 그 친구가 유학생활을 끝내고 막 귀국했을때였다. 여튼 그래서 배우지도 않을 자기 레벨보다 낮은 영어학원에 등록했단다. 그것도 세개나...그리고 영어학원에서 같이 수업듣는 여자 번호를 땄는데 그것도 실패도 했지만, 그중 한명과는 잘 연락하고 지내게 되었단다. 따로 밥도 두번정도 먹었고.
내 기분은 뭐였냐면 친구가 치킨을 어떻게 튀기는지 물어봐서 내가 다음에 조각닭을 구해 놓으면 내가 튀기는법은 알려줄게라고 했더니, 닭을 잡아가지고 털을 뽑고 조각조각 내서 '자 내가 니말대로 가져왔어 이제 튀기는법 알려줘 '라는 느낌이었다. 미친새퀴. 아니 구해오란다고 진짜 이런식으로 구해오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닭도 잡은놈이 그걸 왜 못튀겨.. 넌 바로 하산이야 임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여자분과 한 카톡을 보여주는데, 보니깐 이미 둘이 분위기가 좋더라. 그분도 자기 뭐하는지 일거수 일투족 이야기하고 이 친구도 오늘 나 만난다는것까지 이미 미리 보고하고 왔더라. 그리고 읽었을때 여자분에 대한 느낌은, 좀 뭐랄까 호감의 정도를 숨기면서 우위를 쥐려는 기싸움을 안하는 스타일이셨다. 심플하게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도 하고 톡도 읽고 톡도 보내는 분. '역시 툴이 후지면 풀이 좁아져서 못만나서 그렇지 만나면 좋은 사람 만난다니깐'이라며 생각했다. 내가 이거 마무리 오늘 해줘야겠네 라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물었다.
나 " 자 그럼 소개팅할래?"
A "뭐야, 연락하는 애 만들어오면 잘하게 해준다더니 뜬금없이 무슨 소개팅이야."
나 "그래서 할꺼야 말꺼야?"
A "일단 이여자부터 어떻게 해야되는거 아냐?"
나 "그럼 안한다는거지?"
A "아니 안한다는게 아니고 지금은 일단 이 여자분부터 뭘 해야하지 않고 결과를 봐야하지 않아?"
나 "오케이, 너 안한다고 했어."
왜 갑자기 왜그러는데? 라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친구의 카톡을 열었다. 카톡창에는 그녀가 만난 마지막 메세지 '친구 잘 만나고 있어요? 술한잔 하나? ' 가 있었다. 그 밑에 "잘만나고 있어요 한잔하죠!" "근데 친구가 뜬금없이 소개팅하라고 했는데 지은씨 생각나서 안한다고했어요."라고 보냈다. 그리고 친구에겐 뭐라고 보냈는지는 안보여주고 한잔하면서 기다렸더니 5분정도만에 "카카오톡!"이라고 울렸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당연히 미리 허락받았다. 뭐라고 보냈는지만 안보여준거지.)
그녀가 5분만에 화답한 메세지에는 "앗. 그래요? 그럼 저도 앞으로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네요?" 라고 찍혀있었다. 이미 다된 밥이었고 상대방 스타일이 엄한 밀당 안하시는분이라 긍정적인 답신이 당연히 올거라 생각했다. 뭐 내가 한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는 내 멘트가 신통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멘트는 어떻게 만든거야? 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뭐 그리 좋거나 특별한 멘트도 아닌데 말이지. 됐고 잘 만나봐 일단. 다음번에 만났을때 사귀자고 해도되고 안해도되는데, 너는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거같아. 꽃이라도 하나 주면서 이야기해. 해볼건 한번은 다 해보는게 좋을거같아. 그렇게 마무리 하는데도 어떻게 이런 멘트를 치냐면서 놀라워하는 친구덕에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예전에 딱한번 내가 저렇게 문자를 보낸적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때가 언제였냐면 말이지....
이건 친구와의 에피소드보다도 몇년전의 일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 누나는 속칭 털털한 누나였다. 게임이나 당구처럼 남자들사이에 껴서 남자들하는거 같이하는거 좋아하고. 남자들한테 안지려고하고. 그리고 몸매좋은 누나. 보통 츄리닝 꾸미면 청바지입고 모임에서 나왔지만, 항상 몸매가 딱 드러나는걸 입는걸 좋아했고 체형도 글래머였다. 이거 관련해서 이야기해본적 있는데 자기는 좀 딱붙거나 노출이 좀 있는 옷을 입어야 날씬해보이지 안그럼 부해보인다고. 그런 누나를 형들도 좋아했다. 당연히 인기많았다. 누나는 남자들이랑 어울리는걸 편해하면서도, 형들 그러니깐 본인에게 오빠들을 불편해했다. 자꾸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서 불편하다나. 그래서 나랑 자주 다녔다. 만만하고 편해서.
그누나는 말끝마다 누나누나 거리면서 나를 누르려했고, 나는 때로는 눌리고 때로는 반항하는 만만한 연하남이었다. 만만하고 편하다는게 사실 생각보다는 좋은 포지션이다. 기회자체가 보장된다는거다. 기회가 성공한다는게 절대 아니고. 몇번 개드립치다가 실패해도 다음날 웃으면서 만날수 있을거다. 기회가 어느 횟수이상 보장되면 메이드 시킬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포지션. 털털한거 좋아하고 털털해보이고 싶어해서 드립치는거 좋아하고 드립에는 드립으로 맞서주는 누나라서 더더욱 실패해도 꾸준히 기회는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누나를 만났었는데 어디갔다왔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힘을 좀 주고 나왔었다. 당연히 나 만나려고 그런건 아니고. 나랑 회에 쏘주먹을건데 뭘 그렇게 그랬겠나. 아무튼 쏘주 한잔 먹으면서 누나한테 이쁘다고 칭찬했다. 편의상 지금부터 B누나라고 하자.
나 "누나 왤케 이쁘게 하고 왔어. B누나 시집가도 되겠네"
B "무슨 시집을 나 혼자가? 남자가 있어야지 가지!"
나 "모임에 형들 많잖아요. 누나 인기 많은거 같던데?"
B "아니야 무슨 인기는. 그리고 그 오빠들 갖다 붙히지마."
나 "응? 그래? 그럼 누나 나랑 사귈래? 난 오빠 아니잖아"
B "얜 또 모래니. 넌 가서 엄마젖이나 더 먹고와"
이 본문이 자료 용도로 쓰여진건 아니지만 이쯤에서 한마디 써보자면, 남녀관계가 아직 진행된건 아니고 진행되려는 남녀사이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넌 이런 단점때문에 우리는 안된다는 부정적인 말을 할때가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넌 나이가 어려서 안됨 이런 드립을 날린거다. 이런걸 흔히 이야기하는 shit test라고 한다. 그럴땐 신경쓰지말고 귓등으로 들으면된다. 귓등으로 치지 말고 유머로 받아치면 더 좋고. 그래서 드립으로 받아쳤다.
나 "엄~마~~~" (약간 귀척하면서)
B "너 미친거 아니야 ~~? 허 허.."(어처구니 없어하며)
이 누나 역시 개드립 욕심 많고 본인도 빠른 드립을 칠줄 아는 사람이라서 타인의 드립도 제대로 알아들었다.
나 "미쳤다고요? 엄마가 날 이렇게 낳은거잖아요"
여기서 어깨 한대 맞았다. 난 널 그렇게 낳은 적이 없다면서 어깨를 한방 치더라. 내 드립으로 본인드립 나온다는건 상대가 내 드립을 받았다는거라서 이미 나쁜 상황은 아니기에 한발 더 나가봤다.
나 "이것이 바로 사랑의 매인가요?"
B "그래 사랑의 매다!! "
나는 그날 사랑의 매를 충분히 맞았다. 사실 누나도 낳은적없다드립하으면서부턴 이미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 그러면서 치던데 손속은 매서웠다. 깐족대다가 많이 맞았다. 1절만 할껄. 이 누나 펀치 잘칠거같다. 키도 큰편이고 체형상 잘칠거같긴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 잘칠거같다. 내 비록 펀치기계도 아니고 동전을 넣으시지도 않으셨지만, 때리실땐 시원하게 맞아드렸다. 내가 깐족대서 치는거니깐 비명내는걸 더 좋아하실거같아서 엄살도 섞어서 리얼하게.
그 일이 있은후 며칠뒤였다. 그날도 누나랑 문자질하면서 놀고있는데, 서로 웃으면서 대화물꼬가 잘 터진거 같아서 승부수를 띄웠다. 물론 실패해도 없었던일로 다음에 길일을 골라 또 다른 승부수를 띄우면 된다. 기회가 보장된다는건 그런거니깐.
나 "누나 내 친구 C알지?"
B "그 븅신같은애?"
나 "걔 븅신인거 어떻게 알았대? 헐 이 누나 사람보는 안목이 있네. "
B "걔 니 친구잖아."
나 "오호라 그런거였어? 어디가서 누나랑 친하다고 자랑하고 다녀야겠네~"
B "모모씨?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그러세요?"
나 "안친한 누님 제가 할말이 있는데요."
B "말씀하세요 모모씨."
나 "그 친구가 소개팅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누나 생각이 나서 거절했어요."
B "왜 날?"
궁금해한다는것에서 일단 아주 나쁜신호는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도 된다.
나 "그러게. 누나같은 술고래를 왜? 나에게 묻고싶네 왜? 너 왜그랬어 말해봐!"
B "얘 또 모래니. 누나 술고래 아니거든? 이렇게 이쁜 술고래 봤어?"
나 "누나 나 알았어요. 이유가 그거였네. 누나가 내가 아는 술고래중에 제일 예뻐요."
B "크크크 너때매 내가 미친다 크크크"
나 "그래서 말인데 누나 할말있어요."
B "사귀자고만 하지말고 다 괜찮으니 시원하게 말 해봐."
나 "이 누나 또 앞서나가시네. 급하세요? 집에서 압박이 심해?"
B "또 또 기어오른다."
나 "누나때문에 소개팅 날렸으니깐 누나가 책임지고 데이트 한번 해줘요. 나랑."
B "내가 왜 니 소개팅 안한걸 책임져야해? 가서 해!"
나 "누나가 내가 아는 여자중에 가장 이쁜사람이야! 그러니깐 누나가 도의적으로 책임지는게 맞아!"
B "얘 또 아까는 술고래중에 제일 이쁘다더니 슬쩍 말 바꾸네?"
나 "저 술고래 말고 일반인중에 아는 사람 없어요."
B "뭐지 이 기분은? 예쁘다고 좋아해야하나 일반인이 아닌걸 기분나빠해야하나!"
아는 여자중 제일 이쁘다는데 그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물론 술고래도 받아들여야하겠지만.
나 "누나 나랑 데이트 한번 해요. 내가 누나가 좋아하는 족발 사줄께. 쏘주도 사준다."
B "크크크 족발집에서 무슨 테이트야 크크"
여기서 칠부능선은 넘었다고 생각했다. 반대의견이 '너랑 나랑 데이트를 왜해?'가 아니고 '족발집에서 무슨데이트야'라고 나왔기때문이다. 이렇게 나오면 이유만 바꿔주면 된다. 족발집 아니라 다른곳을 제시하면되지. 그게 아니어도 족발집도 괜찮은 이유를 포장해도된다. 스킨십을 했을때 "사람많은데서 왜이래?" 이런 거절이 7부능선을 넘은 경우랑 똑같다. 보통 다른곳을 제시하지만, 이번엔 여러가지 이유로 족발집을 밀어부쳤다. 그리고 이 누나 그집 족발 좋아하거든. 사실 둘이 족발먹으러 가자고 했으면 거의 오케이였을거다. 굳이 데이트란 이름을 붙히고 싶었던 나때문에 이런 실갱이가 벌어지는것뿐이라.
나 "누나 데이트는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한거에요. 누나가 있으면 족발집도 데이트죠~"
B "어쭈 입을 좀 놀리시는데요?"
나 "누나 데이트니깐 그날은 누나 컨셉알려드릴께요."
B "나 아직 나간다고도 안했다" (이것도 긍정적인 상황.)
나 "누나의 그날 컨셉은 그 족발집에서 가장 예쁜여자 컨셉으로 와요."
B "족발집에서 가장 예쁜여자라니 크크 어떤 컨셉인지 상상도 안된다."
나 "그냥 편하게 입고 오란 말이지. 어차피 여자 누나밖에 없을거야."
B "크크 내가 족발집에서 가장 예쁜 여자 컨셉이면 넌 무슨 컨셉이야? 족발집에서 가장 까부는 놈?"
나 "아니지 나는 당연히 족발집에서 가장 예쁜 여자의~"
B "의?????"
나 "아들이지. 엄마."
B "미친새퀴 크크크크크"
나 "누나 로망 이룬 여자네. 아들이랑 데이트하는거 모든 엄마들의 로망이다?"
B "뭐래.. 너같은 아들내미 둔적 없다니깐..크크.."
나 "물론 젊고 이쁜 엄마는 또 모든 아들들의 로망이에요. 엄마도 로망이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로망으로 포장된 데이트는 하기로 했다. 데이트 한번이야 사실 저렇게 안해도 어떻게든 했으리라. 실제로 당일날 누나는 역시나 딱붙는 청바지에 힐을 신고 약간 패인 티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실제로 그 족발집에 여자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이가는 여자였다. 술 기분좋게 먹고, 족발 맛있게 먹고 서로가 서로를 갈구면서 드립배틀을 하다가 술 적당히 취기오르니깐 뜬금없이 진짜냐고 묻더라. 그래서 진짜 누나때문에 소개팅 안했다고 했더니. 그거말고란다. 그거말고 내가 니 아는여자들중에 제일 예쁜게 진짜냐고 묻길래 "누나, 누나는 누나 생각보다 더 예쁘고 매력있는여자에요."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랬더니 베시시 웃으며 좋아하면서 본인때문에 소개팅안한건 진짜일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누나와의 데이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지금은 안쓸거같은 멘트인데 아니 쓸 상황자체가 없는 멘트 약간 귀여워보여야 잘 쓸수있는 멘트인데 그럴 상황 자체가 없어졌다. 여튼 지금은 안쓸거같은 멘트지만 나름 풋풋했던 시절 썼던 멘트라 그런지 정감이 가는 멘트였다. 추억이 담겨져있기도하고. 아주 좋은 녀석은 아닌건 알지만 뭔가 나에게는 특별한 느낌은 남아있는 멘트랄까. 친구의 모쏠구제를 해주고 가서 마지막까지 좋은일만 해주다 갔구나. 족발집에서 제일 예뻤던 여자는 요즘도 족발 좋아하려나? 누나랑 가던 족발집은 그때는 엄청 맛집이었고 연예인들도 가끔 봤었는데, 요즘은 맛이 변해서 안가요. 그리고 지나고 생각해보니 누나가 내가 누나라고 불러본 마지막 사람이네요. 누나.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6-22 11:02)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