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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09 20:33:30
Name lexicon
Subject [일반] ”돌아가라!“ (수정됨)
1.
- 위키백과 프랑스어판에 따르면, Carlos Martens Bilongo는 1991년 12월 31일 프랑스 빌리에-르-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사이자 환경운동가였고, 급진좌파 정당인 ‘반항하는 프랑스’의 일원입니다. 그는 프랑스 발 도아즈에서 올해 6월에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2022년 11월 3일, Bilongo는 대정부질문 세션에서 질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질문한, 혹은 질문하려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와 몰타는 난민구조선의 취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이민자들은 신분과 국적에 의해 구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하려 합니까?‘
- 그러나 질문 도중 그는 말을 멈추고 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그를 멈춰세운 것은 RN, 그러니까 국민연합의 Grégoire de Fournas 의원이 외친 소리였습니다. «Qu’il retourne en Afrique!» 그를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라!



- 당시의 속기록은 프랑스 국회 홈페이지에 남아있습니다[1]. 여당과 제1야당의 많은 의원들은 그 발언에 대해 즉각 ‘인종차별주의자’라 정의했으며, 단체로 “나가라!”를 외쳤습니다. 의장은 세션을 중단했으며, 재개 후 다음 열리는 회의의 안건으로 Fournas 의원의 징계를 상정하기로 결의했습니다. 11월 5일 뉴스에 따르면 해당 의원은 15일간의 국회 출입 금지와 임금의 절반 삭감이라는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2]. 이는 프랑스 하원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징계 수위입니다.

2.
- 그런데 이 발언이 불과 이틀이란 짧은 시간만에 즉각적인 비토와 징계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 하원의 의석 분포 때문입니다. 프랑스 하원 구성원은 577석이고, 그 중 여당연합인 'Ensemble!’은 절반이 채 안되는 250석입니다(대통령 에마뉴엘 마크롱의 정당인 Renaissance는 153석입니다). 제1야당연합인 NUPES(신환경사회인민연합)은 151석이고, 그 중 Bilongo가 속한 ‘반항하는 프랑스’는 69석입니다.
- 그리고, ‘아직은’ 제2여당인 국민연합은 89석입니다.
- Fournas 의원이 내놓은 해명은 이렇습니다: “나는 그 말을 한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인종차별을 말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난민구조선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말한 것 뿐이다. 과대해석할 필요 없다.”
- 사실 녹취록을 보면, Fournas 의원은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라고 말하기 직전에 ‘그들(난민)은 밀수꾼들이다!’이라고 외치긴 했으니, 아예 ‘거짓말은 하지 않은’ 것이긴 합니다.
- 국민연합의 대표인 마린 르펜은 “우리의 정치적 적들이 꾸며낸 조잡한 논쟁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속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 당연히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으며(으레 그렇듯이 유감을 표하기는 했지만), 징계가 이루어진 지금에도 크게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3.
- 저는 이 사건이, (비단 프랑스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극우 세력이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대중들에게 감염시켜가는지의 형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그들이 말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1) 그들은 현재 우리의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상식으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떤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습니다. 혹은 누군가는 내뱉고 싶어하지만, 현재의 도덕과 암묵적인 사회의 약속에 따라 내뱉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많은 경우 타인이나 타인의 생각에 대한 혐오를 담은 극단적인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습니다.
2)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사소한 내용에 천착하지 말고 그 메세지를 보라’라고 훈계합니다. 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 발언’도 용납할 수 없어하는 너희들이 잘못된 것이야, 하고 타박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원하는 것은 메세지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사소함’에 있음에도 말입니다.
3) 그들이 강한 반발로 코너에 몰리면, 자신들을 ‘도전받는 강자’로 포지셔닝하여 반대쪽을 도리어 비난합니다. 자신들이 틀렸다는 인상을 절대 주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4)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1)~3)를 집요하게 반복합니다.

-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그들의 말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란 흥미에서 ‘일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로 동화되게 됩니다.
- 예컨대 프랑스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은 2017년 하원 선거에서 불과 8석밖에 차지하지 못했지만, 5년 뒤인 2022년에는 89곳에서 승리했습니다(물론 지방선거나 대선에서는 그 징후가 보이긴 했습니다). 이번 Bilongo 사건은 무시할 수 없는 사이즈로 커진 국민연합에 대한 국회의 첫 교전이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더 자주 일어나게 될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반전이 없다면 국민연합을 대항해 그은 전선은 결국 뚫리게 될 것입니다. 마린 르펜은 결국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이것은 그저 극우의 사고방식이 프랑스 사회에 ‘당연한‘ 무언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는 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 혹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킨 그 누군가가 2021년 1월 6일 그 실체를 드러냈을 때, 그러나 모두가 더 이상 이 날을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우리는 어떤 한 변곡점을 넘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다행히 트럼프를 배후에 두고 벌어졌던 2022년 중간선거는, 조지 부시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마크 티센에 따르면 “명백히 공화당에게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3]).

3.
- Bilongo 의원은 11월 4일에 이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4]. 조금 길지만, 그러나…


> “내 이름은 카를로스 마르텐 비롱고입니다. 나는 프랑스 빌리레 흐 벨에 1990년 태어났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자랐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2022년 6월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 전에 나는 선생이었고 활동가였습니다. 이번 목요일, 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게 질문하는 것 말입니다. 국회에서 매주 통상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내 질문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연합의 일원이 내 질문을 가로막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나는 의회에서 이 문장을 듣게 될 것이란 상상을 꿈에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언제나 우리를 노립니다. 심지어 공화국에서 가장 고결한 장소에서도 말입니다.

나는 국민연합의 모든 의원들이 그 모욕적인 발언을 한 사람 뒤에 서서 지지했음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들은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지중해를 떠도는 난민 구조선을 이야기하는 하원의원에게, “그를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라!“라고 외치는 것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습니까? 이런 문장이 용납될 정도로 인종차별은 흔한 것이 되었습니까?

NUPES와 LR에 이르는 모든 의원들은 그들이 동일한 문장을 들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LR의 대표는 국민연합의 바로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진실은 곧 드러날 것입니다.

이 혐오스러운 행동은 그들 국민연합이 여전히 프랑스 시민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내어 주었습니다. 만약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한 하원의원에게, 국회의사당 한가운데에서 거리낌없이 침을 뱉을 수 있다면, 그들이 더 큰 세력을 얻었을 때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게 될 것입니까?

이 사건은 우리에게, 프랑스에서 극우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규칙에 대한 경멸. 수백만에 달하는 다른 프랑스인에 대한 증오. 나는 정중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의원은 더 이상 의회에서 일해서는 안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인종차별이란 독에 연대하여 싸워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날 목요일, 나는 국회에 지역구 아이들을 초대했습니다. 자부심을 갖고, 나의 대정부질문에 참석하도록 부른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나는 피부색으로 나를 정당화하지 않고 나의 맡겨진 책임을 계속 다할 것입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이 나라를 좀먹어가는 인종차별이 없어진, 그런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

- … 그러나 이 모범적이지만 긴 성명서를 굳이 번역해 본 이유는, 한 문장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잘못된 것이라 선언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글자가 필요함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 이는 비단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혐오와 극단주의(여기에서는 그 목록을 나열하지 않을 것입니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비정상으로 향하는 무언가를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은 이토록 힘이 드는 일입니다.

4.
- 물론,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11월 8일 기사에 따르면 Bilongo 의원 및 ‘반항하는 프랑스’ 정당은 100통 이상의 인종차별과 살해 협박 편지를 받았으며, 이들과 이를 조장한 일부 언론에 (이미 법제화가 되어 있는 인종차별 모욕 금지법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5].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요?

[1] https://www.assemblee-nationale.fr/dyn/16/comptes-rendus/seance/session-ordinaire-de-2022-2023/seance-du-jeudi-03-novembre-2022
[2]
[3] “… 조 바이든은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입니다. … (그러나) 이번 결과는 공화당에 대한 미국인의 단죄입니다. 그들은 민주당의 그 꼴을 보고서도, 공화당이란 대안을 거절한 것입니다. … 공화당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4]
[5] https://www.rtl.fr/actu/politique/le-depute-lfi-carlos-martens-bilongo-va-porter-plainte-apres-des-menaces-et-des-insultes-racistes-790020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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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20: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프랑스의 난민 문제랑 한국의 다문화 이야기랑은 1:1로 대응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도 다문화 정책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다문화는 개뿔 우리나라 문화 적응도 못하는 놈들 돌아가라 이런 식으로 소리친 사람 나왔으면 인터넷에서는 빨아줄 사람들 수두룩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슬람으로 특정지으면 교계까지 포함해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을테고요.
No.99 AaronJudge
22/11/09 22:19
수정 아이콘
펨코 포텐에는 진짜 수두룩빽빽이더라구요
제가 괜히 엄한 곳을 들어간 걸까요…
22/11/09 22:53
수정 아이콘
(수정됨) 펨코 뿐만 아니라 디시, 더쿠, 여시 등 성별과 지지 정당을 불문하고 10~20대가 주류인 사이트는 대동소이 합니다. 그 외의 사이트들도 영향은 받고 있고요. 피지알도 물론이며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런 사이트들에서 나오는 조선족, 다문화, 이슬람 등에 대한 포비아가 과한가? 하고 물으면 1초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하는 말에 하나도 동의 안하나? 라고 하면 멈칫할 것 같거든요...
NSpire CX II
22/11/09 23:01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NbyBjualT0A

얼마 전 미국 공화당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민주당 지지 지역에 보내버렸죠.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쉬이 반박하기 힘들더군요.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너희들조차 직접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심 꺼리면서, 너희가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
Regentag
22/11/10 12:59
수정 아이콘
이민자나 체류자가 자국의 문화를 버리고 한국 문화에 동화되라고 요구하는건 무리일 수 있겠으나,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법과 질서를 따르라는 요구 정도는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불법이민, 불법체류자는 당연히 안 될 일이고요.

하지만 이 문제엔 인종이나 민족(종족이라고 하는게 나을까요?)을 결부시키는 것 역시 안 될 일입니다. 인종이 다르다고 “돌아가라”라고 하는건 인종차별로 규탄받아 마땅하죠.
사브리자나
22/11/09 20: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눈앞에 난민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건 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의원인데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라니요
막말과 혐오발언을 내뱉고는 [‘사소한 내용에 천착하지 말고 그 메세지를 보라’]라고 말하는 게 징그럽네요.
마치 어느 사이트를 보는 것 같은데 그게 메이저한 곳에서도 갈수록 늘어나네요.
앙겔루스 노부스
22/11/10 00:33
수정 아이콘
우파의 퇴행이 심각한 건 특정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전 세계적 현상일 듯
-안군-
22/11/10 02:05
수정 아이콘
이런걸 보면 우리가 정치선진국이라며 선망하는 나라들이라 해서 특별히 정치 수준이 엄청나게 높거나 하는 것도 아닌것 같긴 합니다.
그냥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대충 선진국 평균 정도 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지뭐
22/11/10 07:22
수정 아이콘
인구 6700만으로 우리 나라보다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의석 수가 577석이라는게 눈에 들어오네요.
22/11/10 08:25
수정 아이콘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난민이나 불체자의 좋지 못한 면을 언급하면 가짜뉴스나 혐오로 덮어씌우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습니다. Pgr에서도 꽤 봤죠.

물론 불체나 난민에 대한 가짜뉴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체나 난민에 '불리한' 가짜뉴스도 많습니다만, 불체나 난민 '옹호하려는' 가짜뉴스도 그만큼 많다는 거죠. 예컨대 단속된 뒤 심근경색으로 죽은 사람을 단속반의 폭행으로 죽었다고 한다던가(제 동기형이 당한 일입니다), 단속 피해서 건물 밖의 아시바 잡고 내려가다가 자기 혼자 떨어져 죽은 사람을, 단속반이 발을 잡아서 거꾸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던가.
22/11/10 08:28
수정 아이콘
특정 정치적 견해에 맞지 않으면 가짜뉴스로 몰게 아닙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당하는 불이익, 이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공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 모두를 있는 그대로 보고 토론해야 합니다.
22/11/10 08:51
수정 아이콘
과거에는 외국인이 일으킨 범죄를 마치 한국인의 범죄인양 보도한 모양입니다. 제가 사건 관련기록을 보다 보면 언론에서는 국적 언급없이 (예컨대)박모씨가 범인이라는 식으로 보도되었던 사건이, 사실 범인이 외국인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오원춘 이후로는 그런 걸 못 봤습니다. 관행이 바뀐 건지, 제가 못 보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쪽은 이제 괜찮은가보다 합니다만, 문제는 난민입니다.

난민신청자들이 사고 무지하게 칩니다. 그런데 이들이 친 사고는 언론에 나가지 않거나, 나가도 난민신청자란 말은 빠지고 나갈 때가 많습니다. 과거 난민불인정에 불만을 품고 아무 상관없는 노부부에 칼부림한 건처럼 범행동기에 난민이 들어가버리는 건이 아니면, 거의 난민이란 소리는 안 나가더군요.
개인적으로 난민 및 난민신청자들의 범죄기록을 개인정보 비식별조치하고 백서로 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보시면 여기 계신 분의 99.9%는 제 얘기에 공감하실 겁니다.
22/11/10 13:31
수정 아이콘
댓글주신 내용대로, 사례 중심의 접근법을 통해 사회가 어떤 사안의 찬반을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극히 일부의 사례를 침소봉대할 수도 있고, 자신한테 유리한 내용을 취사선택할 수도 있으며, 근본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노동자를 다루던 보수 언론이 그랬고, 현재 젠더나 난민 문제를 다루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그렇죠.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손쉽게 ‘개인화’할 수 있는 정보화사회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예컨대 1945년 이후 서방의 지식인들이 고민한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분명 인류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히틀러나 나치가 잘한 것들(혹은 나에게 유익한 것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례를 근거로 ‘히틀러는 예외적 실패이고, 나치즘은 사회에 유익하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어떤 사례가 등장하든 나치가 사회에서 왜 (추종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거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과 규범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20세기 후반은 이를 쌓아올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넓게 보면 우리가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토론하는 주제들, 예를 들어 난민은 허용되어야 하는가 내지는 젠더를 평등하게 취급해야 하는가 등의 토론에 임하는 자세도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떠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이러한 가치가 옳다고 생각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a) 난민이 저지르는 범죄 때문에 (b) 나는 난민을 받아들이기를 반대한다’란 문장에서 (a)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문구를 뒤집어서 ‘(a) 난민이 보여주는 선행에도 불구하고 (b) 나는 난민을 받아들이기를 반대한다’라고 바꿔써보면 어떨까요? (a)를 어떻게 쓰더라도 (b)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a)를 굳이 앞에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b)만 말하는 것이 맞죠. “난 난민이 혐오스럽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겠죠. 본문에 썼듯 극우세력이 저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이유와 상통할 것입니다.
22/11/10 18:19
수정 아이콘
사례 중심의 접근에 말씀하신 문제도 있죠.
그러나 사례를 빼고 토론하면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비현실적인 논의가 오가더군요. 말씀하신 난민 건도 그래요. 사례를 모르는 분들 토론을 가만히 지켜보면, 실제 난민은 본 적도 없는 분들이 자신이 상상하는 것만 가지고 얘기하게 되더군요.
결국 사례를 얼마나 더 제대로 파악가가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사례 나쁜 사례 다 봐야죠. 마음에 안든다고 혐오니 가짜뉴스니 하지말고.
22/11/10 17:58
수정 아이콘
극우는 대단하다니까요
12년째도피중
22/11/11 13:27
수정 아이콘
이제 한국기준으로 극우 아닙니다. 명실상부한 '대안우파'. 접점이 없을 때나 극우죠. 접점이 많아진 10대, 20대 친구들만 봐도 외국인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다원화된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기묘한 생각이 듭니다. 회색지대는 외국인들과 접촉이 아예 없거나 괜찮은 경험이 강한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요.
진짜 '서민정당'이 나오긴 할텐데 그게 언제일지 불안하면서도 궁금합니다. 저 사건은....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죠. 속시원하다는 사람 많을겁니다. 서구 문화권의 PC에 대한 집착이나 발작도 사실 이러한 '현실'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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