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면서
저는 혼자 살고 있는 싱글남성입니다. 시켜먹기도 자주 시켜먹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머지포인트를 이용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좀 꺼림칙하긴 했었거든요. 흔한 폰지사기 내지 다단계 금융사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제 불안감이 손해를 막아주기는 했었습니다만, 참 씁쓸한 일이긴 하더군요.
이미 운영자들은 형사입건되어서 조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표는 출국금지 상태라고 하고요.
그런데 저야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이 사태를 접했습니다만,
단톡방의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손해를 본 사람들이 꽤나, 제법 많이 제 주변에도 있더라고요.
물론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들 만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경솔한 접근입니다.
떡밥(?) 자체도 이미 식은 상태일 듯 하고요.
그런데 오늘 이 뉴스를 보면서 말이죠. 몇 자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907051200030?section=search
#1.
위 기사의 내용인 즉, 위메프 역시 11번가에 이어 머지포인트 환불을 결정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법적으로는, 위메프나 11번가가 향후의 신용도나 고객의 유치를 위하여 과감하게 지른건가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기사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미 등록을 마치고 사용한 머지포인트도 잔액의 80%(사실상 구매금액 상당의) 환불을 해 주겠다는 거거든요. 물론 반전은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전의 11번가도 그렇고, 오늘 위메프도 그렇고... 8월에 구매한 머지포인트에 한하여 구매금액 상당의 환불을 해 주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건 고객의 8월 구매대금이 아직 11번가나 위메프에게 남아 있고, 아직 머지포인트에 정산을 해 주진 않았을 것이거든요.
즉 고객의 구매대금이 아직 자사에게 있으니, 환불을 요구하는 자사플랫폼 소비자들에게는 반환할 능력 자체는 충분히 있기는 한 것입니다. 이들 업체도 이미 머지포인트에 정산금이 넘어가버렸을 7월 이전 등록된 머지포인트는 반환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 겁니다. 업체마다의 정산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오픈마켓 업체의 경우 7월 정산금은 머지포인트 측에 갔을 확률이 꽤 될 겁니다.
물론 머지포인트 쪽에서 8월분 정산금 청구소송이 이들 업체에 들어올 수도 있겠죠. 저야 각 개별 오픈마켓 업체와 머지포인트 사이의 계약서를 본 적이 없고, 실제 계약관계도 어떠한지 알 수 없으므로 소송 자체가 어떻게 될진 모릅니다. 그런데 위메프나 11번가는 설령 소송이 들어오더라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십중팔구 자사 측에 유리한 면책약정, 다시 말해 정산금을 머지포인트 쪽에 감액하여 지급하거나, 혹은 지급하지 않을 수 있을 규정이 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혹은, 정말 이런 면책약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마케팅 비용 들인 셈 치고, 나중에 소송에 져서 줄 때 주게 되더라도 이런 대응이 이익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을 듯 합니다. 실제로 이런 비용(?) 자체가 클 대규모 업체들은 반응이 신중하지요. 아마 이들도 11번가가 필두를 딛고, 위메프가 뒤를 따른 환불정책을 따를지 말지를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신용이라는 것이 참 쌓기는 어렵고 무너뜨리기는 쉬운데.. 이번 기회에 위메프나 11번가처럼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얻는 선택을 하자니, 그 기회비용이 크니 말이죠.
#2. 머지포인트 측의 투자자 내지 채권자의 입장에서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머지포인트라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투자자라든가... 머지포인트 측으로부터 정산금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 - 예를 들어 머지포인트에 가입한 요식업 프랜차이즈 업체 -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머지포인트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있겠죠. 요식업 업체라면 머지포인트를 통하여 판매된 물건들의 대금을 정산받아야 할 텐데... 머지포인트는 고객들의 뱅크 런(?)도 있고... 오픈마켓들이 정산금을 주지 않아서 지급능력이 없다고 나자빠져 버리면, 머지포인트로부터 대금을 떼이게 되겠죠.
어라? 그런데 몇몇 오픈마켓들이 고객들에게 환불해버려서 머지포인트 측에 지급할 정산금이 없다고 합니다.
이걸 법돌이식으로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요. 근저당권 같은 권리가 있으면
[물권자]라고 해서 특별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돈을 받아낼 권리가 있는데요. 그런 권리가 없는
[일반 채권자]의 경우에는
[채권자 평등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다시 말해서... 머지포인트 입장에서 볼 때,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도 채권자겠지만 이런 프랜차이즈 업체도 채권자거든요. 대개 이런 경우엔 머지포인트가 파산, 청산 절차를 밟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구요.) 그 때, 다른 곳으로부터 받을 돈은 일단 다 받아낸 다음에, 채권자들이 자신이 받아야 할 채권 상당액을 법원에 신고한 다음, 남아있는 돈에서 빚잔치 하듯이 각자 채권 비율에 따라 정산을 하는 게(
[배당]이라고 합니다.)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머지포인트 업체에 1억원이 남아 있는데, 채권자들의 채권금액을 모두 합해보니 1000억원이라면? 채권자들 모두 자기 채권의 1/1000밖에 못 받는 게 원칙인 것이죠. 배당절차를 거친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 오픈마켓들은... 법적으로는 그 머지포인트 측이
[받을 수 있었던 돈(정산금)]을 머지포인트의 일부 채권자(머지포인트 이용고객)들에게 반환해 준 게 됩니다. 즉, 제3채무자 A오픈마켓이 채무자 머지포인트를 건너뛰고서는, 머지포인트의 채권자(고객)에게 직접 지급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는 겁니다.(물론 원칙적으로는 A오픈마켓과 A오픈마켓을 이용하여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고객 사이에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선행하는 것이라고 봐야 겠습니다만.)
그러면 그 피해는 누가 보느냐. 머지포인트의 투자자 내지는 머지포인트로부터 정산대금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들이 보게 됩니다. 자신의 투자금이나 자신의 판매대금을 머지포인트로부터 정산받아야 하는데... 배당절차를 거쳐 분배를 받는다 해도 모자랄 판에, 나눠먹을 파이가 줄어든 것이니 말이죠. 그나마 대형 프랜차이즈 같으면 여력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반 영세상인이라면 어떨까요. 정상적인 거래관계라면 천만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배당절차를 거치니 1만원이 될 판에서... 전체 배당금의 파이가 또 다시 줄어든 겁니다.
#3.
물론... 실제로 영세상인 같은 경우.. 위와 같은 오픈마켓들의 환불이 이루어진 탓에, 머지포인트가 정산금 일부를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환불로 인한 실 피해금액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머지포인트 쪽은 파산은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실제 절차를 거쳐 배당이 이루어지려면 한참(최소 수년 단위) 걸릴 겁니다. (운도 머리도 나쁜 투자자를 하나 물어서 머지포인트가 기적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 한 말이죠.) 더불어 그 채권자 평등의 원칙 때문에. 배당절차를 거쳐 1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대형 채권자(기업투자자)라든가, 대형 프랜차이즈라든가,그 외 다른 영세 요식업자들의 채권 틈바구니에서.... 한 영세 요식업자 오봉씨가 받을 돈은 정말 푼돈일 가능성이 높겠죠.
비유를 하자면, 머지포인트로 천만원어치 팔았는데 정산 못 받고 있다가, 배당을 거쳐 만원 받을 거였는데... 그게 다시 5천원으로 줄어든 걸 받게 되었는데 화낼 힘도 없다... 싶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위메프나 11번가는 여기까지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할 겁니다. 즉,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고객들로부터 신용을 쌓아 단골 고객을 늘려야 하는 오픈마켓 입장에서는, 고객들에게 환불한 이후에도 또 다시 정산금을 머지포인트(혹은 그 채권자 내지 투자자들) 측에 다시 주게 되더라도 신용을 쌓고 홍보하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계약서를 잘 써두었다면 아예 정산금을 머지 쪽에 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죠.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러한 11번가, 위메프의 판단이 오히려 더 스마트 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사족 : 제가 머지포인트 이용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실제 피해자 분들께 무신경하게,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를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