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던 갠지스 강을 떠나서 과연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게 됐는데, 불현듯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인도 여행 초기 델리 빠하르간지(여행자거리)의 한인식당에서 결제를 해둔 유심을 받는 날. 나는 재수도 참 없던지 개통했던 유심이 불량이었다. 욕쟁이 누님과 몇 시간 뒤에 올드 델리역으로 넘어가 자이살메르행 기차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유심 없이는 인도 여행은 사실 엄두가 안났다.
그러던 중, 한 부녀지간이 한국으로 가기 전 식당에 들어왔다. 딱한 사정을 들었는지 아버님이 1기가 남은 유심을 선뜻 주셨다. 인도에선 유심기간 동안 데이터 충전이 가능하다. 훗날에 인도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 나처럼 똥손으로 유심 불량인 여행자에게 3기가 남은 내가 쓰던 유심을 건내줬다. 좋은 건 배워서 나쁠 것이 없다.
유심을 받고 마음도 편안해졌고 부녀지간의 인도 여행 계기를 들어보니 아버님은 마진이 남지 않아서 자영업을 정리했고 딸은 수능을 마친 상황이었는데 와이프의 허락을 받고 학교에 찾아가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딸과 함께 인도여행을 함께 온 것이 발단이었다. 놀라운 것은 두 사람 모두 해외여행이 처음이었고 딸이 대학생이 되기 전에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오히려 인도 여행이 평생의 꿈이었다던 아버님은 물갈이와 사기꾼으로 고생을 하고 적응을 잘 못할줄 알았다던 딸은 밥도 잘먹고 적응을 잘했다고 기특해하셨다. '넌 어딜가도 여행을 잘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물어보니 바라나시 역(갠지스 강)에서 기차를 타면 가야 역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에 석가모니 보리수 나무가 있던 곳에 큰 사원이 있다고 거기가 조용하고 참 좋았다고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이 생각나 성탄절 이브에 그것도 우리 집은 교회를 다니는데 불교 성지순례로 유명한 가야 역의 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했다.
바라나시 역에 도착을 하니, 일본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는데, '설마, 그쪽 취향인가?' 싶어서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니 폰으로 열심히 타자를 치더니, '나는 중국인이다.'라는 근엄한 번역 어플이 보였다.
영어를 듣는 건 얼추 잘하는데 말하기는 살짝 어설픈 중국형님이었다. 자기도 지금 불교 사원을 보러 간다면서 같이 숙소를 잡자는 것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나도 낯선 사람과 룸 쉐어는 꺼려했을 텐데, 마땅히 잡아둔 숙소도 없었고 이 사람은 믿음이 갔다.
"그러면 가야 역 앞에서 만나요."
바라나시 역에서 가야 역까지 기차로 약 5시간이 걸리는데, 기차가 들어오기 전,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기차 들어오기 전 갑자기 플랫폼 번호가 다 바뀌었다. 역시 인크레더블 인디아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다행히도 우린 불교사원에서 지낸다던 외국인 친구가 알려줘서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가야 역에 내려서 중국 형님과 릭샤를 타고 부다가야 마을로 넘어왔다. 여기는 정말 한적한 시골이었다. 길거리는 온통 캄캄했다. 일단 보이는 숙소마다 찾아갔는데 시설이 좋지 않았다. 운좋게 침대 2개 딸린 지금 공사가 덜 끝난 숙소에서 가격 흥정을 하고 여기에 묵게 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다가야라는 마을은 전 세계 불교사원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원에서 기부 또는 소액의 돈을 지불하고 숙식이 가능한 곳이 있었다.
부다가야에 지내면서 좋았던 점은 티베트, 네팔 식당이 꽤 있었는데 티베트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야크 치즈가 들어간 만두부터 닭국수도 맛있었고 가격또한 저렴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가 도대체 어디 있을까?'라며 궁금했는데 성탄절에 교회는 안가고 불교 성지순례로 꼽힌다는 마하보디 사원에 왔다.
새벽부터 오체투지로 절을 하는 세계 여러 수행자들을 보았다. 사원 주변으로 텐트를 치고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많았고 특히 대한항공에서 봤던 한국 스님들도 이 곳에서 자리를 잡고 묵언수행 중이었다. 옷 색깔이 회색이라서 금방 눈에 띄었다.
마하보디 사원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에 불교 신자였던 아소카 대왕이 이곳을 불교 성지로 여겨 절을 짓게 된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 사원 주변으로는 티베트 불교나 네팔 히말라야에서 볼 수 있는 마니차가 있었다. 사원 주변을 돌면서 나도 마니차를 돌려가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불교신자와 수행자들을 바라보았다. 성탄절인데도 사원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사원 안에는 부처님의 이빨, 머리카락이 있었는데 과연 저걸 믿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인도라서 더 믿음이 안갔다. 이 사원은 유네스코로 지정 된 곳이라서 그런지 정말 깨끗했다.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로.
마하보디 사원 바로 뒤에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있는데 잎을 뜯지말라는 경고장이 있었다. 불교신자들은 나무 밑에 앉아서 잎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불교신자라도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긴 하겠다.
부다가야의 일정은 되게 단순했다. 끼니마다 티베트,네팔 식당에서 해결을 했고 중국 형님과 여기저기 사원을 돌아다녔다. 일본,티베트,네팔,중국,태국 등. 이 마을 자체는 다양한 사원이 모인 곳으로 아무래도 성지순례지라서 길거리가 굉장히 깨끗했다.
중국 형님과 우연히 불교 물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인도 염주가 중국보다 품질이 좋다고 염주 20개를 한꺼번에 집어들면서 이 가게 염주를 다 보여달라고 했다.
염주 1개당 1000루피가 넘었다. 분명 나한테는 본인 직업이 택시기사라고 했는데 1000루피가 수십장 들어있는 지갑을 꺼내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할 염주를 꼼꼼히 보고 있었다.
'이 형님, 택시기사는 구라고 중국 부자 아니야? 중국인은 해외여행가기 쉽지 않다고 중국인 동생이 그러던데.'
형님과 매일 2회 정도 마하보디에 갔는데 그날은 중국여자 관광객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그날 형님이 그렇게 말도 잘하고 잘 웃는지 처음 알았다. 그날 오후 형님은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국 여자분들과 택시투어에 다녀온다고 어찌나 싱글벙글이던지.
며칠간 이 마을에 지내면서 한국인이라곤 스님밖에 못봤으니 내심 부럽기도 하고 이제 인도여행 마지막 1주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인도여행도 할 건 다 했으니 집에 정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탔던 델리행 직항 대한항공 왕복 비행기 티켓이 50만원대로 굉장히 저렴했는데 혹시나 날짜 변경을 하면 싸지 않을 까해서 검색을 해보니 30만원을 더 내야했다. '응. 아까워서라도 못가겠다.' 인도 비자, 비행기 티켓과 인도 한달경비 예산을 넉넉히 잡아 150만원이였기에 추가 비용이 아까웠다.
남인도 쪽을 다녀온 사람들은 고아, 함피를 추천하던데 여기선 너무 멀고 북인도 쪽을 다녀온 사람들은 맥그로간즈를 추천하던데 거기도 너무 멀었다.
델리와 버스 8시간 정도로 인도치고 그리 멀지 않지만 여기서 살짝 고생하면 갈 수 있는 요가 마을로 유명한 리시케시에 가보기로 했다. 이젠 버스 8시간 정도는 길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거기는 요가도 유명한데 힌두교 성지라고 하니 한번 가보고 싶었다.
형님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SNS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럴때는 페이스북이 참 유용하다. 형님과 우연히 기차역에 만나서 룸 쉐어도하고 같이 며칠간 지내면서 정이 들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건강하시라고 중국어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보여드렸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주시라는 말과 함께.
# 인도여행기를 마치며.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시케시 여행은 딱히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 이 글을 끝으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뭔가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정말 실망할 수 있고 최악을 생각하고 가면 나름 재미있을 수도 있는 곳이였어요. 쉽게 말해서 호불호가 굉장히 심한 곳이에요.
여행 중에는 정말 별일이 다있어서 인도는 절대 다시 안온다고 그리 말했는데 막상 다녀오니깐 기억에 많이 남고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참 아이러니하네요.
아무래도 1달 먹고 놀고 자는 경비가 정말 넉넉하게 잡아서 100만원 미만이고(하루 2.5~3만원이면 넉넉합니다.) 대한항공 직항이 생기면서 비수기 티켓도 50만원대로 굉장히 저렴합니다. 겨울에 인도 여행가기 참 좋아요. 그리 덥지 않고 그렇다고 엄청 춥지도 않았어요. 모기나 벌레도 적어서 좋았구요.
음식도 한국인과 잘맞고 유럽 못지않게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이에요. 동네에 있는 사원이 몇백년에서 몇세기에 만든 건물들조차 방치된 곳이 엄청 많을 정도에요.
대신 너무나 더럽고 사기꾼도 많고 기차지연은 항상 있는 곳이라서 지치기도 했습니다. 기분이 좋았다가 안좋았다를 계속 반복했어요. 더러운 건 2주 정도 고생하면 좀 적응이 되긴 했어요.
다녔던 여행 중 한국인들이 가장 똘똘 뭉친 여행지라 그런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해도 나름 유명한 곳에는 동행을 구하기 쉬우니 혼자 간다고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거같아요. 마음만 조금 열어둔다면 금방 친해집니다. 같은 여행지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기차칸에 타고 델리만 벗어나면 좀 여행하기 수월해져요. 물론 위험한 곳에는 안가는 것이 좋아요.
인도라서 그런지 한국 여행자치고 예쁜 옷 입고다니는 사람을 못봤어요. 다들 집에서 후리하게 입는 옷들로 준비해서 오는 그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만큼 누구에게 신경안쓰고 마음 편히 올 수 있는 곳이고 온갖 사기와 쇼크를 먹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던 곳입니다.
여튼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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