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기무사와 평생 대면할일은 없다고 봐도 될겁니다만
최근의 기무사 관련 사회적 이슈들이 어렴풋하게 잊혀져가던 옛 기억들을 되살리기에.. 적어 봅니다.
1.
입대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때였다. 동기들이 300명 남짓? 되었는데 연병장에 모이라고 한다.
모자를 눌러쓴 한 사람은 상사 계급장이 보이지 않았다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머리가 길었다.
반공 교육을 하러 왔다고 자기 소개를 했다.
그 시점에서 동기 중 하나가 웃었나 보다. 상사는 얼굴이 굳어 지면서 한명을 지목해서 나오라고 했다.
쭈뼛 걸어나간 내 동기는 처참할 정도로 맞기 시작했다.
쪼인트가 까였고 정강이를 맞아 숙여진 상체를 내리 깔기 시작하자 넘어진 동기에게
군화발로 짓이기기 시작했는데 밣히고 차이고를 계속 하도록 아무도 그 때의 상황에서 항의 하지 못했고 동기는 계속 두들겨 맞았다.
처음에는 우리 선배인줄 알았다. 어..어.. 어..? 하던 하사관 후보생들 300여명..
만일 누군가가 "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한마디만 했었어도 우리는 우루루 달려나가서 ......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단체로 겁장이가 되었던것처럼 부끄러운 기억이다.
나중에서야 우리와는 루트가 다른 녀석인걸 알고 이를 갈게 되었지만...
2.
두번째 이야기는 배경이야기가 필요로 하는데
우선, 특전사에 지원했던 모병 23기 이야기 부터 해야겠다.
그 때 즈음 노태우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였고 청와대의 경호는 군부대에서 차출되어져 쓰였다.
그 부대를 27부대라고 했었다. 보통 육군 3579부대, 7788부대 뭐 이런식의 네이밍이다.
0027부대 - 청와대 경호부대였었다.
함께 입대한 동기들 중에서 덩치가 좀 크고 , 무술경력란에 몇가지 끄적여 놨던애들은 모조리 불려가서 따로 교육을 받았다.
내가 직접 본 한가지 케이스는
밥먹고 나오는 동기녀석을 기둥뒤에 숨어있던 평가관이 야구방망이를 눈앞까지 휘둘러서
눈을 깜빡 이거나 물러서는 자세 등에 따라 감점을 매기고 있었다.
그렇게 감점이 많아 탈락해서 곁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우리들은 '돌아온 27' 이라고 불렀다.
뭐.. 굉장한 동아줄 잡을 뻔? 했던걸 놀리는 거였는데...
그렇게 모두들 교육을 마치고 각자 자대에 배치 받았는데 경호실로 차출 되어져 갔던 동기 한명이 6개월후 우리부대로 전출 왔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경호부대는 권총을 사용하는데 모두들 칵킹(방아쇠 당기기) 연습을 한다.
그런데 22기 선배가 내 동기의 얼굴을 향해 칵킹연습을 하다가 안에 장전되어 있던 권총탄이 발사가 되었다.
동기는 치아를 다 드러 내고 얼굴을 모두 성형해야 했고 기무사에서 조사를 왔다.
청와대 경호팀 선임하사님 : ... 가라! ..
기무사 조사관 : .. 네..
대략 저런 대화가 오고갔다고 한다. 그래도 경호실의 모 상사분이 대통령께 어제 청와대에서 울린 총성에 대해 보고를 해야 했다.
해가 바뀌어 93년이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다른 이유로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청와대에 군인이 있는거냐고!
이 사건으로 대통령에게 평소 눈도장이 찍힌 경호원은 다 자대로 방출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경호원들이 그날 다 제대하고 다음날 다시 출근했다고 한다.
그렇게 금성무를 닮았었던 얼굴이 성형으로 변한 내 동기는 다시 돌아온 27 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거친 환경, 상대방의 감정 같은거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청와대 경호실은 기무사보다 몇끝발이 더 높은 권력기관이었다.
3.
자대에 배치 받은지 6개월이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 규율? 은 전입하사들은 자대오고 나서 6개월동안 px 출입 금지였다.
식사시간 1시간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허락 받은 나는 평소 관심을 두던 여단 본부로 향했다.
도서관이 있다고 하는데 구경가고 싶었다.
대학가 원룸보다는 조금 커보이는 장소였고 벽은 온통 책들 .. 나는 한권빌려 읽고 있었는데
그..왜 독서가 그렇지 않은가?
작가와의 대화가 시작되고 , 상념에 젖어서 책을 보다가 책 너머 촛점이 흐린 먼 곳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얼굴하나가 포커스 인 되어서 시야에 맺혔다.
" 너 뭐냐? "
" 네? "
" 왜 경례 안해 임마"
" 도서관이고..책 보고있는데 무슨 경례라는겁니까? "
" 이 새끼가.. " " 너 따라와 "
보안 장교 실이었다. 장소만 다른 같은 대화가 다시 오고 갔고 말이 안통함을 느낀 나는 그냥 더 상대 하고 싶지 않아서 나와버렸다.
대대 주임원사님이 호출했다. 여단 주임원사님의 근심어린 눈빛과 계속되는 조아림이 보안장교를 향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주임원사님을 따라서 하사 계급장인 나도 허리를 숙였다.
여단본부의 보안장교가 기무사에서 파견나온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특전사에서 중위 계급장 달고 그렇게 거들먹 거리는 인간이라면 아마 보안사라서 라고 생각한다.
4.
군대생활중 구타 사건에 연루? 되었다. 내게 맞았던 후임하사가 탈영을 했고 2달 후 자수하였는데 진술하기를
구타 때문에 라고.. 그래서 누가 때렸냐? 라는 질문에 탈영전날 때린사람이 나였다.
영창에 갔고 그 이후 자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사재판을 받았고 벌금형에 처해진후
방출되었다. 다른 여단으로....
새로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부대에서 나는 지휘관의 관심사병으로 등록되었다고 하는 소리를 건너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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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어느날 나는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95년말에 윈도우 95가 발표 되었고 지금의 아이폰 처럼 센세이셔널한 사회 반응이었고 너도나도 퍼스널컴퓨터 장만에 열을 올렸다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때는 학과 동기 40명중에서 3명만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의 보급률이었다.
아무튼 쇼핑을 하다가 하나의 시디롬에 꽃혀버렸는데 NEC 에서 만든 SCSI 방식의 시디롬이었다.
대부분의 시디롬들이 트레이 방식인데 반해
이 SCSI 시디롬은 캐디 방식이었는데 이거 하나에 뻑이 간 나는 전체를 SCSI 시스템으로 주문하게 되었다.
컴맹이 용감도 하지...
아무튼 자대로 내려온 나는 이 컴퓨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달된 컴퓨터를 보고는 화가 나서 돈을 입금하지 않고 용산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게 되었는데
시디롬이 트레이 방식의 시디롬이었다. E-IDE 방식의...( 가격의 차이가 엄청나다 )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원래 주문했던 시디롬을 재차 요구 하였고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다.
며칠후 기무사에서 전화가 왔다
중대장 : 이중사.... 기무사에 모 중령님이시라는데?
나 : 네? 네..
모모 중령 : 이모모 중사인가? 아 나 어디어디 모모 중령이라네
어.. 자네 그... 물건을 사면 대금을 지불해야 서로 상행위의 신용이 있는거고.....
나는 네.. 네 .. 네 ..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하고 끊었다.
1분남짓? 한 통화를 나의 목소리만 들었던 중대장은 내막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최대한 알리지 않으려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후다닥 빠져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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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일주일후 예정되어있던 음성꽃동네로의 봉사활동이 취소되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가기로 대체되었다고 들었다.
대대장님의 관심사병에서 해제된것이다.
내막인즉슨 이렇다.
용팔이의 사촌형이었던 기무사 중령님은 사촌동생의 하소연을 들었고 가오 안살게 타 부대 하사관하고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았던거고
그래서 점잖게 짧은 언질만 주었고
나는 컴퓨터를 반품했다.
그렇게 쓸수 없는(쓰면 뽀록나는)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카드를 쥐게 되었고
맹세코 1년남은 군 생활동안 조용~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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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보충대에 신병이 주말에 축구를 하다 다리가 골절됨..
사단 작전처로서 상황근무중이었는데 사단에 비상이 걸림..
사단장 휴일시간에 출동..
소란 끝에 해당 신병 수통입실 후 3달 후에 사단작전처로 배치됨..
첫 전화를 시켜주는데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빠좀 바꿔주세요.."
'아빠 블라블라블라.."
아저씨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빠 보좌관이세요라는 대답..
웅 아버지가 뭐하시니 라는 질문에 기무사 사령관이세요..
해당 신병은 티 안내고 군생활 잘했던걸로 기억함..
아 그때 비상이 걸린 이유가 있었구나..
언제적 이야기인지 가늠도 안되네요, 과천 기무사에서 복무했는데 널널 했습니다.
통용되는 농담이 있었죠, 미필자나 군복무중인 애들은 면회 오게 하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흐흐.
살면서 군대에서 금수저 인생들을 가장 많이 봤습니다. 역시 한국사회는 학벌 그리고 빽이라는걸 여실히 느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