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감기가 왔다. 아마도 발단은 여름휴가가 아니었을까. 어머니 환갑에 맞춰 가족여행이 이루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녀, 외손자로 이루어진 여덞 명의 대군단이 드넓은 동해바다를 거쳐 홋카이도로 내달렸다. 일본에서도 사상최악의 폭염이라고 TV마다 난리였지만 홋카이도는 그 더위에서 반 발짝 가량 비켜 서 있었다. 3박 4일의 여정 동안 최고기온은 30도였고 구름이 자욱하게 낀 마지막 날 오후 2시에 신치토세 공항의 기온은 18도에 불과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서울에서 느꼈고, 당연한 듯 에어컨을 켠 채로 잠들었고, 다음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기분과 목이 맛이 간 느낌을 받으며 간신히 눈을 떴다.
일요일 내내 감기에 시달렸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반쯤 맛이 간 상태로 헤롱거리다 점심시간에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열이 꽤 높다면서 근엄한 태도로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응급실 한쪽 커튼을 두른 곳에서 양손을 침대에 짚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사 두 방을 맞았다. 약빨이 잘 들었는지 오후에는 그럭저럭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가기간 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할 기운도 생겼다. 월요일 오후부터 화요일에 이르기까지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수요일이 되자 몸상태는 다시 극적으로 나빠졌다. 그리고 나는 쿨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이야기를 이곳 피지알에다 쓰고 있다. 이 정도면 중증 환자다. 내가 병원에 가야 하는 이유는 여름감기가 아니라 피지알 중독증을 치료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오 분에 한 번씩 접속하면서 그 때마다 모든 게시판을 둘러보고 새로운 글을 체크하고, 심지어 전혀 관심 없는 프로듀스48글과 페이커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롤 경기 글까지 몽땅 읽어보고 있는 이 심각한 중독 증세를 치료하는 게 기껏 감기 따위보다 훨씬 더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가는 병원에 정신과는 없고, 그래서 나는 얌전히 내과로 가 감기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다시 주사바늘 앞에서 치욕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주삿바늘자국을 문지르며 병원을 걸어나와 생각할 것이다. 좋아. 이걸로 피지알에 글 쓸 꺼리가 하나 더 생겼어, 라고.
오늘의 교훈 :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자면 지독한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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