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제가 나열한 선수들 말고도 많은 선수들이 있습니다만 10명만 가려서 뽑아봤습니다.
1.라이언 긱스 (웨일즈)
맨유에서 24년동안 활약하며 무수히 많은 우승을 거머쥔 원 클럽맨이고 클럽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보낸 선수입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교한 드리블, 킥을 갖췄고 데뷔 때부터 '완성형 선수'라는 찬사를 들었으며 24년동안 기복없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긱스는 성공적인 클럽 경력과는 반대되게도 축구 약소국인 웨일즈 출신이었고 커리어 내내 메이저 대회 한 번을 못나가봤습니다.
긱스는 자신이 선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다른 선수들이 월드컵, 유로 참가할 때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지금 긱스는 웨일즈 대표팀 감독이고 이제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 생애 첫 월드컵 출전에 도전하려 합니다.
2.조지 베스트 (북아일랜드)
맨유팬들과 북아일랜드인이 조지 베스트를 두고 유명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Pele? Good, Maradona? Better, Best? Best!"
그만큼 맨유팬들과 북아일랜드인들에게 조지 베스트는 위대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베스트는 17살에 맨유에서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동시에 화려한 퍼포먼스와 잘생긴 외모로 60년대 영국 최고의 슈퍼 스타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베스트는 지독한 우울증에 알코올 중독증 환자였고 온갖 기행을 일삼다가 세상을 등지다 싶이 인생을 살아갑니다.
베스트가 월드컵에 근접했던 적은 1982년 한 번입니다. 이때 북아일랜드가 월드컵 진출해서 베스트의 복귀설이 맴돌았었습니다.
하지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베스트는 이미 심신이 망가진 36살의 노장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3.베른트 슈스터 (독일)
요즘 축구팬들에게는 레알의 전 감독으로 유명하고, 축구좀 오래 보신 분들이면 "역대 최악의 배신자"로 기억하실겁니다.
슈스터는 정교하고 파괴적인 킥력과 왕성한 활동량, 감각적인 축구 센스로 8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슈스터는 80년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구단과 재계약 협상 도중 마찰이 생기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나봅니다.
그리고 슈스터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해버립니다... 더 황당한건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합니다....
이 사례 하나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슈스터는 괴짜였고 그의 기행은 서독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서독의 데어발 감독은 슈스터의 똘끼를 못마땅히 여겼고 슈스터는 감독과의 불화가 깊어지자 25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합니다.
슈스터의 이른 은퇴는 서독 입장에서 82, 86년으로 이어지는 2연속 월드컵 준우승이 더 아쉽게 느껴질겁니다.
4.군나르 노르달 (스웨덴)
50년대 AC밀란 '그-레-노리 군단'의 일원이자 AC 밀란 역사상 최다 득점자에 빛나는 레전드입니다.
노르달은 키 185cm, 몸무게 90kg 육박하는 거구였기에 그라운드에서 압도적인 파워를 발휘했고 동시에 기술적인 선수로도 전해집니다.
노르달은 세리에A에서 2차례의 리그 우승과 5차례의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 시기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노르달은 황당한 이유로 월드컵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스웨덴은 프로팀 소속의 선수는 국가대표에 차출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노르달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누빈 대회는 1948년 올림픽이 유일합니다. 이때 노르달은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웨덴은 프로팀 소속의 선수를 뽑지 않으니 메이저 대회 성적은 좋지 않은게 당연했고 결국 스웨덴은 방침을 바꿉니다.
그리고 195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정예 멤버들을 총출동 시켰는데 그 대회에서 노르달은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합니다....
5.조지 웨아 (라이베리아)
오늘날까지 아프리카 출신 유일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며 축구 선수 출신 최초의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입니다.
웨아는 아프리카에서 무명의 시절을 보내다 아르센 벵거에게 발굴되어서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냅니다.
웨아는 타고난 신체 조건과 감각적인 골 감각으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반열에 올라섰고 1995년에는 역사적인 발롱도르까지 수상합니다.
하지만 웨아한테는 갈증이 남아있었습니다. 자신의 조국인 라이베리아를 이끌고 월드컵을 나가보는게 일생일대의 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는 자신이 사비까지 털어가며 선수 겸 감독으로 대표팀을 지휘했지만 아깝게 본선 진출에 실패합니다.
6.에릭 캉토나 (프랑스)
90년대 올드트래포트의 왕이자 '영국인이 사랑한 유일한 프랑스인'으로 불렸던 선수입니다.
독불장군 성격으로 유명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등을 지고 살았지만 그의 축구 실력은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맨유 시절에 캉토나는 미드필드의 볼배급부터 득점까지 혼자서 해낼만큼 유아독존의 에이스로 군림했고,
이 캉토나를 필두로 한 90년대 맨유는 자국 리그를 완전히 지배하며 퍼거슨 왕조를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기 칸토나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수만명의 영국인들이 캉토나 응원하려고 앙숙으로 여기는 프랑스의 국기까지 흔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캉토나는 조국 프랑스에서 꼴통으로만 여겨졌습니다. 1994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이후 국가적인 비난까지 받았었습니다.
이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선임된 에메 자케는 캉토나를 과감하게 내치고 대신 데려온 선수가 있는데 바로 '지네딘 지단'입니다...덜덜덜.
7.라디슬라오 쿠발라 (헝가리)
이 선수는 많은 분들이 처음 들어보시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레전드입니다.
쿠발라는 50년대 극강의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하여 수차례의 리그 우승과 국왕컵 우승을 거머쥐며 클럽의 자존심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쿠발라의 당시 열렬한 카탈루냐 현지 인기에 힘입어 클럽이 관중 수용을 늘리려 건설한 경기장이 바로 오늘 날의 '캄 노우'입니다.
쿠발라는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에서 각각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선수로선 결코 월드컵 무대를 밞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고 1978년 월드컵을 출전합니다만 성적은 조별리그 탈락에 그칩니다...
+쿠발라는 격동의 20세기 동유럽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산증인입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때문에 '파랑 눈의 나그네'로도 불립니다.
원래 쿠발라는 헝가리인이었는데 헝가리 혁명을 겪고 체코슬로바키아로 망명합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빨갱이로 몰립니다.
쿠발라는 이후 공산 정권의 감시를 피해 유럽 곳곳을 유랑생활하다 이탈리아로 피신해서 토리노 축구팀에 머뭅니다.
어느 날 쿠발라는 친선 경기를 위해 출국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토리노의 수페르가에 추락했고 탑승해있던 토리노 선수, 스태프 전원이 사망합니다.....
8.야리 리트마넨 (핀란드)
누구나 인정하는 핀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입니다.
킥, 패스, 드리블, 득점력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갖춰야 할 요건을 고루 갖춘 선수였지만 부상이 잦아서 전성기는 오래 못갔습니다.
하지만 그 짦은 전성기가 실로 대단했는데 아약스에서 베르캄프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버리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리트마넨은 판 할이 이끄는 아약스에서 셰도로프, 다비즈와 함께 중원을 구성해서 그 해 리그 무패 우승+챔스 우승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국적이 축구 변방인 핀란드였고 1989년부터 2010년까지 21년간 대표팀에서 뛰면서도 메이저 대회를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얽힌 기록은 80년대, 90년대, 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는 축구 역사상 리트마넨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9.아베디 펠레 (가나)
가나 축구의 레전드이자 아프리카 축구가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입니다.
볼 다루는 능력이 매우 출중했고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패스를 겸비한 90년대 초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입니다.
당시 '호화군단' 마르세유에서 파팽, 워들 그리고 푈러, 복시치와 막강한 공격진을 편성하며 맹위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당시 가나는 오늘날과 같은 아프리카 축구 강국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여담은 펠레의 세 아들 모두 축구선수인데 그 중 둘째가 안드레 아이유고 셋째가 조던 아이유입니다. 아들들 역시 가나 국가대표팀 출신입니다.
10.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아르헨티나)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 마라도나와 더불어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간주되는 레전드of레전드입니다.
클럽 축구에선 역대 최고의 수준의 영예를 누렸음에도 월드컵은 단 1분도 뛰지 못한 선수인데 그 이유가 다양합니다.
1946년은 2차대전 영향으로 월드컵이 안열립니다. 1950년 월드컵은 아르헨티나 축협이 대회 보이콧을 선언해서 뛰지못했습니다.
1954년은 FIFA가 디 스테파노의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이중 국적을 문제삼아 국가대표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려서 뛰지못했습니다.
1958년은 스페인이 지역예선 탈락하는 바람에 본선 참가도 못했고, 1962년은 최종 엔트리에는 들었으나 부상으로 경기를 못뛰었습니다.
네.... 전 디 스테파노 때문에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