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1/30 23:45:19
Name AspenShaker
Subject [일반]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동생은 책을 읽는다.
이사가 3월달 초인지라, 해묵은 가구들을 교체하기 위해 틈틈이 가구 전시장을 찾았다.
직장인에게 금쪽같은 휴일 하루.
주말을 쉬는 나보다는 일요일 하루만 쉴 수 있었던, 그리고 집안일도 해야했던 어머니에게 더 소중한 하루였다.
8년을 버틴 소파와 장롱등을 새걸로 교체한다는 설레임이 있었고, 이사할  집의 가격이 조금 오른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한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와 아버지의 과오로 생긴 빚을 갚는데 바친 어머니에게는, 가구를 살 비용을 대출로
마련한 다는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20년된 아파트지만 어쨌든 자산의 가치가 올랐으니, 그에 일부분에 불과한 부채는 신경쓰지 마시라 했지만, 어머니는
하루에도 마음이 몇번씩 변하는 모습이었다.
[좋은걸 사라, 한번 사면 오래 사는 것들이니]
[그동안 안바꾼 가구들이 많아 돈이 여간 들어가는게 아니구나]

집안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이것이었다.
동생의 임용시험이 1년만에 합격을 해서 바로 발령이 나고, 어머니는 소득은 조금 적지만 좀더 편안한 일로 바꾸고,
나는 그대로 일하고.
하지만 2차까지 간 끝에 소숫점 이하 차이로 동생은 임용시험에 낙방했고, 우리의 시나리오는 1년후를 기약하게 되었다.
환갑까지 1년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는 여전히 의류매장에서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해야 했고, 동생은 1년동안 지긋지긋하게
바라봤을 교재를 처음부터 다시 펴야 했다.

오늘은 한샘을 방문해 예약했던 가구들을 최종 주문해야 했던 날이었다.
소파와 침대, 장롱을 한꺼번에 사야 했기 때문에 삼백이 넘는 비용이 나왔고, 당초 계약금만 걸고 잔금을
치루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액을 결제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장 여윳돈이 없었기에 일단은 내 마이너스 통장에서 잠시만 빼서 쓰기로 하고 결제가 완료되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아버지없이 자식들을 키운지 10년이 되어가는 어머니는, 이전과 비교했을때 말투가 거칠어졌고, 타인을 배려하는 말솜씨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식들을 대할때 더욱 도드라졌다.
언제나 그런것은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헌신적이지만, 가끔씩 나오는 급하고 성질난 말투는
나보다 내 여동생에게 좀더 가시가 되어 박혔다.

동생은 안그래도 1년을 뒷바라지 해준 나와 어머니에게 미안했을 터였다.
낡은 아파트의 좁은방에서 8년을 살았고, 비록 방은 더 커지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좀 여성스러운 방으로 꾸미고
싶어 설레는 모습이 역력했다.이전에는 없었던 화장대를 살 수 있다고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하지만 가구를 알아볼수록 예산이 늘어나고, 사야할 가구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지자,
동생은 한샘매장보다 조금 더 싼 인터넷 몰에서 가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매장에서 1차 결제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온 세 가족은 추가로 사야 할 가구들을 컴퓨터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구매를 한것이 못마땅한 어머니는, 동생이 인터넷으로 화장대와 책상, 침대를 알아보자
[돈이 너무 많이 나와서 큰일이다] [지금은 싼걸로 사고 나중에 비싼걸로 사자] [일 시작해서 나갈때 지금 산것들 꼭 가져가라]
등등의 하나마나 한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욕은 없었지만 말투가 공격적인 탓에, 그리고 그런 말투좀 고치시라 지겹도록 말했던 탓에, 시험에 합격못한 미안함 탓에,
꾹꾹 참던 동생은 그냥 안사고 만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고, 어머니는 눈치보여서 무슨 말도 못하겠다 역정을 내셨다.
임용시험 2차 결과 발표전날, 합격하지 못하면 침대는 놔두고 책상부터 긴 걸로 바꾸자고 했던 동생은 화장실에서 물을 틀고
울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울다 나온 동생을 보고 또한번 화가나 서로 날을 세우며 대립했다.

한차례 푸닥거리가 지나간 후, 동생은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어머니는 직장에서 먹은 도시락을 설거지 하며 한탄을 시작했다.
[내나이가 조금있으면 환갑인데 너무 힘들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이사짐 센터 알아보는것 부터 시작해서 하나 하나 모두 내가 해야한다]
[언제까지 하루종일 서있는 일을 할수는 없다, 이제는 한계다]
[사는게 힘들어서 내가 이렇게 무식해진거다]

어머니의 말은 대부분 옳았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이 나와 동생의 탓은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직장생활을 8년을 해서 집에 1억이 넘는 돈을 생활비로 가져다 주었고, 동생은 국가 장학금 및 성적 장학금으로
집에 기백만원의 절감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유치원 이라해도 임용시험은 근 10대 1의 경쟁률이었고, 1년만에 합격한다는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 식구 모두 각자의 역할에 나름 충실하게 지내왔다.
굳이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자면 10년전에 우릴 남기고 일찍 떠나가신 아버지라면 모를까, 우리 셋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오늘같이 이런일이 발생했던 것일까.
잘 해쳐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삐걱 될 때면 아버지의 부재가 떠오를수 밖에 없다.
가족 한사람이 30%의 몫을 더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완전한 400%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차례 폭풍이 오간후, 구석에서 눈치만 살피다 거실에 나온 나는 두가지를 알게 되었다.
씻으러 들어간 화장에서 어머니는 가족의 빨래를 하고 있었고, 동생은 임용시험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결국은 이런식으로 각자의 역할로 충실하게 돌아온다.
이것이 그동안 세 가족이서 끈끈하게 버텨온 원동력일 것이다.
하지만,왜 한결같이 서로를 위해줄수는 없는것인가.
그렇게 서로에게 화풀이 하듯 뱉어낸다고 없던 아버지가 돌어오는것도 아닐텐데.

한편으로는 마음한구석이 짠해지면서도, 답답해지는 밤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rya Stark
17/01/31 00:16
수정 아이콘
참 안타깝네요. 비슷한 처지 인지라 ... 가족에서 누군가의 부재와 누군가의 아픔이 가져오는 무게는 너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비둘기야 먹자
17/01/31 00:22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처지이긴 한데 건강이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이겨내시길 빕니다.
마스터충달
17/01/31 10:38
수정 아이콘
삶의 무게, 가난의 무게, 돈, 돈, 돈... 많지 않아도 행복하다지만, 없으면 행복은 요원해 보입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이라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호라타래
17/01/31 10:42
수정 아이콘
보석 같은 글이네요. 힘든 시기지만 잘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유니크한닉네임
17/01/31 11:01
수정 아이콘
당황스러운 글이네요.다른분들의 반응이 이해가안가요..
이게 좋은 글인가요....?글쓴분은 바깥에서 자취하시는건가요?어머니도 본인도 직장이있는데 집안일은 전부다 어머니 혼자하시는듯한데
제목부터가...동생분도 전혀 안하시는듯하고
이게 정말 안쓰러움에서 그칠 글인지 잘 모르겠네요
자신에겐 황금같은휴일 어머니에겐 얼마없는 집안일할귀중한시간...?누가 집안일을 하고싶어할까요
어머님도 주말엔 분명히 쉬고싶어하실텐데...그것도 6일제이신듯하고..
꼭집안일뿐만아니라 이사짐센터알아보는것등은 다들 나눠서 할수있는거잖아요.
어머님 말에 뼈가들어있는데 가족도 그 누구도 알아채지못하는듯해서 안타까울뿐이네요...아니면 모르쇠하는건지... 불행하지만 행복을 쫓는 가족으로만 미화되는게 참...
어머니혼자만 2인분의 일을해서 겨우 평범한가정의 모습을 하고있는거라 생각해요.이건 가족의 이야기가아니라 어머니 혼자만의 성과죠..
최소한 자녀분들이 집안일을 나눠하려는 의지만 있었어도
어머니의 저 가시돋힌말도 상처입히는일도 없었을거에요.
굳이 따지자면 누군가를 먼저 상처입힌건 자녀들쪽일겁니다....
어릴적부터 저런모습이라자녀분들이 실망해온케이스도 아닌듯하고..아마 어머님은 어른이되면 어련히 해주겠지정도로 참고 살아오시다 점점 한계에 부딫힌것 아닐까 싶네요..시험탈락즈음이 계기로요...
AspenShaker
17/01/31 11:32
수정 아이콘
집안일을 그다지 분담하지 않았던 저와 동생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용상의 오해가 있는것 같습니다.
저는 오롯이 주말 2일을 쉬기 때문에 하루 별도의 시간을 내는게 큰 일이 아닌 반면 ,어머니는 하루만 쉬고 그마저도 가사일을 하시니 그 소중한 하루의 대부분을 전시장에 가는것이 더 큰 희생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유니크한닉네임
17/01/31 11:43
수정 아이콘
그게 그리 큰 희생이란걸알면 이런곳에 글쓰면서 미화할게아니라 평소에도 집안일이나 나갈일을 같이 도왔어야하는게 맞지 않나 싶긴한데...가끔 부모의 일방적인 희생을 아름다운 가족이야기로 미화하는케이스를 봐서 제가 예민했나봐요^^; 힘내세요
누네띠네
17/01/31 14:12
수정 아이콘
4인 가족으로 살다가 3인으로 생활하는 것 부터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빚까지 떠앉고 있다면 4인 가족일 때보다 훨씬 힘든 상황이이에요.

그걸 '집안일 나눠하려는 의지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누군가를 먼저 상처입힌건 자녀들쪽이다'라고 말하는건 좀 잔인한 말 같습니다.
소위 꼰대들의 ''노오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유니크한닉네임
17/01/31 15:33
수정 아이콘
저 자신도 한부모가정으로커서 그 부분은 당연히 이해합니다만...그래서 집안일은 나눠서 해왔고요...
근데 당장 어머님이 말하는것만봐도 뭐때문에 어머님이 서운한지 저렇게까칠해지신지 다 드러나있는데 글 내용엔 거기에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게 당황스러운걸요...
빚은 하루아침에 어쩔수있는게 아니지만 하다못해 설겆이 한번이라도 신경을 쓰고안쓰고는 지금당장 할수 있는문제잖아요.솔직히 이런글 하나올리는거보다 더 손쉬운 일이고 어머니의 마음을 풀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17/01/31 11:32
수정 아이콘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에 계신 저한테는 부러운 글 입니다.

더 힘내시라고
한번 잘 풀리기 시작하면
더 잘될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한궤도
17/01/31 11:56
수정 아이콘
사소한거라도 도와드리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덜하실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퇴근하고서 빨래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제 동생도 공시 공부기간에 오히려 집안일을 더 많이 도와드렸어요. 공시 포기 후 직장 다니니까 기운이 없어서 더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직장인 선배로서 공감했습니다.. 공부가 힘들긴 하지만 동생과 잘 조율해보세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17/02/01 16:55
수정 아이콘
어머님 체력이 떨어지셔서 더 피곤하고 화나고 조급하시겠죠..
피로에 장사 없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0295 [일반] 트럼프의 100일 계획 [33] minyuhee6304 17/01/31 6304 0
70293 [일반] [스포일러?]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관람. [4] 사자포월3846 17/01/31 3846 3
70292 [일반] '너의 이름은' 을 봤습니다(스포) [75] Dalek6252 17/01/31 6252 0
70291 [일반] 최근 한 달 동안 본 영화들 [15] Rorschach6594 17/01/31 6594 4
70290 [일반] 특검, 안종범 수첩 수십권 추가확보 [45] 바스커빌8850 17/01/31 8850 4
70289 [일반] 그냥 한 가정의 정치 선호 이야기 [52] cluefake6471 17/01/31 6471 2
70288 [일반] 토론이냐 분란이냐 [266] 왼오른11125 17/01/31 11125 19
70287 [일반] "朴대통령, 탄핵 기각시 검찰과 언론 정리될 것" [38] 강가딘10473 17/01/31 10473 1
70286 [일반] 내일자 대선 지지율 조사 [112] Lv312734 17/01/31 12734 1
70285 [일반] 반기문 기자회견 "대선전 개헌 추진. 대통령제 폐지하고 분권·협치 새 틀 만들어야" [122] ZeroOne11097 17/01/31 11097 2
70283 [일반] 트럼프 '反이민 행정명령' 각계 반응 [53] 어리버리9900 17/01/31 9900 1
70282 [일반] 트럼프, 반기 든 법무장관 대행 경질 / 백악관 "국가수호의지 존중해야...싫으면 나가라" [118] vanilalmond10402 17/01/31 10402 1
70281 [일반] 문재인에게 아쉬운점.. 그리고 민주당 지역모임 갔다온 후기 [140] 레스터8925 17/01/31 8925 6
70280 [일반] 김종인 안희정에게 탈당권유?... [109] Neanderthal13611 17/01/31 13611 1
70279 [일반]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동생은 책을 읽는다. [12] AspenShaker6555 17/01/30 6555 35
70278 [일반] 영화 [공조] 관람 후기- 앍! 앍! 앍! [79] autopilot11460 17/01/30 11460 4
70277 [일반] 이재명 '경쟁의 품격' 호소 [92] 원시제12506 17/01/30 12506 7
70276 [일반] 충청도민 사이에서 과연 "충청대망론"이라는게 있는가? [59] re4gt10449 17/01/30 10449 2
70275 [일반] 매우 늦은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16 후기 (데이터x스크롤 주의) [5] snobbism6830 17/01/30 6830 0
70274 [일반] 문재인의 육아문제에 관한 구체적 정책 발표 [76] ZeroOne9342 17/01/30 9342 7
70273 [일반] 뭔가 금수저틱한 동북아시아 정치 최고지도자들 [1] 블랙번 록5291 17/01/30 5291 1
70272 [일반] 中 국수주의 활개…"마오 비판자 직장 못다니게 압박" [26] 테이스터7050 17/01/30 7050 1
70271 [일반] 고인팔이하는 박사모 [96] ZeroOne10107 17/01/30 1010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