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또다시 붉은 악몽>은 <1의 비극>과 함께 노리즈키 린타로가 가족의 비극을 소재로 쓴 '비극 3부작' 입니다. 그 중에서도 <요리코를 위해>, <또다시 붉은 악몽>은 내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죠. 여기서는 <요리코를 위해>, <또다시 붉은 악몽>을 특히 후자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요리코를 위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7살 니시무라 요리코가 공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니시무라 요리코의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는 [사건을 미해결 연쇄살인의 하나로 덮으려는 경찰에 의혹을 품고, 조사끝에 요리코가 임신 4개월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요리코를 임신시키고 죽인 학교 선생을 찾아 복수했다.]는 내용의 수기를 남기고 자살 시도를 합니다. 학교 측은 스캔들을 덮기 위해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이름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노리즈키 린타로는 수기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에 착수합니다. 나카하라 형사의 "당신은 어느 편 인간이야?" 라는 질문에 "진실의 편에 선 인간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이사장의 "당사자에게는 흑백의 판가름만이 진실의 증명이에요. 오늘 아침부터 당신은 이 사건에 완전히 발을 담갔어요. 이미 어엿한 당사자라고요." 라는 말을 듣고 난폭한 극단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탐정입니다.
<열흘간의 불가사의>에서 엘러리 퀸은 처절하게 실패합니다. 그야말로 범인에게 완벽하게 농락당하죠. 반면 <요리코를 위해>에서의 노리즈키 린타로는 범인의 정체, 사용한 트릭, 범행 동기까지 모든 진실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자신이 알아낸 진실의 무게에 압도당하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짓눌리면서 그는 탐정이란게 단순히 진실을 밝혀내는 촉매제가 아니라 자신이 밝혀낸 진실에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다시 붉은 악몽>의 시작에서 노리즈키 린타로는 탐정이 하는 일이 단순한 '추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결국 이 탐정의 위치에 대한 고민때문에 그는 사건 수사도 그만두고, 본인의 밥벌이인 본격 추리소설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 엘러리 퀸의 <꼬리 많은 고양이>를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렇게 반년동안 '악몽'에 시달리던 그에게 어느 날 예전 사건에서 알게 된 아이돌 가수 하타나카 유리나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닌가 고민하면서 린타로를 찾아옵니다. 린타로는 포기하려 하지만 아버지인 노리즈키 사다오 경시의 설득에 의해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하고 하타나카 유리나, 아니 나카야마 미와코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명탐정은 이번엔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돌아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게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오히려 미와코가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린타로는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다시 반년전의 사건과 동일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과연 타인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아니, 자신은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손을 뗄 것인가의 문제. 린타로의 머리속을 맴도는 것은 <꼬리 많은 고양이>에서 셀리그먼 교수가 한 말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의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책을 찾고 조언도 들으면서 린타로는 끊임없이 자신이 나아갈 곳이 어디인지 찾습니다.
<또다시 붉은 악몽>이란 제목은 '킹 크림슨'의 노래 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있어서 붉은 악몽은 반 년전 요리코 사건일 겁니다. 나카야마 미와코에게는 과거의 '그 사건'이겠죠. 이런 '붉은 악몽'이 재현되려 할 때 과연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노리즈키 린타로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나름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음에 새겨야 할 행동 지침을 가지게 되죠. 탐정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이 소설의 결말로는 적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가 <꼬리 많은 고양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중반부 '고양이 폭동' 다음날 실의에 빠진 엘러리가 록펠러 광장에서 터덜터덜 발을 끌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퀸, 넌 끝장이다. 하지만 넌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서야만 한다. '고양이'를 쫓기 위해.
이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는 뭘 하지?
어디를 찾지?
어떻게 찾지?
다음 리뷰는 <안녕 요정>으로 가겠습니다. '마야가 너무 귀여워서 슬픕니다.'라는 한 문장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왕과 서커스> 리뷰를 위해서는 한 번 하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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