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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11 03: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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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연애/회상] 그녀의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로 우연찮게 듣게된 소식이다.


결혼한다더라. 이번에 둘째 낳았다더라 등등.. 그녀의 소식을 곧잘 전해주던 후배를 통해서 말이다.
처음엔 그런 소식을 '굳이' 전하는 후배에게 화도 냈었다.
"야..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데? 재밌냐? 엉?"

그런데 그녀석과 워낙 막역한 사이이기도 하고, 어느새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기다 보니,
이제는 그냥 무덤덤.. 소식전하는 그 후배가 재미 없어할 정도의 피드백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그래? 둘째 낳았다고? 잘됐네.."

사실 이별을 고한건 그녀였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건 나였다.
우리 관계가 급속도로 안좋아진건 내가 이직을 하면서 부터였다.
평소에 동경하던 회사로의 이직이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던 만큼 나는 절박했다.
그 회사는 평소 경력직을 잘 받지 않았다. 나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로 경력으로 입사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회사내 경험이 많은 동료들의 견재와 텃새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미친듯이 공부하고 미친듯이 일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그녀가 '변했다' 고 말하며 조금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즈음이.

물론 나역시 할말은 있었다.
나는 내심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하던 무렵이다.
더 좋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의 그녀는 뒷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와 그녀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땐 몰랐었다. 미래도 현재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처음 그녀가 이별을 고할때는 오히려 화가났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그래서 붙잡지 않았다. 그정도로 현명하지 못한 여자라면 떠날테면 떠나라. 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바빴고, 그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어느덧, 회사내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던 무렵,
나이 어린 동생들이 먼저 다가와 "이제, 말 편하게 하세요, 형님" 이라는 말을 던지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와 이별한지 6개월 즈음이다.
조금은 나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한편으로 쉼없이 달려온 시간을 뒤돌아보고, 조금은 긴장을 풀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되기까지 1년이 걸릴만큼, 나는 절박했다. 항상 벼랑끝에 있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러자, 그렇게 긴장이 풀려가자, 뒤늦은 이별 후폭풍이 찾아왔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터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에야 그녀를 떠나보냄을 실감한 나는 뒤늦은 이별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 후, 누구도 만날 수 없었고 그녀만이 더 또렸하게 떠올랐다.
주변 사람들에겐 미래를 위해 투자한 날 버린 바보같은 여자라 일갈하면서도 혼자 남겨지면 그녀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런 반 정신병자 같은 생활을 4년이 넘도록 하고나서야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그녀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난 그녀를 잊게 만들어준 새로운 연인과 1년여의 연애끝에 결혼했다.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지 1년 정도가 지난 무렵이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바라던 딸도 태어났고 가정생활은 화목했다.

물론,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던 후배는 내 피드백엔 아량곳 하지 않고 소식을 전했다.
사실 간간이 듣는 그녀의 소식이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론, 지금 집이 전세인지 자가인지, 남편 벌이는 어떤지.. 같은 조금은 속물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솔직히 반반이었다.
나보다 잘 살지는 못하길 바라는 맘도 있었고, 날 떠난만큼 왠만하면 힘들게 산다는 소식은 듣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다 며칠전 그 후배에게 조금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몇달 전, 나름 업계에서는 이야기하면 알만한 회사를 다니던 남편이 회사를 옮겼단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그래? 나름 괜찮은 회사인데 왜 그랬데?"

정도의 반응으로 지나쳤다.
뭐..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옮긴 곳은 예전보다는 작은 회사라 했다.

그러다 이번에 그 회사를 다시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 애가 둘이나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뭔가 여운이 남았다.
그녀의 소식에 대해 두가지가 공존하던 중에, 후자에 해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남편이 일을 안하니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을리가 없었다.
현재는 시댁의 도움을 약간 받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어중간한 나이에 해당 업계에서 자리가 많지 않은 포지션의 업무였던 탓에 재취업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휴... 좀 잘살지.. 왜.."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났다.
서로 언급은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 주제였던 탓에 언제나 그랬었다.

그런데 자꾸 그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나 싫다고 떠났으면, 잘이나 살던가.. 왜 이런 소식을 전하는거냐..

문득, 그녀 이야기를 전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랑 사귀고 그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무렵,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남친은 적어도 나를 굶기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생활에 악착같은데가 있고, 가끔은 그런 모습을 존경한다."

라고 말이다. 서로 결혼했고, 나 역시 아이가 있던.. 그녀의 기억조차 희미할 무렵에 듣게된 이야기다.
사실 몰랐었다. 나는 그녀가 단지 바쁜 내 일상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어렴풋이 알게된게 있다.
그녀는 바쁜 나를 이해 못한게 아니라, 내가 달려나가는 인생의 과정에 정말로 본인이 들어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와, 이게 다 우리 모두를 위한거라는 대외적인 간판만 걸어놓고,
사실은 단 한번도 그녀와 같은 목표를 공유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그것이 불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그 남자를 선택한 것은, 나와는 달리 공통의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는 그런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걱정해봐야 남의 아내일 뿐이며, 내 인생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만이 남는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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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선비
16/09/11 03:25
수정 아이콘
4년걸리셨군요
전 1년쨔인데 조언좀. 부탁. 드려요
16/09/11 03:54
수정 아이콘
글쎄요.. 조언이랄게 없습니다.
그 시간을 이겨낸게 아니라, 그 사람을 잊을 정도의 여자를 만난게 4년이 지난 무렵이었어요.
굳이 첨언하자면, 그런 상황속에 본인을 가두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하시라..
정도의 조언을 드리고 싶네요.
16/09/11 04:57
수정 아이콘
보통 여자들이 다 그런것같아요
너무 늦게 아신것같네요...
좋은 분 만나서 좋은 가정 꾸리셔서 다행이예요
행복하시길 바라요. 글의 여자분도.....
16/09/11 05:34
수정 아이콘
느낌있네요.
수필 잘읽었습니다.
해원맥
16/09/11 07:3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냉면과열무
16/09/11 08:4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지구와달
16/09/11 08:51
수정 아이콘
여자로써 매우 공감합니다.
남자가 현재 "잘 나가느냐"는 그닥 중요한건 아니죠. 언제든 사라질수있는 것이니까요.
말씀처럼 공통의 미래를 같이 그릴수있는 유대감이라는건 웬만해선 사라질수없는 것이니까요.
잉크부스
16/09/11 10:05
수정 아이콘
저는 주식으로 인생 파멸의 구렁텅이에 던져졌을때 지금 와이프가
"뭐 그깟일로.. 난 오빠 바람난줄 알았잖아.."
라고 하고 결혼하자고 하더군요..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늘도 틱틱 거렸네요
가서 잘해줘야지..
실론티매니아
16/09/11 10:22
수정 아이콘
공통의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 유대감도 현실의 먹고사는 일에 직면하게 되면 분명히 약해질 수 있죠...
물론 절대 그렇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지만요..
부산밤바다
16/09/11 17:49
수정 아이콘
<사실 몰랐었다. 나는 그녀가 단지 바쁜 내 일상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어렴풋이 알게된게 있다.
그녀는 바쁜 나를 이해 못한게 아니라, 내가 달려나가는 인생의 과정에 정말로 본인이 들어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부분 많이 공감갑니다..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리니시아
16/09/13 16:36
수정 아이콘
22
굉장히 잘 읽었습니다
질롯의힘
16/09/12 14:00
수정 아이콘
20대중반 뜨겁게 연애하던 사이였는데, IMF와 함께 닥친 현실에 불안한 나의 미래에 대해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떠나간 그녀,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힘들지만 잘 이겨내고,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인정받고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그녀는 그뒤로 10년간 결혼을 못하고, 나보다 훨 잘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헤어지고 난후 7년뒤 우연히 만나 만났을때, 그때는 내 미래가 하찮게 보여서 찼는데, 막상 사회생활 해보니 나만한 남자 만나기도 힘들더라는 얘기, 조건이 좋으면 성격이 안좋고, 돈이 많으면 거드름 피우고 등등. 결국 다시 만날때 내 모습 정도였으면 충분히 결혼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걸 못참고 찼지요. 난 항상 나중에 그녀 앞에서 성공한 내 모습을 언젠가 보여줘서 후회하게 할거라는 유치한 복수심으로 악착같이 살아왔는데...막상 결혼하고 애들 키우다 보니 사회생활 하면 그 정도는 자연히 악착같이 살게 되더군요. 뭐 인생이 그런거죠. 드라마처럼 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남자의 첫 사랑은 잘 잊혀지지 않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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