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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9 19:34
당신들은 누구와 사랑에 빠져든 적이 있는가.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고귀함이나 감미로움, 헤어질 때의 고통과 슬픔이며 그 후의 공허함 따위를 미화하고 과장하려 들 테지만 기실 그 진상은 뜻밖에도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당신이 이 여행 중에 눈길을 끄는 한 소녀와 만났다는 것이며, 결국은 부정확하기 마련인 관찰에 이어 당신이 던진 호의 섞인 눈길에 그녀가 답했다는 것이며, 무료를 함께 달래자는 당신의 용기를 다한 요청에 그녀가 다소곳이 응했다는 것이며 - 그리하여 약간은 야릇한 열에 들뜬 당신들이 깜빡깜빡 자기를 잊어 가며 주고받은, 분명 달콤하고 섬세하나 또한 그리 대단할 건 없는 몇 개 유형의 행위와 가끔씩은 정색해도 좋을 대화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설혹당신들에게 공통되는 추억과 꿈이 있었고, 그래서 많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을 얘기했으며, 혹은 그런 것들 자체를 행위로 주고받았다 할지라도 당신들 중 누군가는 도중에 내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대지에는 너무나 많은 역이 있고 대개의 경우 우리들 각자의 행선지는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당신들은 만나기 전보다 훨씬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헤어져야 하며 불행히도 마땅한 새 상대를 구하지 못할 경우 그 나머지 여정은 피로하고 지리하여 못 견딜 것이 되어 버린다. 물론 헤어질 무렵에는 서로가 오래도록 기억해 줄 것을 열렬히 희망하고 혹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지만 그 또한 온전히 허무한 것이 되기 일쑤이다. 세상은 너무도 기억할 것이 많고 한번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기에는 너무 넓은까닭이다. 어쩌다 운 좋게 둘의 행선지가 같은 경우에도 결과의 허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서로가 미지이던시기, 열정의 한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당신들 서로를 묶고 있는 그 무료하고 권태로운 관계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문열 <이 황량한 역에서> 중
16/04/09 19:36
안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죠. 저는 사람을 아는 것에도 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얕은 관계는 '좋아하는 것'을 알고, 좀 더 깊어지면 '싫어하는 것'을 알고, 아주 가까워지면 '두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죠.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관심을 갖다보면 상대방을 점점 더 알게 되고, 그러다 두려워하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지나고, 관심은 식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관심은 더욱더 식고...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되다보면 남는 것은 권태와 이별이겠죠.
이런 비극적 결말을 막기 위해 저는 항상 '지속 가능한 연애'를 고민했습니다. 왜 어떤 커플은 결혼 3년차밖에 안 됐는데 정 때문에 산다고 푸념을 하고, 어떤 커플은 30년이 지났는데도 서로 죽고 못 사는 건지 고민했었죠.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긍정심리학에서 찾았습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서로의 강점을 찾아서 이를 키워주는 관계를 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너무 포괄적인 이야기라 저 나름대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결론이 나왔죠. 그림을 좋아하면 캔버스라도 사주고,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도 사주고 말이죠. 더 좋은 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겁니다. 롤과 팀 프로젝트 때문에 협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만 팽배해졌는데 (-_-) 협동 업무는 팀원 간에 유대감을 키워주는데 매우 효과적인 게 사실이죠. 목표 달성의 성취감에서 오는 쾌감도 크지만, 그 과정에서 노력하는 동안 형성되는 유대감은 정말 장난 아닙니다. 대학 시절 밴드 합주를 했었는데, 공연보다 합주가 더 더 더 즐거웠습니다. 이를 남녀 관계에서도 수행하면 됩니다. 여자친구랑 뭐 할게 없다고 고민이 된다면 편하고, 쾌적한 일 말고, 고생스럽고, 고단하고, 해내야하는 걸 함께 해보세요. 등산이라던가(서울에는 등산가기 좋은 산이 정말 많습니다), 운동이라던가, 켠김에 왕까지라던가, 자원 봉사라던가 말이죠. 맨날 영화보고 모텔가고 똑같은 데이트가 싫증나신다면 차라리 둘만의 5km 마라톤이라도 해봅시다. 그렇게 함께 공동의 목표를 완수하면 뭔가 남는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게다가 이런 협업은 맨날 똑같이 해도 지루하지도 않아요. 생각해보세요. 합주라는 거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똑같은 연습곡을 수십번씩 하는데 말이죠. 전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맨날 농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뭔가 참신한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신다면 맨날 해도 지루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게 정답입니다. 그런 공동의 목표를 한 번 찾아보세요.
16/04/10 19:40
본문의 마지막 문단에 대한 훌륭한 보완 댓글이자 방향 제시네요. 물론 제시해주신 것만이 완전무결한 해답은 아니겠으나 여러모로 곱씹어볼만한, 참고할 대목이 많은 조언이라고 느껴집니다.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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