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야끼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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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의 숫자 1이 사라지는 것처럼 문자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그 날 하염없이 기다리진 않았을 것 같다.
결국 그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뭔가 모를 안도감도 생겼다.
‘나 여자친구 생겼어’라고 해야 할지, ‘내 좋아했었나?’라고 해야 할지
막상 그 친구가 내 앞에 왔어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야, 잘 지내나]다시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 사건(?)이 지난 지 1년쯤 되었던 것 같다.
[내야 뭐 그렇지. 니는?][못 지냈는데? 크크크 농담]뭔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지난날은 묻지 않는 게 예의인 것 같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서로의 진심을 숨기고 미묘한(?) 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친구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별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정작 그 날의 일은 아무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처럼 돌아가는 듯 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우리 학교 축젠데 놀러 온나][이번 주? 야 근데 거기 여고 아이가. 부끄럽다][괜찮다. 온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온다.][아, 쪽팔리는데]연락을 다시 한 지 몇 주 뒤, 그 친구는 학교 축제가 열린다고 문자가 왔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일이 있는 후 처음 얼굴을 보게 되는 거였다.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뭐 결국은 축제를 보기 위해 약속한 날 그 친구의 학교로 갔었다. 음, 정확하게 말하면 교문까진 갔었다.
지금은 혼자 여행도, 밥도 잘 먹지만 그 시절엔 그런 걸 너무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교문을 들어서면 주위의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고 쑥덕거릴 것만 같았다.
대뇌망상이지만 스스로가 주위를 너무 의식했다...라고 찌질하게 핑계를 대본다.
교복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손에는 휴대폰 진동이 텀을 가지고 울렸지만 한 번도 꺼내보진 않았다.
그냥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그 친구와의 연락도 거기서 끝이었다. 나에게 온 적도 내가 먼저 한 적도 없었다.
그 후는 여느 다를 것 없었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처럼 입시 준비, 야간자율학습, 땡땡이(?)의 무한반복 속에서 학생의 마지막 관문인 수능을 쳤고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재수는 하기 싫었기에 점수에 맞춰 대학교를 지원하였다.
모든 수능을 쳤던 고3들이 의미 없는 등하교를 하며 마지막 학창시절을 보낼 쯤 이었다.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놀다 막차가 끊길 때 쯤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과 차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 길, 분명히 진동으로 해놨던 것 같은 휴대폰은 벨소리 음량을 최대치로 올려놓은 것 마냥 귀에 크게 들렸다.
[수능 잘봤나?][어.... 아니, 그냥 점수맞춰서 냈다. 니는?][나는 재수할려고. 재수학원 등록도 했고 담주부터 시작한다]갑작스러운 그 친구의 연락도 재수를 한다는 소식도 모두 당황스럽기만 했다.
나는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통화음만 들릴 뿐 끝끝내 그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 하지마라. 나 이제 폰도 해지 할 거다][아..... 그래. 카면 내 번호 안 바꿀테니깐 1년 뒤에 꼭 연락도]다시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집에 가는 길에 하염없이 폰만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했다.
그 후 드디어 대학생활이 시작되었고, 적성과는 상관없이 점수 맞춰 갔던 학과는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나는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뉴스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 한파와 경찰차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달리 폰 진동소리에 촉각이 곤두서있었다. 하지만 스팸 메시지만 간간히 올 뿐 끝끝내 그 친구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몇 달 동안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내 번호를 지운건지, 아니면 어디 적어뒀는데 그 종이를 잊어버린건지,
아니면 한창 지원대학을 정하느라 정신이 없는건 아닌건지 오만 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은 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야 내 아직 번호 안 바꿨다.][어, 알고 있다.] 문자 보낸 폰을 닫기도 전에 그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답장이 너무 빨리와서 그런거라고 생각되었다.
[수능은?][잘 본 것 같다. 이번에는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을 듯][맞나? 잘됐네. 수능 끝났으면 연락을 해야지][왜 맨날 내가 먼저 해야함?][그래가 내가 먼저 했다 아이가. 어딘데 집에 왔나? 짐 나올래?][웃기네 크크크크.][와 내 인제 면허도 있다. 나온나. 집은 모르겠고 거기 버스정류장에서 보자][됐다. 이번주 주말에 약속있나?][아니 없지][카면 토요일 저녁에 시내에서 보자][알겠다. 토요일 6시에 보자][그래]우리는 중학교 이후로 (나 때문에)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그동안 각자의 상황에서 있었던 얘기를 쏟아냈다.
몇 년 만에 본 게 무색할 만큼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그 수많은 얘기 속에서도 두 가지의 일은 먼저 꺼내지 않았다.
음, 정확하게 얘기하면 2차에서 술을 마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저녁을 먹고 2차로 포장마차가 있는 거리로 옮겼다.
그날 분위기가 좋았던 건지 소주병이 점차 쌓여갈 때 쯤 얘기를 시작한 건 그 친구였다.
“너 그때 정류장으로 왜 나오라고 그랬냐?”
“언제?”
“모른척하지 말고”
“어.......그게...”
“됐다. 그게 니 잘못도 아니고. 내가 병신같이 타이밍을 못 잡은거지”
“아니, 그렇다고 자책 할 필요는...”
“나 그때 못한 말 지금 다시 해도 돼?”
“?”
“다시 해도 되냐고”
저그의 4드론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그 친구의 고백에 술이 깰 정도로 당황했다.
반쯤 풀린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 친구가 지긋이 쳐다보는데 나는 왜 그 친구의 입술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실수하겠구나 싶었다.
“아니 하지마”
“왜?”
“나 여자친구 있어”
“뭐?”
“여자친구... 있다고”
“나.쁜.새.끼”
“.......”
“그럼 전화번호는 안바꾼다는 얘긴 왜 한거냐”
“그러게”
그래, 또 한 번 우리의 타이밍, 아니 그 친구의 타이밍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같은 과 누나를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아마 살면서 들을 수 있었던 10원짜리 욕은 그 때 다 들어본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났을 쯤 그 친구는 이내 지쳤는지 테이블에 엎드려 그대로 뻗어버렸다.
일단 집까지 같은 방향이니 업고 집 근처로 가 전화를 하는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맞는 것 같은게 아니고 맞는 거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나는 버스를 내리기 위해 다시 그 친구를 들쳐 업었고, 정류장에서 그 친구의 폰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순간 그 친구는 갑자기 소주 냄새를 풍기며 뭐라 중얼거렸다.
"뭐카노? 토하고 싶다고?"
"아니"
"카면 뭐?"
“집에 전화하지 말라고”
그 날 날씨보다 더욱 오싹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