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냉전이 한참이던 때, 아직 분열중이던 동독은 음모를 꾸밉니다. 문화 축제를 벌려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그 틈을 타 서독을 흡수하려는 계획을 세우죠. 그리고 눈요기 용으로 여러 음악인이 초청되는데 거기에는 미국에서 한참 떠오르는 닉 리버스도 끼어있었습니다. “스킷 서핑”이라는 노래로 슈퍼스타가 된 닉 리버스는 고압적인 동독의 관리들이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그러나 빡빡한 이 나라에서 운명처럼 어떤 여자를 만나고,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과 모험에 휘말립니다.
<특급비밀>(일급비밀로도 불리더군요)은 도대체가 진지해질 수 없는 코메디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줄거리에 말도 안되는 유머와 패러디로 가득 차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유머를 발휘하는 방식입니다. 엉뚱하고 황당한 캐릭터, 세련된 위트 같은 게 아니라 영화적 공식을 뒤집는 거죠. 이를 드러내는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 전화기 씬일 겁니다. 화면 가까이에 있는 전화기가 울립니다.멀리 있던 인물은 전화기로 다가갑니다. 아마 누구든 이 크기의 차이는 원근감을 강조하는 배치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런데 인물이 손에 든 수화기는 진짜로 엄청나게 큰 전화기입니다. 영화는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전통적인 규칙들을 죄다 파괴하거나 탈선해버립니다. 보여서는 안 될 게 보이고, 긴장시키는가 싶다하면 알아서 바람을 빼버리고, 심각한 상황에서 뻘짓을 해대는 겁니다.
이 영화에는 코메디 영화로서의 욕심보다도 그 방법에서 어떤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입니다. 이 전까지는 이런 상황이면 이런 연출을 썼지, 그런데 이걸 따라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라며 기존의 영화문법을 답습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 결과 영화는 매우 뻔뻔하고 능청스러워집니다. 지금 무슨 일 있어? 이 영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야!! 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객들과 농을 주고받는거죠. 거기서 소격 효과가 생깁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단순히 작품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영화가 제작된 배경과 현실까지도 고려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저런 장면은 저렇게 찍었었구나, 저기서는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할 텐데? 라며 영화를 영화로서 더 넓은 시점에서 즐길 수 있게 되죠. 영화보다는 영화제작에 관한 메타 영화처럼도 보입니다.
지금 보면 템포도 살짝 늘어지고 촌스러운 유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머들이 아직도 유효합니다. 블루라군 패러디처럼 시대의 정취를 함께 가지고 가는 코드들도 있구요. ZAZ 사단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유행하던 허무주의 개그에 비하면 이 영화의 코메디가 얼마나 풍성하며 재기넘치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를 둘러싼 웃음 코드는 본질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요. 똘기도, 잰체도, 쎈 척도 아닌 천연덕스러움으로 피식 날숨을 빼는 이 영화에 그 정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마음껏 감탄하고 싶지만 욕을 못해주니 갑갑하네요!
@ 의외로 관객이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한 때 발 킬머는 저리도 풋풋하고 잘 빠진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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