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사로 부터 시작되는 우리집 여자들의 계보는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깝다.
인생이라는 것의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 지는게 맞으나 어쩜 이집의 여자들에겐 단 한번의 행운도 찾아오지 않은걸까...
심여사부터 이야기를 하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하나 싶어진다.
호적과 실제 생년월일이 5년 차이나는 것부터 말해야하나... 심여사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방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나 자란 심여사는 꽉막힌 사고를 가진 외할아버지 덕택(?)에 학교를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시절 소녀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매일같이 봇짐을 메고 가는 오래비들이 부러워 몰래 몇년을 도강아닌 도강을 했다.
그녀의 학력을 중졸이라고 써서 내곤 했지만 사실 심여사는 초등학교 몇년이 학력의 전부다. 그래도 영민했던 소녀는 알파벳은 몰라도
한글은 깨우쳐, 비슷한 처지의 할마시들을 까막눈이라고 안배우고 뭐했냐고 타박하곤 한다.
그 후 어느 형제 많은집 장남에게 시집을 갔고 아이를 넷을 낳았다. 한참이 지난 후 사연 많은 나를 낳았고 불행하게도 몇년 뒤
이십대 중반 한창나이의 작은 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다.
그 후 우여곡절이야 뭐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게 칠십년을 살아왔고 요 몇년 전부터 그녀는 아주 재미난 인생을 살고 있다.
심여사의 두 딸중 장녀인 우리 큰누나도 심여사 못지 않다.
어려운 형편에 바로 벌이에 나서야 했던 두 딸은 참으로 대조적인 인생을 살아야 했다. 본인의 억척스러움도 있었지만 성실하고 능력있는
남편을 만난 작은누나가 잘 풀린데 반해 큰 누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시집도 어디 시골로 갔던 큰누나는 두 남매를 잘 키웠지만
남편의 외도와 폭력으로 이혼 후 지금은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있다.
난 항상 큰누나와 작은누나가 같이 있을때 둘의 다른얼굴에 놀라곤 한다. 작은누나가 온화한 인상이라면 큰 누나는 뭔가 좀 쎄보인다.
두 자매의 30여년전 사진을 봤을땐 그렇게 다르지 않았는데...그 풍파가 얼굴에 묻어난 것일게다.
큰 누나의 두 아이중 큰 아이인 나의 조카는... 비록 조카 녀석들(8명 후덜덜) 중 가장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참 정이가는 녀석이었다.
다른 조카녀석들이 도시물먹고 하얗고 뽀얗게 자라고 있을때, 요녀석은 어릴적부터 전라도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얼굴 시커먼 아이였다.
식탐도 있어서 뚱뚱해져서 저거 저러다 시집이나 가겠나 싶었다. (지금은 니가 삼촌을 그렇게 생각하겠지...)
거리도 거리고 사정도 사정이라 왕래가 잦지 않다 20대 넘었을 무렵 연락이 닿았을때 그 동생 남자녀석이 그런말을 했다.
누나가 노래 겁나 잘해요잉~, 아주 이 근처 학교들에선 소문 다 났단께요잉.. 제 친구들도 막 진영이네 누나 노래 허벌나다고
노래방 같이 가면 안되냐고 한단께요잉...
"오 노래를 그렇게 잘해? 그럼 가수해보지.. 그 뭐야 슈퍼스타K 같은데 나가봐"
라고 철없이 얘기 했었다. 안그래도 그 쪽으로 꿈이있던 아이가 외모에 벽에 막힌걸 모르고선 말이다. 두어번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왔었단다.
와 봤더니 서울에는 자기보다 억만배는 이쁜 처자들이 자기보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그랬단다.
후에 조카와 노래방을 가보고 나서야 나는 그말이 거짓말인걸 알았다.
조카가 불렀던 노래들은 내가 들었던 최고의 라이브였다.
어느날 이 조카녀석이 신랑될 사람이라고 멀끔하게 생긴 청년을 하나 데리고 왔다.
스물여섯 먹은 조카가 서른먹은 신랑감을 데리고 와서 나한테 삼촌~삼촌~ 거린다.
그리고 몇 달후 결혼식도 하지 못한 두녀석 사이에서 니가 태어났단다. 하린이 니가...
안녕... 하린아. 니가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문의를 했더니 할아버지라고 해야한다더구나.
내가 니 할애비다. 83년생 올해 서른셋먹은 내가 니 할애비란 말이다!!
증조 할머니, 할머니, 엄마까지 참 사연많은 인생 살아왔는데 그녀들이 니가 할 고생 아마 땡겨한걸거야...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줘서 고마워. 50일 축하한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
P.S 할아버지가 요새 하는 게임중에 LOL이라는 게임이 있는데 말이야.
거기에 나오는 특정한 캐릭터가 하는 대사가 있어.
니 엄마다~(with.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