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이와 문돌이는 카페에서 나와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한다. 시원한 밀면? 아니면 짜장면? 돈까스? 아니다. 그래도 좀 앉아서 얘기를 나눌만한 메뉴가 좋을거 같다. 저 멀리 감자탕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문돌이가 말을 꺼낸다.
"야 감자탕 괜찮나?"
"네 좋죠"
그렇게 얼마간 걸어가 감자탕집에 들어간다. 의자에 앉아서 먹는 테이블은 없고 좌식 테이블만 눈에 들어온다. 신발 벗기가 부담스럽지만 이왕 들어온거 다시 나갈수도 없다. 문돌이는 혹시라도 발냄새가 나면 어쩌나하고 조심스럽게 신발은 벗는다. 다행히 우려했던 냄새는 나지 않는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편하신데 앉으라는 종업원의 말에 밖이 훤하게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 두 사람. 수현이도 치마를 입어서 그런지 앉을때 꽤나 신경쓰는 모습이다. 괜히 감자탕을 먹자고 한거 같아 문돌이는 마음이 쓰인다. 종업원을 불러 감자탕 小자를 주문한다. 문돌이는 소주를 시켜도 되나 속으로 고민해본다. '에이 그냥 밥만 먹고 가야지 소주는 무슨' 근데 수현이가 물어 본다.
"오빠 한잔 하실래요?"
문돌이는 흠칫 놀란다. 얼마전에 갑자기 연락 온것도 그렇고 오늘 우연히 만난것도 그렇고 대낮에 소주 시키자고 하는거 보니 문돌이처럼 낮술도 즐기는거 같다. '아 뭐지 진짜. 아 진짜 인연인건가?' 시원하게 김칫국 한사발 들이키는 문돌이.
이윽고 깍두기를 비롯한 밑반찬과 소주가 같이 테이블에 차려진다. 일단 깍두기에 소주 한잔 짠.
"오 이 집 깍두기 잘하네 아삭아삭 하고"
"오빠도 술 좋아하죠? 옛날에 맨날 술 먹으러 다니고 그랬던거 같은데"
수현이가 웃으며 반쯤 장난식으로 물어본다.
"에이 그 정도 까진 아니고. 니도 술 잘 마시네. 자 한잔 줄께"
그렇게 소주 반병쯤 비우자 주문했던 감자탕이 나온다.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앞접시에 담아 문돌이게 주는 수현이.
이런 수현이의 사소한 행동조차 문돌이는 이제 큰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다시금 잡아채는 문돌이.
'서두르지 말자. 아닐 수 도 있다. 그래 냉정하게 아닐 확률이 높다.'
하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템포를 올려 소주를 빠르게 비우는 문돌이. 소주 한병을 더 주문한다.
소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문돌이는 얼마전 왜 갑자기 자신한테 전화를 한건지 물어 보기로 한다.
"근데 수현아 궁금한게 있는데"
"어떤거요?"
"얼마전에 갑자기 왜 전화 한건지 궁금해서"
"아~ 생각해보니 많이 궁금했겠네요. 뜬금없이 전화해서"
"응 좀 놀랬지. 몇년만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란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돌이킬수 없는 어색함을 만들꺼 같아 그 말은 덧붙이지 않기로 한다.
"근데 뭐 다른 뜻이 있었던게 아니라 그때도 말했잖아요. 회사 근처에서 오빠 몇 번 봤다고. 반갑기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생각나서 전화해봤어요."
'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문돌이.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길거리 지나가다 저 멀리서 봤다고 반갑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게 왜 궁금하지? 아니 궁금한건
그렇다고 쳐도 그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일인가?' 문돌이의 기준에선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다단계의 생각이 물 밀듯이 올라온다. '에이 x바 다단곈가? 낚인건가?' 실망과 씁쓸함에 문돌이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진다.
"그리고 사실..."
수현이가 말을 다시 이어간다. 문돌이겐 아직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 하는 문돌이.
"저희 회사 자재 쪽에 사람이 비었는데 잘 안구해져서 혹시 오빠한테 생각 있냐고 물어볼라고 했어요. 그 애긴 만나서 할랬는데 이렇게 빨리 만날지는 몰랐네요."
다행히 다단계는 아닌거 같다. 근데 이게 다행인건가? 인사총무과라더니 사람 구하는 일도 하는가 보다. 맥이 풀린다.
'그런건 그때 전화로 물어보면 되지. 괜히 사람 설레게 하네' 짜증이 살짝 나지만 표현할 수 는 없다
그래도 커피사주고 밥 사준다는데 맞장구는 쳐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문돌이. 관심이 있는척 물어본다.
"자재? 자재면 무슨 일 하는데?"
"부품 입출고 관리하고 재고 정리하고 소모품 같은것도 관리하고 그런거요"
"맞나? 이력서는 뭐 니한테 보내주면 되나?"
"아니요.. 오빠 생각있으면 이력서 들고 면접보러와요. 시간 될 때"
사람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이것 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와보라는 식이다. 문돌이가 찬찬히 생각해본다.
이걸 빌미로 수현이랑 연락 주고 받고 회사도 조건 괜찮으면 일단 좀 다니면서 다른 직장 알아보는것도 괜찮지 싶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나. 수현이랑 같이 회사 다니다가 눈이라도 맞을지.
'음... 이것도 나름 괜찮은거 같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부터 하자'
"근데 니 주말인데 남자친구는 안 만나나? 남자친구가 니 낮술 먹는거 알면 되게 뭐라 할거 같은데."
직접적으로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는것보단 이렇게 있다고 가정하고 물어보는게 질문 하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별로 부담이 없다.
직접적으로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는건 누가봐도 들이대는거 같으니까 말이다. 만약 없다 하면 '없다고? 왜?' 이런식으로 말을 이어나가기도 좋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 졌고 수현이의 대답에 모든 기대를 거는 문돌이.
"어제 싸웠어요. 아니 어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난다고 보내줬는데 밤새 연락 안되고 아침에 연락와서 술에 너무 취해서 연락을 못 했데요.
이게 말이 되요 오빠?"
'에라이 *발 그럼 그렇지'
없다. 기대도 희망도 아무것도. 이제 없다. 왜 그렇게 혼자 김치국을 퍼마셧는지 자신이 너무나도 병* 스럽다.
하지만 티를 낼수도 없다. 귀가 뜨거워지는게 느껴지지만 태연해야 한다. 절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야
하는게 아니라 아무일도 없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진 생각해본다. 짜증도 올라오겠다 수현이와 남자친구를
신나게 이간질 해버릴까? 그건 자신있다. 하지만 그건 문돌이가 생각해도 천벌 받을 짓이다. 그래 수현이가 무슨 죄가 있나? 그리고 수현이 남자친구가 진짜 친구들이랑 술 먹고 취했을수도 있지 않은가. 문돌이는 양심의 마지노선을 지키기로 한다.
'그래 내가 x신인거지, 남한테 그런 못된 마음 먹으면 내가 진짜 나쁜놈이지. 나쁜놈 보단 그냥 x신으로 남자'
"하... 이 양반이 아직 잘 모르네. 야 진짜 니 남자친구가 나쁜짓을 했다고 치자. 물론 안했겠지만. 진짜 나쁜짓 할거 같았으면 니한테 연락을
안하겠나? 시간마다 전화하고 카톡 보내지. 그리고 아마 새벽 한두시에 집에 간다고 했을껄??"
"아니 그래도 연락이 안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내 친구들 중에 진짜 여자친구 놔두고 뻘짓하는 새끼들 보면 절대 연락 안끊는다. 그냥 집에 가서 잔다하지. 니 남자친구랑 아침에 통화했나?"
"네"
"목소리 어떻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 아니드나?"
"맞던데요"
"그럼 밤새 친구들이랑 술 처먹고 꽐라되서 기절한거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남자들은 가끔씩 친구들끼리 만나서 술 마시고 노는게
여자친구 만나는것보다 더 신날때 있다. 그건 니가 이해 해줘야지. 한창 친구들 만나서 놀고 싶을 나인데."
"모르겠어요. 남자친구가 뭐 나쁜짓하고 그럴 사람 아닌건 알아도 너무 화가 나잖아요"
그때 마침 수현이의 폰에 전화가 온다.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남자친구 인거 같다.
"그러지 말고 전화 받고 만나서 얘기 하자고 해라. 니 이렇게 헤어질려고? 그건 아니잖아 일단 나가서 통화 하고 온나"
수현이도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문돌이는 자신의 처지가 우습게 느껴진다.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가 연애에 대해서 누구한테 말 할 그런게 있나?...' 혼자서 소주를 잔에 붓고 들이킨다.
양파 하나 쌈장에 찍어서 먹는다. '달다. x바'
얼마뒤 수현이가 들어온다. 마음이 조금은 풀렸나보다.
"만나기로 했나?"
"네. 좀 있다가"
"밥 다먹었으면 일어나자 그럼."
"괜찮아요. 오빠 아직 시간 있어요. 밥 볶아 드실래요?"
"아니다 배도 부르고 나도 저녁에 친구 만나기로 해서"
문돌이가 먼저 일어날 채비를 한다. 문돌이의 배려에 수현이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는거 같다.
"오빠 친구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요? 같이 택시 타고 넘어갈까요? 저 남포동 가는데"
"나는 하단에서. 혼자 넘어가라"
수현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계산대로 가는 수현이
그때 문돌이가 수현이를 부른다.
"수현아!"
"네?"
"여기 빌지" 문돌이가 수현이에게 빌지를 건낸다.
"아..."
"오늘 잘 먹었다 수현아. 다음에 남자친구랑 같이 보자. 내가 맛있는거 사줄께"
그럴 일이 없다는걸 알기에 문돌이는 마음껏 공수표를 날린다.
"네 알겠어요. 오빠 다음에 또 봐요. 우리 회사 일 생각있으면 연락주시구요"
싱긋이 웃으면서 수현이는 앞에 있던 택시에 올라탄다.
"오빠 갈께요"
"그래 조심해서 가라"
문돌이는 수현이가 탄 택시가 저 멀리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는다. 그리고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튼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온다.
주말 오후인데 버스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재수가 좋은 날인가 보다 이 시간에 앉아서 집에 가다니.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 문돌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아 참.... 그래서 d가 몇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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