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라는 영국 군인이 있었습니다. 흔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라고 알려져 있는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집트에 파견되었던 정보 장교였습니다.
T. E. 로렌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구성된 동맹국 편을 들어 전쟁에 참전합니다. 이에 로렌스는 아랍 부족들을 이용해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아라비아 반도로 파견되어서 그 당시 메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후세인 샤리프와 그의 아들 파이살과 함께 아랍 반란을 일으키고 나중에는 아랍 부족들과 영국군이 지금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하도록 조력하여 아라비아 반도에 아랍 독립 국가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데이비드 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피터 오툴이 주연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영화 속에서 로렌스로 분한 피터 오툴...
1917년에 로렌스가 아랍 게릴라 부대들을 이끌고 지금의 요르단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아카바를 점령하여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후 그는 향후 아랍 지역에 파견되게 될 영국 관리들이 이 지역에 잘 적응하고 현지 아랍인들과 마찰 없이 주어진 업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자신이 그동안 아랍 인들과 함께 했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나온 조언들을 정리한 책인
[Twenty-Seven Articles]를 펴냅니다. (이 책 말고 로렌스는 나중에 자신의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경험을 상세히 묘사한 책
[지혜의 일곱 기둥]을 출판하는데 이 책은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책
[Twenty-Seven Articles]이 거의 9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2006년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테러 공격이 급증하고 있을 당시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사령관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그의 부관들에게 이 책을 읽을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깊은 뜻은 이 책을 읽어서 로렌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너희들도 현지 아랍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좀 배우라는 것이었지요.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이제 지휘관들도 책 좀 읽어야 합니다...옛날 식으론 안 되요...
근데 정작 이런 명령을 내린 퍼트레이어스 장군도 이 책을 정독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앞부분에서 로렌스는 분명히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신의 조언들은 어디까지나 당시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던 베두인 족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으로서 다른 아랍 부족들은 "(베두인 족들과는) 전혀 다르게 상대해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퍼트레이어스 장군이 이라크에 주둔하던 2006년을 기준으로 볼 때 당시 이라크에서 베두인 족의 인구는 전체 이라크 인구의 약 "2%"정도였다고 합니다.
"장군님, 책대로 해도 안 되지 말입니다..."
"뭐 이 xx야! 너 이 xx, 웨스트포인트 몇 기야?..."
책은 대강 훑어보지 말고 항상 정독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