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2/22 14:38:37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조선 기생을 사랑한 명나라 사신의 꼬장
때는 태종 1년.

조선을 못살게 굴었던 명나라 황제 홍무제 주원장이 죽고
그의 손자 건문제가 즉위한 후 보내는 첫 사신이었습니다.

태종 역시 즉위한 후 처음 맞는 사신이라 최선을 다해 영접하려고 했지요.

건문제는 조선을 못살게 굴었던 그의 할아버지 홍무제와 다르게 조선에 상당히 호의적인 조서를 내립니다.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의를 사모하고 명나라에 최선을 다해 사대하였는데,
그것에 제대로 응답을 못해주었기에 지금 이렇게 사신을 보내고 달력과 비단등을 하사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태종이 사신들에게 환대하게 영접하자 사신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기분 좋은 자리를 유지합니다.
또 태상왕, 즉 태조 이성계가 나아가 잔치를 베풀자 명나라 사신들은 예로써 공손히 나아가 인사하고,
조선에 시까지 지어 올리니 이보다 분위기가 좋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며칠동안 명사신들에 대한 환대가 이어졌는데,
사신 대표였던 예부주사 육옹이 태종에게 은밀이 말을 건냅니다.
육옹이 한양에 오던 도중 황해도 황주에 머물 때 기생 위생을 보았는데,
이 여자를 한양에 와서도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며 태종에게 위생을 다시 볼 수 없을까.. 하고 이야기한 거였지요.

태종은 그정도는 별로 아니었기에 웃으며 알겠다하고 공문을 보내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오니 육옹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지요.
분위기 좋았던 환대가 이어지고 육옹은 위생에게 내가 다시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한 후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환대를 받었던 육옹은 명나라로 돌아가자마자 조선과 명의 말무역을 추진합니다.
조선에 말이 많이 나오니 비단 등으로 조선의 말을 사면 전쟁 대비에 좋다는 명목이었고,
다시 말무역 대표단에 육옹이 임명되어 육옹은 돌아간지 4개월만에 다시 조선에 들어옵니다.


육옹은 조선에 오자마자 위생을 찾고 싶었지만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저번 조선 사신으로 파견된 후 명으로 돌아간 뒤 황제가 육옹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지요.


황제가 '고려가 원나라를 섬길 때 여악(女樂)으로 사신을 홀리게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조선도 그러냐.'
하고 물으니

육옹은 '조선의 예악은 중국과 다름이 없고 그런 건 하지 않는다' 대답하였는데..
사실 조선엔 여악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기생 위생과 실컷 논 다음 아니었습니까? 즉, 황제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말무역으로 다시 파견왔을 때 같이 사신단으로 온 장근이 조선에 와서 보니 여악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육옹에게 '조선에 여악이 있는데 네가 없다고 대답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내가 후에 황제에게 상주하겠다.'
하니, 육옹이 두려워 위생과 다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긴 커녕 병까지 얻어버렸습니다-_-;;


태종이 태평관에서 사신을 위한 잔치를 벌였지만, 육옹은 걱정에 잔치를 즐기지도 못하고
태종에게 '나는 글을 읽은 선비입니다. 지금 장근이 황제에게 나를 헐뜯으려하니 왕께서 제발 절 구제해주시옵서소 ㅠㅠ'
하니 태종이 알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육옹은 걱정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더니 헛소리까지 하기 시작합니다.
육옹의 상태가 하도 이상해지니 태종은 빨리 육옹이 그렇게 아꼈던 기생 위생을 데리고 오게 합니다.

태종이 육옹에게 위생을 만나게 하니 육옹은 위생의 손을 잡고는
'흑흑흑ㅠㅠ 조선에 와서도 너를 다시 보지 못하매, 죽을 까 생각하였다.' 하며 눈물을 한 없이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눈물을 흘리며 위생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육옹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갑자기 밤에 자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게다 하며 갑자기 목매달아 죽으려 하니,
주위에서 깜짝 놀라 말리고, 사람을 전속시켜 절대 죽지 못하게 감시합니다.
하지만 육옹은 갑자기 정신 이상 행동을 보이며-_- 밤에 도망 나가자 새벽에 순관이 붙들어 다시 데리고 옵니다.


다음 날 민무질(태종 부인 원경왕후의 오라버니. 세종의 외삼촌입니다)이 명나라로 가게 되니,
태종과 명나라 사신들이 민무질을 배웅합니다.

그렇게 배웅하고 환궁하는데 육옹이 말하기를
'조선엔 산이 험하고 많아 숨을만한 곳이 많으니 전하께서 저를 좀 숨겨주시옵소서.'
하며 말을 타지 않으려 하니, 태종이 어이가 없어서 먼저 말에 오르니 주위에서 육옹을 부축하여 억지로 말에 오르게 합니다.


며주 후 중국에서 말값이 도착합니다. 이 때문에 태종이 태평관에 나가니
육옹이 또 태종에게 애걸하고 간청하기를,

'원컨대 전하께서 황제에게 이 옹이 이미 죽었다고 아뢰어 주소서 ㅠㅠㅠㅠㅠ'

하며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주 애원을 하지만..
조선 왕이 어찌 명 황제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육옹의 꼬장은 그칠 줄을 몰랐지만 태종이라고 딱히 어떠한 대처를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위생을 보기 위해 말무역까지 추진하여 조선에 왔지만,
같이 온 동료 때문에 위생과의 즐거운 시간은 커녕 온갖 꼬장으로 태종과 주위 사람을 괴롭혔던 육옹은
결국 조선에 온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말무역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다른 인물로 교체된 후 중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_=



그리고 조선에서 공적으로 이루어지던 여악은 광해군 때까지 이어지다가 인조대에 완전히 폐지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3/02/22 14:48
수정 아이콘
크크. 읽다가 눈시님 글인가 싶어서 확인해보고 다시 읽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iAndroid
13/02/22 15:08
수정 아이콘
역시 미인계와 성상납은 시대장소를 불문하고 먹히는 전략이군요.
기시감
13/02/22 15:23
수정 아이콘
아마 인류멸망의 그 날까지 먹히는 전략이겠죠.
취한 나비
13/02/22 15:47
수정 아이콘
잙 읽었습니다. 역시 남자는 여자를 조심해야...
반면에 좋은 여자를 만나면 그 생에 가장 큰 복이죠.
야야 투레
13/02/22 15:5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사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크크
잠잘까
13/02/22 17:54
수정 아이콘
저도 이게 제일 궁금 크크
골든리트리버
13/02/22 18:2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봤습니다. 그나저나 여악이 폐지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지금도 그렇듯이 알게모르게 잔존했겠습니다만, 공식적인 명분이 궁금하네요. 이미 그당시에도 여성인권이 그정도는 발달한건가요?
13/02/22 23:42
수정 아이콘

여악이란 게 예를 중시하는 조선이기에 여성인권 차원이라기보단 예법의 차원에서 문제 재기가 되었습니다.
세종 때에도 여악의 폐지에 대해 크게 논쟁하지만 결국 없애지 못했고요.

명나라 사신이 여악(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성접대에 조금 더 가까운)을 좋아하다보니
그 비유를 맞추기 위해서 없애지 못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인조 반정 직후 어떠한 명분을 세워야했고 자신들이 올바른 선비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여악을 폐지를 결단한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실제 폐지된 시기가 인조 반정 직후에 바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의외로 제 생각이 맞지 않을까 감히 주장해봅니다-_-;
tannenbaum
13/02/22 22:23
수정 아이콘
혹시 이 이야기가 '비단 장수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노래의 모티브인가요?
13/02/22 23:43
수정 아이콘

음... 잘 모르겠네요.
제 글은 그냥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기록을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그 후의 유래까지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714 [일반] [역사] 나도 조선의 왕이다. [14] sungsik6825 13/03/15 6825 7
42671 [일반] 클래식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준 베토벤 교향곡 몇 곡 [22] sungsik5335 13/03/12 5335 1
42574 [일반] [역사] 최고의 존엄성을 가진 기록물, 조선왕조실록 편찬 과정 [13] sungsik7575 13/03/06 7575 14
42461 [일반] [역사] 성군도 역사를 조작하는가? [31] sungsik9101 13/02/27 9101 4
42392 [일반] [역사] 조선 기생을 사랑한 명나라 사신의 꼬장 [10] sungsik6678 13/02/22 6678 3
42361 [일반] 레 미제라블 25주년 콘서트 영상들 [35] sungsik5908 13/02/19 5908 7
42299 [일반] [역사]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8] sungsik6665 13/02/15 6665 0
42268 [일반] [역사] 선조수정실록이 생긴 이유? [17] sungsik8635 13/02/13 8635 0
42073 [일반] 3호선 버터플라이 [17] sungsik4955 13/02/02 4955 0
42041 [일반] 러시아 외교관이 본 조선과 조선인 [19] sungsik6395 13/01/31 6395 0
42024 [일반] 조선시대 장애인 복지 [51] sungsik6151 13/01/30 6151 4
41265 [일반] [멘붕 극복 글] 대동법, 100년에 걸친 개혁 [19] sungsik7509 12/12/25 7509 23
39980 [일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고? 아닌 거 같은데.... [154] sungsik9137 12/10/29 9137 1
39891 [일반] 누가 뭐라 하든 라면은 후루룩 먹어야 맛이다. [27] sungsik5970 12/10/25 5970 1
39456 [일반] 전남 교수 186명 박근혜후보 지지 선언 [44] sungsik7912 12/10/02 7912 0
39295 [일반] 야신이 말하는 감독들의 세대교체. [27] sungsik6282 12/09/22 6282 1
39244 [일반] 캐나다 교사가 보는 한국의 왕따 문제 [13] sungsik4538 12/09/20 4538 0
39078 [일반] 제갈량이 유비 밑으로 들어갔을 때 유비의 상황 [69] sungsik11049 12/09/11 11049 0
39027 [일반] (스압) 조선시대 단체스포츠 혹은 예비군 훈련? '석전' [6] sungsik6685 12/09/06 6685 0
38820 [일반] 중국은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7] sungsik5392 12/08/24 5392 0
38734 [일반] 최근 가장 마음에 드는 광고 '현대증권 able' [21] sungsik6153 12/08/21 6153 0
38534 [일반] 당산역 1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파는 아저씨. [55] sungsik9202 12/08/09 9202 8
38448 [일반] 김태균 선수 4할 타율 재진입-_-;; [49] sungsik8312 12/08/01 831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