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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15 11:53:55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가 참 극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작가가 창작한 일인 것이고.. 그만큼 극적인 이야기가 실제 역사라면?
창작이 아니라 생각되니 아마 거기에서 느껴지는 임팩트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어쩌면 더 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극적인 임팩트와 감흥이 창작에서 비롯됐을 때는 사실 신경쓸 필요가 없지만,
문제는 역사란 탈을 쓰고 쓰여졌는데... 내용이 사실이 아닐 때입니다.

그런 걸 볼 때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감흥과 환상을 그냥 놔둬야하나.
아니면 그걸 깨야하나..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죠.


아마 조선 후기에 가장 임팩트 있는 역사적 사실이 무엇일까요?
전 위에 제목에 적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말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노론, 그것에 세손시절 이를 갈고 있다가 왕에 즉위하면서 저 말을 함으로써
노론세력을 벌벌 떨게 만들고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한마디.

이 말이 가지는 임팩트는 정말 어마어마해서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정조가 실제로 이 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말의 전문을 보면 의미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 전문을 보겠습니다.



아..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럼에도) 선대왕(영조)께서 종통(맡아들의 혈통)의 중요함 때문에,
나에게 효장 세자(영조의 맏아들. 요절함)를 이어받도록 명하셨다.

그러니 예는 비록 엄격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인정도 또한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인정을 무시할 순 없으니) 사도세자에 대한 제사는 대부로서 제사하는 예법을 따르고,
(예법에는 엄격해야하니) 태묘(왕실의 사당)에서와 (사도세자의 제사를)같이 할 수는 없다.

혜경궁(사도세자의 부인, 정조의 어머니)께도 또한,
(인정을 따르면) 마땅히 공물을 바치는 의절이 있어야하나
(예법은 엄격해야하니) 대비와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에 대해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이미 이런 분부를 내리고 나서 불경한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사도세자를) 추숭(왕으로 추존하는 것)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영조)께서 유언하신 분부가 있으니,
마땅히 형률로써 논죄하고 선왕의 영령께도 고하겠다.'

-정조 1권,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3월 10일(신사) 4번째기사-



요약하자면,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지만, 효장 세자의 뜻을 이었으니(실제로 양자임)
사도세자는 아버지로서의 예만 다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고,
혜경궁도 어머니에 대한 예만 다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겠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추숭을 언급하는 무리가 있으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하고 실제로 정조는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렇기에 사도세자의 추숭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의 마구잡이식 추승과 시호 승격이 일어날 때야 이루어집니다.



...... 우리가 생각하던 내용과 정 반대의 이야기지요?
거의 모 신문사들이 하는 일부만 발쵀하여 내용을 왜곡하기 신공을 뛰어넘는..
아예 내용 자체를 180도 바꿔서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앞의 한 문장만 따서요.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그 노론에 복수하려는 정조라는 무리한 결론을 이미 만들어 놓고
그 근거와 임팩트를 넣는 이야기들을 넣으려다보니 이런 왜곡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역사학자가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앞 문장만보고 혼자 감동하고 심취해
이 구절을 마음껏 사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역사학자가 인용한 구절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조선 후기 가장 인상적인 말로 남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역사를 대할 때 이런 부분에 얼마만큼 강력히 언급해야하는지 언제나 고민이 되네요.




ps. 예전에 비슷한 글을 썼다가 운영진에게 광속 삭제를 당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좀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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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
13/02/15 11:57
수정 아이콘
음...? 예전에는 왜 삭제를 당하신건가요..?
13/02/15 12:42
수정 아이콘
서프라이즈에서 사도세자가 죽은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 게시물이 올라오길래
이런 이야기도 있다고 글을 썼는데 관련글 코멘트화라고 삭제되었습니다.
신용불량자
13/02/15 12:2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역사학자가 누구인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사료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게 아니라 자기 맘속으로 이미 이분법적 논리로 선악을 갈라서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사료왜곡도 서슴지 않으니 답이 없죠...
13/02/15 12:34
수정 아이콘
요즘 다른분들이 추천해주신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을 보고 있는데, 사도세자란 정말 어떤사람인지 알고자 할때 도움이 많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문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물론, 정조가 즉위 때 말한 전체 내용중에서 '아,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부분만 떼어서 보는거랑 전체에서 맥락으로 이해하는거랑은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실제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숭을 위해서 묘를 영우원으로 높였다가 화성으로 옮겨서 현륭원으로 높이고,
(묘에서 원으로 올라간 것 자체가 추숭의 일환이겠죠?)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아버지가 묻힌 수원 화성 일대를 새로운 수도로 생각하기도 하죠.
그리고 수없이 능행을 함으로써 아버지의 이미지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더구나 즉위 후에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외가쪽을 숙청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즉위 후에는 노론세력과 수없이 싸우던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걸 종합해보면
정조가 노론에 대해 복수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거나, 아버지를 추숭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왜곡한 것처럼 '아,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말 속에는 모 작가가 과장 왜곡하긴 해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 자체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13/02/15 12:53
수정 아이콘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정성을 부정하는 사학자는 없습니다.
대신들 모아놓고 사도세자 관련 승정원 일기 지워달라고 울면서 이야기한 것만봐도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정은 엄청났지요.

다만, 정조라는 인물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정말 얼마만큼의 행동을 했냐는 겁니다.
노론과 충돌을 한다 했지만 제가 보기에 정조가 진짜 충돌한 건 노론이라기보다 외척입니다.
노론에 대한 복수감정이란 건 정말 노론이 사도세자를 죽였나라는 이야기가 사실이어야 성립이 되는 건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회의적이지요.

추숭에 관해서도 역시 영조의 뜻이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에,
납득가능한 행동까지만 하려고 했고요. (물론 수원화성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무리수라고 보지만..)
실제 사도세자 추숭과 그에 대한 관련 인물 처벌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자 미친듯이 날 뛰면서 저 새끼 내가 용서할 수 없다.
사관은 똑똑히 적어라. 내가 이 놈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여줄테니. 그래서 절대 이딴 소리 나오지 못하게 할테니.
라고 했던 게 또 정조이고요.

물론, 이런 행동 자체가 감정을 숨기려는 의도로 해석될 순 있으나 진짜 감정을 정말 숨기려 노력했던 게 정조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도 아버지에 대한 애달픔의 숨김이지 노론에 대한 복수 감정에 대한 숨김? 전 잘 모르겠네요.
강한의지
13/02/15 14:24
수정 아이콘
정조가 사도세자의 친아들 아니었던가요?

양자인가요?

제가 잘못 읽얺나요?
13/02/15 14:31
수정 아이콘
사도세자의 친아들이고, 효장세자(사도세자의 이복형)의 양자입니다~
신용불량자
13/02/15 14:31
수정 아이콘
사도세자의 친아들 맞습니다.
실록에 쓰인대로 임오화변 일어나고 나중에 정조가 왕이 되었을때 폐세자의 아들이라는 정통성 문제가 약점잡힐걸 우려한 영조가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킨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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