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보기(불판) 게시판을 강력추진한 당사자 항즐이입니다. 정작 만들고서는 바빠서 많이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원래 의도대로 잘 활성화 되어가는 것 같아서 참 다행입니다.
불판이 즐거운 이유는 간단할 겁니다. "공감"이죠. 왁자지껄한 고등학교 기숙사를 떠나 10여년의 자취생활을 통해 느낀 것은 "멍 하니 딴짓하는 친구라도 옆에 있으면" 티비를 보건, 게임을 하건 훨씬 재미있다는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가 나의 결정적인 감정을 공유해 줄 수 있으니까요. (핵을 맞았다던가, 반대로 친구가 롯데의 블론을 보고 절규한다던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가능성이 많은 우리 피쟐러들은 그 취향 때문에 더더욱 외로운 일도 많았을 겁니다. Scv를 흩어야 해! 라고 외친 후 벽에 울린 공허함 대신 게시판 코멘트로나마 "망했네요." "리버 AI 패치된 듯"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데 왜 흩어지질 못하니.." 라고 맞장구쳐주는 글들을 보며 감정의 공감과 증폭을 느낍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게임의 노예 (정확히는 블리자드와 Pgr의 노예)였지만 더 긴 시간 동안 바보상자 노예의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듯, 티비를 보고 웃고 울며 기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드라마티크라는 드라마 잡지를 사보다가 폐간에 좌절하기도 하고, IPTV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지나간 드라마와 스포츠 경기들로 일상의 빈 틈을 모두 메꿔버리는 중독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꽤 오랫동안 자게에 글을 쓰지 않아 아마 본문보다 긴 들임말이 되어버린 모양인데, 바보상자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의 관심사를 Pgr 자게라는 거대한 (대신 다소 느릿한) 불판에 쏟아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요. 전문적인 내용도 없을 것이고 대단한 통찰력도 없을 테지만, 불판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것임을 기대하면서 틈 날 때마다 몇가지 이야기들을 써 보려고 합니다.
나는 (예능)PD다.
일반 시청자가 PD의 존재감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영희 PD처럼 방송에 자주나오고 인지도가 있는 경우라거나, 나영석 PD처럼 아예 출연진의 일부가 된 경우, 혹은 김태호 PD처럼 독특한 외모와 패션 스타일로 관심을 끄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죠. 이 세 사람의 입지전적인 현역 PD들은 모두 예능 PD입니다. 드라마 쪽으로 가면 훨씬 유명세(얼굴까지 알아보는)를 타기 어려운데요, 이병훈 PD나 표민수 PD라 하더라도 나영석, 김영희 PD보다 얼굴이 더 알려지진 않았을 겁니다.
이런 PD의 존재감은, 시청자에게 사실 아무런 가치판단을 주지 않습니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요. 신규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김영희 PD가 전면에 나선 나가수(나는 가수다)의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이명한PD 대신 화면에 등장하게 되었던 나영석 PD의 초기 모습은 어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한참 후 나영석 PD는 나름대로의 캐릭터를 구성했고, 이제는 1박2일의 한 명의 출연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죠. 정답은 없고, 결과로만 알 수 있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PD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MBC PD가 파업으로 무한도전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편집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방영되었을 때, 그 결과물의 엉성함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죠. 김영희 PD의 나가수 하차로 인한 신정수 PD의 이동 후 놀러와 역시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1박2일 신효정 PD의 SBS로의 이동으로 1박2일의 BGM이 심심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렇게 존재감이 넘치는 PD들의 이야기를 하려면(특히 드라마PD들은 그 수도 무척 많지요) 그에 따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그건 나중에나 가능할 이야기일 듯 싶습니다.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얼마전 유게에 코멘트로 달았던 방송사별 예능PD들의 성향을 간단히 언급할까 합니다.
KBS - KBS 예능 PD들의 존재감을 느낀 것은 슛돌이와 상상플러스,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라는 "(거의)전연령대" 예능프로그램을 승승장구 시키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역사 깊은 방송국이니만큼, 그 이전에도 천하무적외인구단, 위험한초대 등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두어왔습니다만 스포츠와 어린이를 결합시킨 슛돌이는 온가족이 보기에 부담없었고 해피투게더와 상상플러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건강한 맛이 충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심지어 여자 아이돌들을 데리고 농촌에 간 청춘불패마저도 예민하거나 무리한 느낌없이 상큼하고 착한 느낌의 스틸샷+노래 삽입으로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유쾌하고, 뒷말없는 프로그램. 파격보다는 안정을 추구하지만 결과물의 수준은 항상 확보되어있다는 믿음이 있는 PD들입니다. 그 외 여걸6라던가, 최근의 천하무적 야구단과 승승장구 역시 궤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고향에서 온 편지도 기억납니다.)
무엇보다, 그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그램은 1박2일과 해피투게더일 겁니다. 물론 두 프로그램이 당대의 MC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이 있지만, 특별하지 않은 포맷으로도 완성도있는 이야기와 즐거움을 꾸준히(!) 주고 있다는 것은 PD들의 역량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지요.
총평하자면, 명문가의 재능있는 인재가 꾸준한 노력으로 정석에 가까운 답안지를 제출하는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복도 적고, 꾸지람을 들을 일도 적지요.
MBC - MBC는 상대적으로 PD들의 존재감이 더 큰 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느낌표 등을 연타로 성공시키고, 복귀 후 나는 가수다를 다시 브랜드로 이끌어올린 거장 김영희 PD는 물론이고, 무한도전으로 몇 년 째 수백가지 포맷을 창조하며 MBC로 하여금 컨텐츠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김태호PD와 이제는 다른 방송사에 있지만 시트콤과 예능PD로는 거의 최초로 주목을 받았던 주철환PD, 최근 놀러와의 쎄씨봉 열풍 등을 일으켜냈던 신정수PD(현 나가수 담당), 역시 종편으로 옮겼지만 황금어장을 기어코 살려낸 여운혁PD 등은 이름 자체가 브랜드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들은 "독특하고" "남다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망한 적도 많고 (무모한 도전, 대망, 퀴즈프린스, 무월관...) 이슈와 비난에 시달리는 일도 많았지만 분명히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하겠습니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특히 느낌표, 러브하우스 등)들이 오히려 KBS보다 공익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김영희 PD 개인의 색깔이며, MBC 전체적으로는 화면 색상 조절에서 다른 방송사와 차이나듯 좀 더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을 추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줄여말하자면, 재기발랄한 청춘이 겁없는 도전을 거듭하는 모양입니다. 기복은 있을지언정, 다음은 다시 기대되는 다크호스 같은 선수입니다.
SBS - 유게에서는 SBS PD들을 너무 희화화 했습니다만, 사실 그리 칭찬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SBS 사상 가장 성공했던 프로그램은 Xmen과 패밀리가 떴다로 생각되고, 둘 다 기존 프로그램들(동거동락, 1박2일)의 변형에 가까웠습니다. 게다가 두 프로그램과 야심만만, 강심장, 스타킹 모두 유-강이라는 당대의 MC들의 힘이 커보이는지라 PD의 역량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발자막"으로 불리는 편집은SBS 예능 프로그램 전반에 깔려있는 "가수/배우들의 홍보에 대한 철저한 호응"을 기반으로 하는 캐스팅 전략과 맞물려 참으로 가볍고 얄팍해 보이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물론 패떳이 한때 1박 2일 못지 않은 흥행을 누린 것은 어쩌면 매번 바뀌는 게스트에 대한 기대감과 인기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Xmen-야심만만-강심장으로 이어지는 대놓고 "나 오늘 홍보하러 나왔으니 거짓말이건 뭐건 에피소드 털어내면 웃어주고 주목해줘"라는 내용과 자막은
PD 스스로 출연진에게 특별한 이야기과 캐릭터를 부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토크쇼 포맷의 해피투게더나 황금어장, 놀러와 혹은 과거의 이홍렬 쇼가 방금 지적한 프로그램들과 다른 부분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MC는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최근 영웅호걸에 대한 "좋은 재료로 망친 요리"라는 평에 이어 키스앤 크라이가 다행히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역시 재료와 MC는 훌륭합니다. 이슈메이킹에 목숨 건 SBS인 만큼 김연아를 잡은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끝까지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조금은 어른스러운 프로그램을 보여줄 지 기다려볼 차례입니다.
SBS는, 아직 스스로가 프로 기사임을 깨닫지 못하고 프로들의 기보를 따라두기 급급한 연습생의 모습입니다. 그 와중에 기본기가 착실하게 쌓이기를 기대할 수 밖에요.
오늘은 최근 홍보전문으로 돌아서며 다소 힘빠진 놀러와의 날이고, 김제동의 오마이텐트를 날름 스카웃해 간 SBS 힐링캠프의 날입니다. 힐링캠프의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SBS 답지 않게 자막을 자제하기도 했고, 두 MC의 차분한 진행과 한혜진의 리스닝(-_-;;)은 편안한 편이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논문을 끄적이는 둥 하다가 또 티비를 켜게 될 겁니다. 11시가 되면 습관적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오늘 어느 것을 볼 지 결정하게 되겠지요. 깔깔 웃고 찌푸리고 중얼거리고 찡 하다가 무언가 또 생각이 머리속을 지나갈 겁니다. 그것이 반가운 것이어서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