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적(翟)은 깃 우(羽) 또는 살별 혜(彗)와 새 추(隹)가 합한 한자로, 꿩의 깃털과 몸통을 본뜬 모습이다. 그런데 한 설에는 隹가 뜻뿐만 아니라 소리도 나타낸다고 한다. 隹는 부수로도 쓰이며 이때에는 뜻을 나타내지만, 뜻이 아니라 소리를 표시하기 위해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翟이 형성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실제로 隹가 확실히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들도 많이 있다.
隹는 새의 모습을 본뜬 상형자다.
왼쪽부터 隹(새 추)의 갑골문, 금문, 소전, 해서.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꼬리가 짧은 새를 隹, 꼬리가 긴 새를 鳥(새 조)로 구분했는데, 이는 소전 이후의 자형에서 이 둘이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鳥의 꼬리 깃이 더 길고 더 복잡하긴 해도 둘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왼쪽부터 鳥(새 조)의 갑골문, 금문, 소전, 해서. 출처: 小學堂
그래서인지 닭 계(鷄), 메추라기 순(鶉), 꿩 치(雉), 기러기 안(雁) 등에서는 부수를 鳥나 추로 자유롭게 바꿔쓸 수 있다. 울 명(鳴)과 오직 유(唯)처럼 둘을 바꿔쓰면 뜻이 아예 달라지는 한자도 있긴 하나, 아래처럼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도 존재한다.
唯(오직 유)의 다양한 갑골문. 맨 오른쪽은 隹(새 추)가 唯를 가차한 것을 보여준다. 출처: 小學堂
鳴(울 명)의 갑골문 중 하나. 출처: 小學堂
隹는 갑골문과 금문에서 새의 뜻 말고도 唯(오직 유)·惟(생각할 유)·維(벼리 유) 등의 의미로 가차되어 쓰이다가, 이들이 각각 제 뜻에 맞는 부수들을 가지고 와서 형성자로 분화된 이후에는 쓰이지 않는 한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이 글자는 새를 두루 일컫는 뜻 외에도 산비둘기를 뜻하기도 했는데, 이 뜻은 나중에 鳥를 덧붙인 鵻(비둘기 추)가 나타내게 되었다.
隹(새 추,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隹+口(입 구)=唯(오직 유): 유일(唯一), 낙유(諾唯) 등. 어문회 3급
隹+土(흙 토)=堆(쌓을 퇴): 퇴적(堆積), 빙퇴석(氷堆石) 등. 어문회 1급
隹+山(메 산)=崔(높을 최): 최외(崔嵬), 삼최(三崔) 등. 어문회 2급
隹+巾(수건 건)=帷(휘장/장막 유): 유막(帷幕), 서유(書帷) 등. 어문회 특급
隹+心(마음 심)=惟(생각할 유): 유우(惟憂), 사유(思惟) 등. 어문회 3급
隹+手(손 수)=推(밀 추): 추리(推理), 유추(類推) 등. 어문회 4급
隹+木(나무 목)=椎(쇠몽치/등골 추): 추살(椎殺), 척추(脊椎) 등. 어문회 1급
隹+水(물 수)=淮(물이름 회): 회하(淮河), 하회(河淮) 등. 어문회 2급
隹+目(눈 목)=睢(부릅떠볼 휴|물이름 수): 수수(睢水), 우휴(盱睢) 등. 어문회 특급
隹+糸(가는실 멱)=維(벼리 유): 유신(維新), 섬유(纖維) 등. 어문회 준3급
隹+艸(풀 초)=萑(익모초 추|물억새 환): 추퇴(萑蓷) 등. 어문회 특급
隹+言(말씀 언)=誰(누구 수): 수하(誰何), 모야수야(某也誰也) 등. 어문회 3급
隹+金(쇠 금)=錐(송곳 추): 추심(錐心), 시추(試墜) 등. 어문회 1급
隹+馬(말 마)=騅(푸르고흰얼룩말 추): 추불서(騅不逝), 오추마(烏騅馬) 등. 어문회 특급
隹+鬼(귀신 귀)=魋(짐승이름 퇴|북상투 추): 추결(魋結), 환퇴(桓魋) 등. 어문회 특급
隹+鳥(새 조)=鵻(비둘기 추): 청추(靑鵻) 등. 어문회 특급
唯(오직 유)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唯+虫(벌레 훼): 雖(비록 수): 수연(雖然) 등. 어문회 3급
崔(높을 최)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崔+人(사람 인)=催(재촉할 최): 최면(催眠), 개최(開催) 등. 어문회 준3급
崔+冫(얼음 빙)=凗(눈서리쌓일 최): 최의(凗凒) 등. 어문회 특급
崔+手(손 수)=摧(꺾을 최): 최절(摧折), 난최옥절(蘭摧玉折) 등. 어문회 특급
推(밀 추)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推+艸(풀 초)=蓷(익모초 퇴): 추퇴(萑蓷) 등. 어문회 특급
淮(물이름 회)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淮+匚(상자 방)=匯(물돌아모일 회): 회획(匯劃), 총회(總匯) 등. 어문회 준특급
維(벼리 유)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維+水(물 수)=濰(물이름 유): 유방(濰坊), 유수(濰水) 등. 어문회 특급
隹(새 추)에서 파생된 한자들.
隹에서 파생된 한자는 매우 많으나, 隹의 원 의미 중 하나인 산비둘기를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파생된 비둘기 추, 새가 산을 넘을 만큼 높이 날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崔(높을 최) 외에는 의미로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일찍부터 원 의미 대신 어조사로 가차되어 쓰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다 하다 못해 원래는 큰 도마뱀을 뜻한다는 雖(비록 수)도 지금은 원 뜻을 잃고 가차된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
推, 椎, 錐는 물리적으로 충격을 준다는 의미가 유사해 서로 무슨 관계가 있어 보인다. 아쉽게도 새 추가 이들을 가차해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부터 추라는 음에 이런 뜻이 있었으며 세 한자 간에 무엇이 원조이고 나머지가 파생인지는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일부 파생자의 뜻은 높음과 관련이 있어서, 높을 최(崔)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작 崔가 온전히 들어가는 글자 중에 崔의 의미와 관련 있는 글자는 하나밖에 안 보인다.
凗는 冫(얼음 빙)이 뜻을 나타내고 崔가 소리를 나타내며, 눈과 서리가 높이 쌓인다는 점에서 崔가 뜻도 나타낸다.
堆는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隹가 소리를 나타내며, 흙을 높이 쌓는다는 점에서 崔의 생략형이 뜻을 나타낸다.
睢는 目(눈 목)이 뜻을 나타내고 隹가 소리를 나타내며, 눈을 높이 부릅뜬다는 점에서 崔의 생략형이 뜻을 나타낸다.
萑(익모초 추)의 다양한 갑골문.
한편 萑(익모초 추)는 갑골문에서부터 보이는 오래된 글자로 隹의 파생자들 중에서는 淮(물이름 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朝(아침 조)가 원래는 풀더미나 숲 사이에 해와 달이 끼어 있던 것처럼, 이 글자 역사 艸(풀 초)뿐만 아니라 풀이 세 포기 있는 芔(풀 훼), 풀이 네 포기 있는 茻(우거질 망), 풀 대신 나무를 쓴 林(수풀 림) 사이에 隹가 들어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글자가 갑골문에서는 고유명사로 쓰이고 금문에서는 인명으로 쓰이며, 이후 한문 역사에서도 거의 쓰이질 않아 《설문해자》에서 '풀이 많다'라고 풀이한 것 외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따름이다.
萑는 蓷(익모초 퇴)와 짝지어 추퇴(萑蓷)라는 단어로 익모초를 가리킨다. 萑와 蓷는 따지고 보면 둘 다 隹에서 소리를 따왔는지라 음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원래는 萑 하나만으로 익모초를 가리키는 다중자음 단어를 표기하다가 자음을 나눠서 표기하기 위해 蓷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상고음 추정에서 萑는 복자음이고, 蓷는 단자음이다.
중국어에는 두 글자로 표기하지만 두 글자가 같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고 따로따로는 의미가 없는 연면사가 많은데, 그 유래 중 하나가 다중자음이 있는 단어를 자음별로 표기하면서 글자 수가 늘어난 것이다. 한문 교육에서 자주 예로 드는 것이 거미를 뜻하는 지주(蜘蛛), 귀뚜라미를 뜻하는 실솔(蟋蟀), 주저함을 뜻하는 주저(躊躇)나 척촉(躑躅)이다. 추퇴도 이런 연면사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파생된 글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隹와 관계되는 한자가 많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겠다.
隹(새 추)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隹(새 추)는 새의 모습을 그린 글자다.
隹에서 唯(오직 유)·堆(쌓을 퇴)·崔(높을 최)·帷(휘장/장막 유)·惟(생각할 유)·推(밀 추)·椎(쇠몽치/등골 추)·淮(물이름 회)·睢(부릅떠볼 휴|물이름 수)·維(벼리 유)·萑(익모초 추|물억새 환)·誰(누구 수)·錐(송곳 추)·騅(푸르고흰얼룩말 추)·魋(짐승이름 퇴|북상투 추)·鵻(비둘기 추)가 파생되었고, 唯에서 雖(비록 수)가, 崔에서 催(재촉할 최)·凗(눈서리쌓일 최)·摧(꺾을 최)가, 推에서 蓷(익모초 퇴)가, 淮에서 匯(물돌아모일 회), 維에서 濰(물이름 유)가 파생되었다.
隹가 들어가는 형성자에서 隹는 대부분 소리만 나타내되, 일부 한자들은 높다, 치다 등의 뜻을 공통으로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