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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2/22 19:22:38 |
Name |
IntiFadA |
Subject |
내 삶의 게이머(4) - 완성, 그리고 그 뒤 |
언젠가 '내 삶의 게이머'라는 타이틀로 두 편의 글을 pgr에 써서, 글의 퀄러티에 비해 훨씬 과분한 호평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호평에 기대서 신나게 준비했던 내 삶의 게이머 3편은, 지금도 완성되지 못한 채 2년 가까이 내 PC 하드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른 게이머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되어 4편을 올립니다.
길이에 비해 내용은 졸렬하지만, 이 게이머에 대한 저의 느낌을 이 글을 통해 pgr 여러분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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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지금까지 살아오면 네 인생의 절정기는 언제였냐?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난 한참 고민하게 될 것같다.
그다지 큰 임팩트를 가진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시점을 찍어 그 때가 나의 절정기요... 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나의 절정기가 있지 않을까... 라고 아직 꿈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나의 부모님께 던진다면, 아마 나의 부모님은 주저없이 나의 17세를 떠올릴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17세의 전반기,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시절을...
1
그를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애시당초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던 관계로 그가 보여준
그 어마어마한 포스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저 상당히 잘하는 - 그렇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 테란, 하지만 경기는 재미없는 테란으로 내게 기억
되어 있던 그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두께로 내게 이름을 각인시킨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2002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어느날이었다.
2
내가 학교를 다니며 '공부' 혹은 '성적'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중학교 1학년때로 기억한다.
우연히 한 번의 시험에서 실력 이상의 결과가 나왔고, 그 후에는 그 결과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어
팽팽 놀기만 하다가 공부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같다.
그 후로 몇 년동안은 신기하게도 특별한 이유없이 꽤 열심히 공부했던 것같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인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끄적끄적 공부를 했고, 성적이 오르고, 오른 성적이 좋아 또 공부하고... 그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 내 성적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랄만큼 올라 있었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 라든가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라는 고민을 치열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난 그맘때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특별히 다른 할 일도 없었던 것같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집으로 왔고,
1~2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자연스럽게 책상앞에 앉았다. 새벽녘까지 책을 들여다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일어나면 또 학교를 갔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마도 난 그 때 노는 방법을 몰랐거나 친구가 없었던-_- 모양이다.
3
그의 방송경기 데뷔는 iTV '고수를 이겨라'였다.
이 프로그램 출신의 프로게이머들은 꽤 많은데 이현승, 성학승, 나도현, 이중헌, 강도경, 김환중, 홍진호 등등이
그들이다.
그는 이때 아마추어 자격으로 당시 '랜덤최강'으로 손꼽히던 최인규 선수의 랜덤테란을 맞아 2스타 레이쓰로 출발해
레이쓰-탱크 조합을 선보이며 승리,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이후 IS팀에서 임요환, 홍진호와 같은 당대 최강의 게이머들과 동고동락하며 성장을 거듭한 그는 점점 무서운 선수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로템에서 앞마당을 먹고 저그를 상대로도 두 부대 가까운 탱크로 센터를 장악하는 게이머.
이제는 고전이 된 원팩 원스타 빌드로 한다 하는 프로토스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던 게이머.
테란전, 저그전, 토스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무서운 선수가 된 그는 마침내 2002년 초 KPGA 2차리그에서 같은
팀의 당시 최강의 저그, 홍진호를 2패후 3연승으로 무너뜨리고 우승컵을 차지한다.
(바로 이 대회가 그를 내 기억에 새긴 대회였다. 홍진호의 팬이던 내게 당시 그의 임팩트란...)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4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는 새 오르던 내 성적이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가 바로 92년 초,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이었다. '공부는 내 생활 -_-'이 되어 있던 나로서도 놀랄 정도의 성적이 내 성적표에 찍혔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한국 교육의 특성상 불과 한 학기동안 모의고사를 포함하면 대여섯 번의 시험이 있었고, 그 모든 시험에서 나는 만족스런
결과를 거두며 지금 이 성적이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시점에서, 나는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시작한다.
5
홍진호와 박정석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MSL의 전신인 KPGA투어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그는 마침내 2003년 초에
순차적으로 3개 대회의 결승에 오른다. 2002 4th KPGA 결승전과 Panasonic배 스타리그에서 조용호를, 그리고
3rd GhemTV 결승전에서 강도경을 만난 것이다.
이 세 개의 대회를 모두 잡아낸다면 전무후무한 Grand Slam을 달성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이윤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 어쩌면 스타크래프트의 영원한 아이콘 `임요환'의 앞에 놓일 수도 있게 된
시기가 바로 그 때였다.
그리고 그는 조용호를 각각 3:2, 3:0으로 그리고 강도경을 3:0으로 잡아내며 - 당시엔 없던 표현이지만 - `본좌'의 자리에
등극한다.
6
게임을 하다보면 `이겼다'라고 느끼는 순간 패배가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저그로 플레이하는 나의 경우는
센터싸움에서 한 두 번 테란을 잡아내고 이겼다고 생각하고 멀티나 늘리다가 어느새 갖춰진 테란의 한 방 병력에 주르륵
밀려 GG를 선언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인생도 그렇다.
3년이 넘는 순간동안 조금씩 올라간 나의 성적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그리고 `이제 나 공부 진짜 잘해!'라는 건방을 떨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나의 그래프는 정점을 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핑계거리는 많았다. 고등학교에 들어 시작한 써클활동, 나의 고1 여름을 강타한 - 그리고 그 후 몇 년을 지속된 - 첫사랑의
열병, 1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나의 곁에 있는 친구들과의 만남....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
흔히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쁜 친구'가 나를 버려놓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나태함이 나를 버려놓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2학기가 개막하고 내신에 반영되는 첫번째 성적표를 보며, 거기에 찍힌 몇백배로 커진 전교석자의 숫자를 바라보며 나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말을 잃었다.
추락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미 꺾인 그래프를 다시 올린다는 것은 2차 방정식 이상을 잘 모르는 내겐 어려운 문제였다.
7
Grand Slammer, 천재테란, 토네이도테란, 머신, 수달 (-_-.. 이건 아니구나...)과 같은 화려한 별명에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라는 말이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무적의 포스를 뿜어대던 이윤열.
`완성형 게이머'라는 표현이 생겨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윤열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시간은 절대 짧지
않다. 비록 그랜드 슬램 당시의 포스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올림푸스 스타리그 16강,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한게임 스타리그 8강, 질레트 스타리그 8강, EVER 2004 스타리그 8강, 아이옵스 스타리그 우승의 전적을 거두었다.
그의 이와 같은 기세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또 한 축인 MBC게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우주 MSL 16강, 당신은골프왕
MSL 준우승, 스프리스 MSL 16강, 하나포스 센게임 MSL 준우승, TG삼보 MSL 3위, 스타우트 MSL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항상 우승하는 이윤열'을 아닐지라도 `영원한 우승후보 이윤열'의 모습을 지켜나간다.
하지만 이미 `완성'을 이룬 자에게 남은 것은 추락 뿐인 것일까.
2005년,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의 충격 때문인지 그는 양대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고 충격적인 양대 PC방
리거로 등록된다.
그가 걷고 있는 `최강자'의 길을 앞서 걸었던 임요환이 그랬든 그의 그래프도 최고점을 지나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8
무너져버린 성적표에 다친 것은 선생님의 몽둥이 찜질로 달아오른 허벅지가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오기가 생겼고, 나를 앞질러 가버린 수많은 경쟁자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방심했고, 그래서 좀 놀았고, 그 결과가 이거다.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면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금방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일을 막론하고서라도 일단 정점에서 내려온 후 다시 올라가는 것은 처음 정점에 오르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한 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때로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나태해지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상당했다 싶을 정도로 난 나 자신의 성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꺾인 그래프를
되돌리는 것은 최초 정점으로 오르는 과정보다 힘들었다. 상당한 노력끝에 어느 정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저 거기까지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노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버린 시점에서 난 더이상 전처럼 한가지에
잡념없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정점을 기준으로 볼 때, 나는 실패했다. 내가 한 때 자리했던 정점과 비교한다면 한 참 떨어지는 어느
위치엔가 난 자리매김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나의 정점이었다. 나의 능력과 의지와 성실성은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나의 재능의 수준 또한 거기까지였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성실하게 노력하는 능력'을 재능의 한 가지로 본다면
분명 나의 재능은 거기까지였으며,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9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점에서의 꺾어짐을 자신의 마지막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e스포츠에도 두 사람이 이를 증명하였으니, 황제 임요환과 천재 이윤열이 그들이다.
이윤열은 2006년에 들어 2005년의 지독한 부진을 비웃듯 신한 스타리그 2시즌에서 당시 최강의 포스를 보여주던
프로토스 오영종을 꺾고 우승하며 골든 마우스를 획득했고, 뒤이어 현재 진행중인 신한 스타리그 시즌 3에서도 결승에
올라 마재윤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MBC게임에서는 이번 시즌, 한빛의 토스 박대만에게 일격을 당하고 탈락했지만 최근 팀동료이자 지난리그 준우승자인
심소명을 잡고 차기 MSL에 진출, 다시 한 번 양대리거의 자리를 확정지었다.
비록 신한 스타리그 시즌 2이후에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에게 완패하고, 이어진 부진을 겪었지만 짧은 슬럼프였을 뿐
마치 2005~2006년의 부진극복을 통해 슬럼프 탈출의 노하우를 깨우치기라도 한 듯 전혀 달라진 기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정 이윤열의 위대함은 지금 보여주고 있는 그의 성적이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정상 - 내가 섰던 정상을 수많은 프로게이머의 정점에 달했던 이윤열이 섰던 정상과 병치하는 것이 무리라고는 해도 -
에 섰다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려 애쓰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던 나로서는, 무언가 한가지에
전념하다가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본 사람이 다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나로서는,
한 번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던 그가 다시 정상을 향해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의 위대함에 경탄하게 된다.
설사 그가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가지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그래서 현재 최강자로 불리고 있는 마재윤에게
또 한번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고 해도 그의 그런 위대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Epilogue.
최근 그를 `이운열'이라고 비웃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신한 스타리그 2시즌에서 준우승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 보였던 그의 대진운 때문에 나온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다소 애매해보이는 케스파 랭킹 1위 등극과 `올해의 선수상'수상으로 인해 수많은 비난을 받는 것도 지켜보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결승에서 그는 상당히 유리한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어, 결승전의 승패와 상관없이
`맵운이 이러니 역시 이운열' 또는 `맵빨로도 못이기니 역시 전 시즌 우승은 운빨'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그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한 그러리라 믿는다. 정상에서 바닥으로, 그리고
다시 정상권으로의 부침을 경험한 그라면, 그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을 난관을 모두 극복한 그라면, 그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써갈 새로운 역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내가 극복하지 못했던 종류의 벽을, 아마도 내가 맞닥뜨린 것보다 훨씬 높았던 벽을 보기좋게 극복해버린 천재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경탄과 부러움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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