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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7 12:41
알 수 없죠. 소문이야 뭐 끝도 없고 검증할 방법도 없는거고.... 김종필이 별세하면서 회고록이라도 거하게 내면 모를까.
소문으로 따지면 그 당시엔 삼김이 모두 손잡은 선거라는 얘기까지 있었거든요. JP와 DJ는 후보단일화 했었고 여기에 YS가 DJ 당선시키려고 이인제를 이용해 여권을 분열시킨거라는.....
16/12/07 13:06
YS의 DJ푸쉬는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YS가 IMF 터지고 한나라당으로부터 축출되어 탈당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리벤지였던 것인가..크크
16/12/07 13:43
그 때 YS의 후계자였던 최형우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YS세가 일거에 무너진 것도 컸거든요.
그래서 YS는 더 이상 후계구도엔 관심을 끊었고, 그렇다고 대표로 나온 이회창과는 사이가 워낙 안좋았고, 그러다보니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평생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DJ와 손을 잡았다.... 는 얘기가 있었죠. 정권 잡은 후에도 DJ가 IMF를 제외하고는 전임 정권에 대한 공격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16/12/07 13:52
그 당시 이인제의 인기가도는, 지금 이재명 수원시장의 지지도 상승세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인제는 이회창에게 없었던 행정 전문가의 이미지도 있었고, 박정희 이미지 마케팅을 통한 행동력 있는 리더로 포지셔닝했기에, 이회창에 만족할 수 없었던 지지자들에게는 강한 푸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9룡이라 불리는 대권주자들이 있었는데, 이회창 외의 후보 지지자들이 이인제에게 몰리는 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이회창의 한나라당과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양쪽 모두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네 "제3지대"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이 때 터지면서, 이회창의 지지율이 폭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인제보다도 지지율이 아래였어요. 언론이나 한나라당 지지자들 마저도, 이런 시국에 왜 후보를 갈아치우지 않느냐고 불만이 터져나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제가 빠져나가면서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회창을 중심으로 결집하였고, 끝까지 김영삼의 지지를 기대하였던 이인제에게 결국 김영삼의 명시적 지지는 없었습니다. (당시 김영삼과 이회창 사이에 갈등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김영삼 정권 막판 IMF 사태때문에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막판에는 김영삼 지지가 역효과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회창을 빨리 갈아치워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던 분들이, 이회창이 되살아난 후에는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며 돌아섰고, 이인제가 TV에서 "이인제를 찍으면 이인제가 됩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16/12/07 14:07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저희 부모님 평생에 1번을 안찍은 유일한 사례가 이인제였네요.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기까지 했던 친구 부모님도 이인제를 찍었는데, 그 이유가 '박정희를 닮아서'였죠.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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