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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0 19:59
(수정됨) 너무 성의없는 답변인 것 같아서 조금 덧붙입니다.
고래로 일본의 정치적 중심지는 지금의 교토, 오사카, 나라 일대를 일컽는 키나이(畿内)지방이었습니다. 이 키나이 지방을 방어하는 동쪽 경계가 키소가와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국경선, 방어선은 대개 산맥이나 대규모 하천을 따라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지방 세력이 동쪽에서 중앙 세력을 공격할 경우 이 일대를 장악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 오다 노부나가의 미노(美濃) 공략이 되겠지요. 거기에 평야가 많지않은 일본에서, 키소가와 하류(지금의 나고야 일대)는 손에 꼽히는 평야지대입니다. 과거에는 농업 생산력 = 인구 부양능력 = 병력(군사력) = 국력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마 이 일대가 중요하다고 얘기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17/09/20 19:46
그 지역이 노비평야라고도 하는데 관동평야가 개발되기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쌀생산량을 보인곳입니다.
흔히 전국시대 삼걸 이라는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예야스 모두 이 지역을 출신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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